2019년 6월에 [의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24편을 보았다. 지난 방송을 찾아서 모두 보았다. 백년전에 살다가신 우리들의 선조들의 나라를 다시 찾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을 보았다.  주권잃은 민족의 슬픔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리고 나라를 찾기위해 목숨받친 선조들의 모습도 보았다.


미스터 션샤인

신미양요(1871년)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

이 사진은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이었던 맥켄지 기자가 1907년 경기도 양평군 지평 인근 야산에서 촬영했다. 종군기자였던 맥켄지는 러일전쟁이 일어났던 1904년과 1906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일제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일제의 야만성을 목격한 뒤 영국으로 돌아가 ‘대한제국의 비극’을 써 전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


신미양요

조선과 미국은 1855(철종 6), 1865(고종 2), 1866년에 미국 배가 각각 조선의 동해안 통천, 영일연해, 선천군에 표류함으로써 3차례의 접촉이 있었는데, 이때마다 조선은 미국의 배를 청나라로 호송하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1866년 7월 평양경내의 대동강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운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무력에 의한 강제통상을 계획하고, 청국정부에 사건의 조사를 의뢰했다. 또한 1866년에는 병인양요(丙寅洋擾)를 일으켰던 프랑스에게 공동원정군을 편성하여 조선을 침공하자고 제의했으나,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 전야에 있었으므로 거절했다. 1867년 미국은 슈펠트 중령으로 하여금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의 황해도 연안을 수색했으며, 1868년에도 군함을 파견하여 조선에 대해 손해보상을 청구하는 동시에 통상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황해도·평안도 등지를 배회하며 지방관과 회담하다가 성과 없이 돌아갔다.

미국 국무부는 조선과의 통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군함을 거느리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871년 조선측과의 교섭책임을 주청 특명전권공사 F. F. 로에게 위임하는 동시에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에게 조선원정을 지시했다. 로와 로저스는 상하이[上海]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이르러 휘하의 함대를 집결시킨 뒤 콜로라도호를 비롯한 호위함 3척과 포함 2척, 대포 85문, 병력 1,230명을 거느리고 조선으로 향했다. 미국 함대는 그해 4월 3일 경기도 남양부 풍도 앞바다에 정박하여 수로를 측량하면서 4월 8일에는 물류도(勿溜島) 앞바다에 이르렀다.

조선정부는 남양부사로부터 이러한 급보를 전해 듣고 어재연(魚在淵)을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 이창회(李昌會)를 강화판관에 임명하여 현지로 파견하는 한편, 서울에 있는 각 영(營)으로부터 군대를 차출하고 대포·화약·군량미를 수송했다. 그해 4월 14일 조선정부에서 한학역관(漢學譯官)을 파견하자 로는 미관(微官)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상대하지 않고 고관(高官)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날 오후 로저스는 해군 중령 블레익으로 하여금 소선 4척과 포함 2척을 거느리고 염하(鹽河) 일대를 측량하게 했는데, 이들이 손돌목을 지나 광성진(廣城津)으로 나가려고 할 때 연안을 경비하고 있던 조선 포대는 포격을 가했고, 덕진진(德津鎭) 초지진(草芝鎭)에서도 합세하여 공격했다. 그결과 미국측은 더이상 북상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그해 4월 15일 대원군은 진무사 정기원(鄭岐源)을 시켜 미국의 불법침략을 문책하고 통상조약교섭을 거절하게 했다.

로는 무단공격의 책임은 조선에 있고 3, 4일 내에 협상하지 않으면 미국은 자유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해 4월 23일 로저스는 공격작전을 지시하여 450명의 해병대가 물류도를 출발하여 초지진에 상륙했으며 이튿날 아침 미국 해병대는 전진하여 덕진진을 공격·점령하고 이어 광성보로 육박해왔다. 광성보는 진무중군 어재윤이 경군(京軍)을 거느리고 엄중히 수비하고 있었는데, 수륙양면으로부터 포격을 받아 패하고 말았다.

이 격전에서 조선측은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魚在淳) 등 53명이 전사하고, 강화부 별무사 유예준(劉禮俊) 등 24명의 군인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미군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명을 내었다. 광성보를 빼앗기고 중군 어재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민들은 긴장하고 두려워했으나, 대원군은 지구책(持久策)을 강구하면 프랑스 함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 함대로 퇴각할 것이라 생각해 양이(洋夷) 매국지율(賣國之律)로 다스리겠다는 내용의 교서를 발표했고, 전국 중요도회지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이러한 조선측의 반응은 패전한 조선정부가 당연히 교섭에 응할 것으로 예기하던 미국측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미국측은 다시 교섭을 요구했으나, 조선정부가 응하지 않자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하지 않고는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로와 로저스는 당시 대규모의 침략전쟁을 감행할 수 있는 병력을 보유하지 못했고, 또한 대규모 군사행동은 본국으로부터 받은 훈령 외의 일이었으므로 결국 조선으로부터 철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그해 5월 15일 조선측에 공문을 보내 외교교섭의 책임을 갖고 있는 특파대원의 접견을 거절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논하고 장차 미국 국민이 조선 내에서 조난되었을 경우에는 구조·보호해달라고 요청한 후, 다음날 전함대를 거느리고 청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의 관민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의기충천했고 배외의식이 더욱 강화되었다. 신미양요 이후 조선인의 쇄국 및 배외의 태도는 더욱 견고해졌다.

<콜로라도호, 빼앗은 수기앞에서 미군들의 기념촬영>

이 격전에서 조선측은 어재연과 그의 동생 어재순(魚在淳) 등 53명이 전사하였다.

단 한 명의 탈영병도 없이 목숨걸고 싸웠다.


주인공중의 한명인 장포수와 그의 아버지의 죽음

[장성한 장포수의 모습] 전쟁의 아픔으로 평생을 조국을 지키는데 투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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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연구


캐나다 북부 북극권 지역의 유적 발굴지의 모습이다. 두 팀의 연구자들이 게놈 해독을 통해 각각 미국 원주민 및 북극권 거주민의 기원을 밝혔다. 사진 제공 막스플랑크연구소

캐나다 북부 북극권 지역의 유적 발굴지의 모습이다. 두 팀의 연구자들이 게놈 해독을 통해 각각 미국 원주민 및 북극권 거주민의 기원을 밝혔다. 사진 제공 막스플랑크연구소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미국 원주민의 정체가 시베리아 북동부에 살던 미지의 인류와 동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 고인류의 게놈을 해독한 연구로 밝혀졌다. 기존에도 미국 원주민이 시베리아 북동부를 거쳐 온 인류이며 동아시아 지역 인류의 피가 일부 섞였다는 사실은 밝혀져 있었지만, 구체적인 정체와 이들의 이주 경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스케 윌러슬레프 덴마크 코펜하겐대 룬드벡재단지구유전학센터 교수와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공동연구팀은 시베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새로 발굴된 인류의 유골 화석을 이용해 게놈을 해독한 뒤 유전자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 지역 옛 인류의 이동 경로를 새롭게 밝혀 ‘네이처’ 5일자에 발표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미국 원주민)이 과연 어디에서 온 누구의 후손인지는 인류학의 큰 미스터리 중 하나다. 여러 고고학 및 고인류학 연구를 통해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시베리아와 아래스카가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돼 형성된 대륙인 ‘베링기아’를 통해 건너온 시베리아 및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그 인류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3만 1000년 전부터 600년 전까지 시베리아 북동부에 살았던 고인류 34명의 유골에서 시료를 채취해 게놈을 해독한 뒤 유전자의 변이를 역으로 추적해 이주 역사를 재구성했다. 채취한 지역은 한반도 북동부의 ‘악마문 동굴’부터 중국 북부, 중앙아시아, 러시아 북동부 등 다양했다.

연구 결과 약 3만 년 전 이전에 ‘고대 북시베리아인’이라고 이름 붙인 인류가 시베리아 북동부에 진출했다. 이들은 정체가 처음 알려진 인류 그룹인데, 서유럽의 수렵채집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약 2만 6500~1만 9000년 전 사이에 닥친 가장 혹독한 빙하기에 환경이 약간 따뜻한 베링기아 남단으로 진출했다. 

악마문 동굴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인 역시 비슷한 시기에 베링기아로 진출했다. 이들과 고대 북시베리아인들은 진출 과정에서 또는 베링기아에서 섞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섞인 인류는 약 2만 40000년 전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쪽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이들이 오늘날의 미국 원주민의 조상이라는 결론이다. 다른 한 쪽은 다시 시베리아로 향해 ‘고대 고(古)시베리아인’이라는 인류가 됐다. 이후 약 1만 년 전, 시베리아 북부에서는 ‘신 시베리아인’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인류가 동아시아에서 이주해 와 시베리아에 남아 있던 고대 고시베리아인을 밀어내고 이전 현재의 시베리아인들의 조상이 됐다.


약 3만~4만 년 전 이후의 시베리아 북동부 인류의 이동을 설명한 그림. 미지의 고대 북시베리아인이 베링기아에 진출했고,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인류와 만났다. 이렇게 섞인 인류는 동서로 나뉘어 일부는 지금은 사라진 고대 고시베리아인이 됐고, 일부는 미국 원주민의 조상이 됐다. 네이처 제공

약 3만~4만 년 전 이후의 시베리아 북동부 인류의 이동을 설명한 그림. 미지의 고대 북시베리아인이 베링기아에 진출했고,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유래한 인류와 만났다. 이렇게 섞인 인류는 동서로 나뉘어 일부는 지금은 사라진 고대 고시베리아인이 됐고, 일부는 미국 원주민의 조상이 됐다. 네이처 제공


이번 연구는 윌러슬레프 교수팀이 지난해 1월 네이처에 발표했던 논문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당시에도 윌러슬레프 교수팀은 미국 원주민의 조상에 동아시아인이 있음을 밝혔다. 연구팀은 1만1500년 전 알래스카인 어린이 유골로부터 게놈을 해독한 뒤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 대륙의 현생인류 167명의 유전자와 비교해, 미국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의 조상은 약 3만6000년 전의 동아시아인이며, 이들이 약 2만 년 전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거쳐 빙하기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의 벤 포터 미국 알래스카대 인류학과 교수는 당시 e메일 인터뷰에서 “이 미지의 동아시아인은 현재의 중국 한족을 비롯해 여러 동아시아인 조상의 특징을 고루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호세 빅터 모레노 메이어 덴마크 코펜하겐대 지리유전학센터 박사도 e메일 인터뷰에서 "미국 원주민의 게놈 가운데 3분의 1은 고대의 북동 유라시아인에게서 유래했다"며 "약 2만5000년 전까지 고대 동아시아인과 유전적 교류가 활발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와 2018년 연구를 종합하면, 3만 여 년 전까지 시베리아 북동부에 살던 유라시아인들은 약 2만5000년 전쯤 베링기아로 이동했다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그 중 하나는 아메리카대륙으로, 나머지는 다시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이들이 미국 땅으로 들어가 지금의 미국 원주민이 됐다.

한편 네이처에는 윌러슬레프 교수팀의 연구와 나란히 북극 지역의 인류의 이주 역사를 밝힌 독일 막스플랑크인류사연구소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연구는 최초의 미국 원주민 이후 두 번째로 큰 인류 집단 이주인 북극 거주민들의 이주를 밝힌 결과, 약 5000년 전 시베리아 북부에서 ‘고 에스키모’라는 인류가 베링기아를 거쳐 이주해 왔으나, 이들은 현재의 이누이트 등 북극권 주민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약 800년 전에 새로운 인류가 퍼져 지금의 이누이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 베링해협

평균깊이가 30~50m이고 가장 좁은 곳은 너비가 85㎞ 정도 된다. 이 해협에는 2개의 다이오미드 섬(약 16㎢)을 비롯한 많은 섬이 있고 해협 남쪽에는 세인트로렌스 섬(2,667㎢)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 연방의 국경선이 이 해협을 통해 뻗어 있다.

베링 해수의 일부가 이 해협을 통해 북극해로 흘러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대부분은 태평양으로 되돌아간다. 겨울에는 심한 폭풍이 불며 바다는 평균두께가 1.2~1.5m인 빙판으로 덮인다. 한여름에도 베링 해에는 얼음이 떠다닌다.

이 해협의 이름은 1728년에 이 해협에 배를 타고 들어온 덴마크인 선장 비투스 베링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해면의 높이가 100m 이하로 낮아졌던 빙하기(약 2만~3만 5,000년 전) 동안에 이 해협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를 잇는 육교 역할을 했는데, 이 육교를 통해 상당한 수의 식물과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도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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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길이
공사중이다.
그에 따른 역세권 개발을 위한
설문이 진행중이다.


위 설문에 따르면
2021년에 개통될 예정으로 보인다.

현재는 주변에 공사중이다.

철도선로 출입금지
한국철도시설공단 고려개발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그 철도는 편도이다.

다리를 공사하고 있다.

승강장도 공사중이다.

철도용 자재도 보인다

충주역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되는 모습이다.

철도는 장차 남북통일 이후에 아시아로 진출하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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