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길이
공사중이다.
그에 따른 역세권 개발을 위한
설문이 진행중이다.


위 설문에 따르면
2021년에 개통될 예정으로 보인다.

현재는 주변에 공사중이다.

철도선로 출입금지
한국철도시설공단 고려개발  프랭카드가
걸려있다.

그 철도는 편도이다.

다리를 공사하고 있다.

승강장도 공사중이다.

철도용 자재도 보인다

충주역이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되는 모습이다.

철도는 장차 남북통일 이후에 아시아로 진출하는 매우 중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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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테마 - 실증환국사 1,2 - 실증배달국사1

아스달 연대기가 2019.06.01일날 방영이 시작되었다.

기획의도에 소개된 내용은

'태고의 땅 ‘아스’에서 서로 다른 전설을 써가는 영웅들의 운명적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이다.

아스달 연대기 메인 포스터

주요내용으로 제1회에 소개된 내용으로 살펴보면 '달의 평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이유와 계기에 대해 본질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새녘족, 흰산족, 해족과 뇌안탈, 와한족 등 다양한 종족과 그들 간의 갈등이 소개됐다. 태고 시절을 다루는 것은 미국은 '왕좌의 게임' 중국의 '구주해상목운기' '반지의 제왕' ' 해리포터'등 신화적인 요소도 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틈틈히 "아스달 연대기"에서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아스달은 무엇인지 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연기에서 아스달은 <삼국유사>에서 소개되고 있는 단군조선의 수도인 <아사달(阿斯達)>을 모티브로 하는 것 같다.

<삼국유사>의 원본을 살펴보면

위 판본은 조선 중종 7 1512(壬申)년 인쇄된 ≪삼국유사(三國遺事)≫ 정덕본(正德本)으로 국보 306-2호이다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 보관 중인 사본이다.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두 번째 페이지.

 

[원문(原文)]

古朝鮮 (王儉朝鮮)

고 조 선   왕 검 조 선

魏書云 乃往二千載 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

위 서 운  내 왕 이 천 재  유 단 군 왕 검  입 도 아 사 달

(經云 無葉山 亦云 白岳 在白州地 或云

경 운  무 엽 산  역 운   백 악  재 백 주 지  혹 운

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재 개 성 동  금 백 악 궁 시   개 국 호 조 선  여 고 동 시

古記云 昔有桓(謂帝釋也) 庶子桓雄

고 기 운  석 유 환 국  위 제 석 야   서 자 환 웅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삭 의 천 하  탐 구 인 세  부 지 자 의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하 시 삼 위 태 백  가 이 홍 익 인 간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내 수 천 부 인 삼 개  견 왕 리 지  웅 솔 도 삼 천

降於太伯山頂(卽太伯 今妙香山)神壇樹下

강 어 태 백 산 정  즉 태 백  금 묘 향 산 신 단 수 하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위 지 신 시  시 위 환 웅 천 왕 야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장 풍 백 우 사 운 사  이 주 곡 주 명 주 병 주 형 주 선 악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범 주 인 간 삼 백 륙 십 여 사 재 세 이 화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시 유 일 웅 일 호  동 혈 이 거  상 기 우 신 웅  원 화 위 인

時神遣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시 신 견 령 애 일 주  산 이 십 매 왈  이 배 식 지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불 견 일 광 백 일  편 득 인 형  웅 호 득 이 식 지  기 삼 칠 일

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웅 득 녀 신  호 불 능 기 이 불 득 인 신

熊女者 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웅 녀 자  무 여 위 혼  고 매 어 단 수 하  주 원 유 잉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 壇君王儉

웅 내 가 화 이 혼 지  잉 생 자  호 왈  단 군 왕 검

以唐堯卽位五十年庚寅(唐堯卽位元年戊辰

이 당 요 즉 위 오 십 년 경 인  당 요 즉 위 원 년 무 진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칙 오 십 년 정 사  비 경 인 야  의 기 미 실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도 평 양 성  금 서 경   시 칭 조 선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

우 이 도 어 백 악 산 아 사 달  우 명 궁  일 작 방

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홀 산   우 금 미 달  어 국 일 천 오 백 년

周武王卽位己卯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주 무 왕 즉 위 기 묘 봉 기 자 어 조 선 단 군 내 이 어 장 당 경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후 환 은 어 아 사 달 위 산 신  수 일 천 구 백 팔 세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

당 배 구 전 운  고 려 본 고 죽 국 금 해 주   주 이 봉 기 자 위

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北帶方)

조 선   한 분 치 삼 군 위 현 도 락 랑 대 방  북 대 방

通典亦同此說 (漢書 則眞臨樂玄四郡 今云

통 전 역 동 차 설   한 서  칙 진 림 락 현 사 군  금 운

三郡 名又不同 何耶)

삼 군   명 우 불 동  하 야

 

[해석(解釋)]

고조선(왕검조선)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계셨는데, 아사달(阿斯達)(≪경()[1]≫에 이르기를 무엽산(無葉山)이라고도 하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하였는데 백주(白州)의 땅에 있다. 혹은 개성(開城)의 동쪽 지역에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이것이다.)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바로 요()[2]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제석을 이른다.) 서자부에 환웅(桓雄)께서 계셨다. 항상 천하에 뜻을 두었으며, 인간 세상을 탐구하였다. 아버지께서 자식의 뜻을 아시고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伯山) 살펴보시니 가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이에 천부인 삼 개를 전수하시고, 그 이치로써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께서 무리 3천 명을 이끌고 가셨다. 태백산(太伯山)(즉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정상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가셨다. 이름하여 신시(神市)이며, 이 분이 바로 환웅천왕(桓雄天王) 이라 한다.

환웅천왕은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ㆍ생명ㆍ질병ㆍ형벌ㆍ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상을 이치로써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이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기도하였다. 이때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몸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웅족과 호족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웅족은 삼칠일(21) 동안 참아서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족은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혼인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신단수 아래에서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잠시 사람으로 변해 웅녀와 혼인하였고, 웅녀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이 분을단군왕검(壇君王儉)’이라 하였다.

왕검은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요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년(기원전 2333)이므로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아마도 사실이 아닌 듯하다.)에 평양성(平壤城)(지금의 서경(西京)이다.)에 도읍하고 비로소 국호를조선(朝鮮)’이라 하였다. 이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도읍을 옮겼다. 이곳을 궁홀산(弓忽山)(방홀산(方忽山)으로 된 것도 있다.)이라고도 하고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나라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그래서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나라 ≪배구전(裵矩傳)≫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지금의 해주(海州)이다.)이었는데 주()나라가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다. ()나라는 이를 나누어서 3군을 설치하고 현도(玄菟)ㆍ낙랑(樂浪)ㆍ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이라 불렀다.’

≪통전(通典)≫도 이 말과 같다. (≪한서(漢書)≫에는 진번(眞番)ㆍ임둔(臨屯)ㆍ낙랑ㆍ현도의 4군이라 하였는데, 지금 3군이라 하고 또 이름도 다르니 어째서일까?)  

 

 


[1] ≪경()≫은 ≪산해경(山海經)≫을 말한다.

[2] 고려 3대 정종의 이름이 요()여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 고()라 쓴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고사(고대사)의 이야기를 알려면

<실증 환국사>1,2권 (북랩출판사, 2015년)과 <실증 배달국사> 1권 (북랩출판사, 2017년)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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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테마 - 실증환국사 1,2 - 실증배달국사1

도나우강(독일어: Donau, 영어: Danube 다뉴브[*], 라틴어: Danubius, 문화어: 두나이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흘러가는 길이 2,860km의 유럽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도나우강은 독일 남부의 브레게강과 브리가흐강이 합류하면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대평원을 지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이른다. 여기서 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면서 카르파티아산맥발칸산맥 사이를 통과하는데 이곳은 철문(鐵門, Iron Gates)이라고 불리는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하류에 이르면 저지대인 루마니아 남부의 왈라키아 평원을 지나게 된다. 흑해에 가까워지면서 도나우강은 도브루자 구릉지대를 만나면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다가 다시 동쪽으로 흘러 비로소 흑해로 유입한다. 강 하구에서는 세 개의 주요 분류로 나뉘면서 삼각주를 형성하는데 그 면적은 약 5,000km2이다.[1]

강이 흐르는 지역에 따라 불리는 이름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라인 마인 도나우 운하가 1992년 건설된 이후 도나우강은 북해로테르담으로부터 흑해술리나까지 전 유럽을 가로지르는 3500km 수로의 일부가 되었다. 도나우강으로 운송된 화물량은 1987년에 1950년 수준의 13.3배인 9천 180만 톤으로 집계되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시기에 있었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유고슬라비아 공습 과정에서 세르비아 교량 3곳이 파괴되어 도나우강 운행이 한동안 힘들어졌다가 2002년 그 잔해가 모두 치워졌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유명한 왈츠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An der schönen, blauen Donau)'가 있다.

독일의 슈바르츠발트('검은 숲'이라는 뜻) 삼림지대에서 시작해 유럽 대륙의 남동부로 약 2,850㎞를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이 강은 독일·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세르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러시아 등을 거쳐 흐른다.

도나우 강 유역의 총면적은 81만 6,000㎢에 이른다. 이 면적의 약 56%는 도나우 강의 오른쪽 지류로 물이 빠지며, 이 지류들은 알프스 산맥을 비롯한 산악지방에서 물을 모아 도나우 강으로 흘러든다. 도나우 강의 연평균 유출량은 1초에 7,193㎥이다.

 

도나우 강은 슈바르츠발트 삼림지대의 동쪽 사면에 있는 2개의 작은 샘에서 발원한다. 그 샘들은 바로 브레크 샘과 브리가흐 샘으로, 여기서 흘러나온 2줄기의 시냇물이 도나우에슁겐에서 합류해 비좁고 바위가 많은 강바닥을 따라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잉골슈타트 주와 레겐스부르크 주 사이에서는 슈바벤 산맥과 프랑켄 산맥을 가로지르며, 왼쪽에 협곡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를 만든다. 강의 오른쪽에는 바이에른 고원이 있고, 이 고원은 알프스 산맥에서 흘러내린 지류들이 두껍게 쌓아 놓은 침전물로 덮여 있다. 북쪽 끝 지점인 레겐스부르크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파사우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들어가며 그곳에서는 보헤미아 삼림지대의 비탈을 가로지르며 비좁은 골짜기를 만든다.

도나우 강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근처에서 헝가리의 게이츠 협곡을 빠져 나와 바로 키슈[小]올푈드 평원으로 들어간다. 이 지역에서는 강둑이 낮고 강바닥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어떤 곳에서는 강바닥의 폭이 1.6㎞에 이르기도 한다. 슬로바키아의 코마르노 동쪽에 이르면 서(西)카르파티아 산맥과 헝가리 트란스다뉴브 산맥 사이에 있는 비세그라드 협곡으로 들어간다. 부다페스트를 지나 광대한 노디[大]올푈드 평원을 가로지른 다음, 1970년대에 수력발전소 건설과 해운 개발이 활발해진 아이언게이트 협곡에 다다른다.

도나우 강은 이 긴 협곡을 흐르면서 주요지류들인 드라바·티소·사바 강의 물을 받아들인다. 아이언게이트를 지난 도나우 강 하류는 넓게 펼쳐진 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데, 이 평야의 남쪽으로는 고원지대인 불가리아의 도나우 평원이 있고 북쪽으로는 루마니아 왈라키아 평원이 있다. 컬러라시 서쪽에서 루마니아로 들어가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체르나보더에 이르면 북쪽으로 갈라치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갈라치에 이르면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갑자기 바꾼다. 툴체아 근처에서 도나우 강은 삼각주로 넓게 퍼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강줄기가 3갈래로 갈라져 약 80㎞쯤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흑해를 향해 흘러간다. 도나우 강의 하류는 중요한 화물수송로이며, 상류는 수력발전의 중요한 자원이다.

참고로 유럽의 대표적인 강은

1. 다뉴브(Danube) 강 - 독일남부- 흑해

  경유 10개국-독일-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헝가리-크로아티아-세르비아-불가리아-루마니아-몰도바-우크라이나

2. 라인(Rhine)강 - 스위스 남동부 산악지대 - 독일남부 - 네델란드- 북해

3. 볼가(Volga)강 - 모스크바 북서쪽 - 카스피해

4. 세느(Seine)강 - 프랑스 북부 -파리- 영국해협

5. 엘베(Elbe)강 - 체코 - 보헤미아 - 독일 - 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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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읍에는
음식점 이름이 중원맛집이 있다.


괴산에 여행이 있어서 갔는데
음식이 기억에 남아서
소개드립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식당이 있는데
아담하게 꾸며져 있네요.


짜끌이와 청국장 시켜서 먹었는데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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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복비 전세 계약 만료 후 자동 갱신, 나갈 때 복비는 누가?

전세 계약 만료 후 자동 갱신, 나갈 때 복비는 누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묵인 재계약을 2번 했습니다.
재계약 만료는 8개월 정도 남겨 있구요. 집을 나갈 때
복비를 제가 부담해야 한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2년 후에 따로 기간을 정해 놓고 산 것이 아니면 중개수수료는 임차인(님)이 부담하지 않습니다.

기간도 안 정했는데 뭘 위반했다고 중개수수료를 내는지? 상식적으로 따져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집주인이 우겨서 내라고 하면 국가 유권 해석을 복사해서라도 보여주고 낼 수 없다고 따져야 합니다.

1.  묵시적 갱신으로 살다가 이사를 나가는 경우는 살고 있는 세입자인 님이 중개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중개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는 1년 안에 나가는 경우로 3개월 전에 먼저 나가는 경우는 계약 위반으로

     중개수수료를 부담합니다.

2.  하지만 1년으로 계약을 하고 따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살다가 나가는 것은 "처음" 기간을 어긴 것이 아니니

     중개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3.  국가적인 유권 해석(국토해양부)도 임차인이 중개수수료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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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 전자 민원 6866. 2005. 2. 12   :  

주택임대차 계약 만료 후 자동 연장되어 2년이 경과되지 않고

이사를 할 경우에 중개수수료 부담은

"중개의뢰인인 임대인과 새로운 임차인 쌍방이 부담하는 것이 원칙"

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

4.  이런 글을 복사해서 근거를 제시하시길 바랍니다.

     부당하게 공제를 하다면 소송이라도 가서 판결문 받아서 반환 받겠다고 따져서 대처를 하시길 바랍니다.

참고 하셨으면  합니다.

 

2019.05.21일 이런 경우가 발생해서  참고하고자 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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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가는 길에
옥수역에서 시간이 남아서
역을 둘러보니 이런글이 있어서
읽어보니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 | 옥수역 경의중앙선
도움말 Daum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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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에 아시아N에서 재방송해준 구주해상목운기를 3주간 75부작을 모두보았다.

시즌 1 -  8부작 - 폭풍의 예언

시즌 2 - 30부작 - 천하의 주인

시즌 3 - 37부작 - 천쟁의 서막

다 보았으나 아직은 드라마가 종료된 것 같지는 않다.

아직 시즌4에 대한 소식은 없다. 그러나 기다려진다. 그래서 75부작을 본 감동을 조금만 기록해 놓고자 한다.

 반혜와 목운생의 모습

사람은 누구나 욕망이 있다. 그러나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고, 이것을 과학에서는 적자생존이라한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다. 적자생존의 투쟁을 그린 것이다.

소어응과 목여한강

소어웅과 목여한강의 사랑은 너무 깊은 사랑이며, 서로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소어응의 모습
목운생의 어머니 은용(황후)과 아버지 목운근(황제)

두 사람의 사랑은 일편단심이다.

 

긴긴 드라마 내용중에서 위 3 커플이 기억에 남는다.

많은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시즌 3까지 왔는데 시즌4가 언제나 나오려나 기다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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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화약고] 또 하나의 중동 뇌관 '골란고원' 이를 건드린 트럼프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산다.

표를 위해서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을 생각한다.

트럼프는 유대인의 표를 얻기 위하여 당장에 그들이 좋아할 테마를 선정했다.

[사진 001]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2019.03.22일 이스라엘이 주장하고 있는 골란고원의 주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즉 골란고원은 시리아로부터 빼앗아서 점령하고 있는

땅이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땅이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럼 골란고원은 어떤 땅인지 알아보자.

골란 고원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점령한 이후 중동 분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는 시리아와 실효 지배를 강화하려는 이스라엘은 52년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림 002]흰색 부분이 바로 골란 고원이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접경이고 이곳을 통과하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이스라엘 북부, 시리아 남서쪽 끝 해발 1000m에 위치한 바위투성이 고지대이다. 이 고원을 두고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수십년간 갈등을 빚고 있는 건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골란은 이스라엘·시리아외 요르단, 레바논과도 맞닿아 잇다. 고원에 오르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한 눈에 보인다. 또 레바논쪽 베카계곡은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이어가는 강경 시아파 헤즈볼라의 거점이다. 골란고원을 차지하는 쪽은 상대의 움직임을 손쉽게 간파하는 전략적 잇점을 가진다.

여기에 토지가 비옥해 포도를 재배하기 좋고, 물의 원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골란 고원에는 약 4만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1967년 중동전쟁 이전부터 거주해 온 주민이거나 그들의 후손으로, 대다수는 드루즈파(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절반은 이스라엘이 영토를 점령한 후 이주해 온 유대인 정착민들이다.



[그림 003]갈릴리호에서 바라본 골란 고원의 모습


문화와 문명이 충돌하는 것은 그들이 믿는 신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골란고원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의 땅을 이슬라엘의 땅으로 인정하면

결국에는 분쟁과 심해지면 전쟁의 불씨가 된다.

그것도 강대국이 관여하는 대 전쟁이 될 수 있다.

지구의 화약고는 중동과 한반도이다.


과연 3차 세계의 불씨는 어디에서 폭발하게 될 것인가?


[그림 004] 전운이 드리운 골라고원에서의  훈련 모습


인류의 마지막 3차 대전으로 인류는 폭망하고 인구의 99%가

전멸하는 참화를 격고나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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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편 30장 ]
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1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2 그 부친 고수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3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4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이는 순의 부친이 순을 죽이려 하였다는 것과
부친이 봉사였다는 기록으로
부모가 나쁜사람으로 인식되도록 했으니
천하의 불효이며
오죽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았으면
죽이려 하였을까!
순임금이 효자라 일러오나 이는
역사 인식이 잘못된것이다.

2019.3.22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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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순임금

강태공

History(역사) 2019.03.06 21:13
태공망 여상(강태공)의 생애와 심법연구   
 
십년 경영으로 3600 개의 낚시를 벌리다 (10년동안 3600개의 빈 낚시를 벌리다)

 강태공 -  태공망 여상은 지금으로 부터 3000 여년 전인 서기전 12세기경 사람이다.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이며 자(字)는 자아(子牙)로  염제신농씨의 후손이다.  
그의 선조는 일찍이 사악(四嶽 : 四方제후의 장관)이 되어 우임금을 보좌했으며 치수사업에도
큰 공을 세운 바 있었다.    우임금(중국 하은주 시대-하나라,은나라,주나라,  하나라의 창업자 시조)

그후 그의 선조가 여(呂) 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본성은 강씨이지만 봉지 명을 따라
성씨를 삼기 때문에 여상(呂尙)이라고도 불렀다.
 
여상은 가난 속에서 곤궁하게 살며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며 학문에 열중했는데
집안 살림은 부인 마씨가 맡아 뒷바라지를 했다.  
하루는 마씨 부인이 들에 일을 나가면서 비가 오면 마당에 말려놓은 갱피를 거두어 놓으라고
당부를 하고 나갔다.  
그후 많은 비가 내렸는데 마씨 부인이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늘어놓은 갱피가 빗물에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그런데 여상은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책만 읽고 있었다.  

마씨 부인은 더 이상 가난한 살림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재가를 해버렸다. 
이후에도 여상은 여전히 책을 읽거나 위수에서 낚시를 하며 사색하곤 했다. 
 
은, 주나라의 시대상

 

이 무렵은 은나라가 쇠퇴하고 주나라가 일어서기 전의 시대로
그 전후 시대상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나라의 조상인 ‘설’ 과 주나라의 조상인 ‘후직’ 은 모두 순임금 시대의 인물로
사도(司徒)와 농사(農師) 벼슬을 맡았는데 후에 상(商)과 태(邰)에 봉해졌다.
 

 은나라는 설의 14 대손 탕에 와서 하의 걸(桀)을 멸하고 상(商)나라를 건국했다.  
이후 18 대 반경(盤庚)에 가서 도읍을 은(殷)지역으로 옮기면서 은(殷)나라로 불렸다.
 
주나라는 후직으로 부터 태에 살다가 4세 공유(公劉)에 이르러 ‘빈’으로 천도하였고
13세 고공단보에 이르러 기산(岐山)아래 주원(周原)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이때 비로소 나라이름을  주(周)라 부르게 되었다.    고공단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계력이 아들 창(昌)을 낳았는데 성덕이 있어 계력과 창에게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창은 서백(西伯)이라고도 불렸으며,  후일, 주나라를 연 문왕(文王)이다.
 
이 당시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주왕(紂王)은 애첩 달기에 빠져
호화궁전인 녹대를 짓고 주지육림(酒池肉林,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안주를 매단 나무숲)을 만들어
향락과 사치를 일삼았고 충언하는 신하들을 포락지형으로 처형하였다.

이후 민심은 떠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炮烙之形,포락지형은 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이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달군 후,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발이 미끄러져 불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타죽게
하는 것으로, 이를 '포락지형'이라 불렀다.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은 구리기둥 위를 걷게 하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을 내려 미끄러져서
타 죽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였다. 특히 자신에게 충심으로 간언하였던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다.
잠깐! - 
주왕산의 전설에 나오는 중국에서 도망왔다는 주왕은 이 주왕이 아니다, 주왕산 전설의 주왕은
신라왕족 김주원이라는 설과, 중국 당나라때 사람인 주도라는 설이 있는데 이 주도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 이름이 비슷하여, 청송지역 약수터 이름을 달기약수라 지은것이다.
사실 주도(주왕)와 달기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은나라의 주왕과 달기는 3천년전 사람이고, 주도(주왕)는
1400년전쯤의 사람인것이다. 

 

 주왕과 달기는 충신들이 산 채로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특히 옳은 말을 하는 충간자(忠諫者)는 모두 이 형에 처했다고 한다. 약칭으로 '포락'이라고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殷本紀)-
 
- 한편 은나라의 제후국인 주나라의 서백 창은 덕을 쌓고 인망을 얻어서
    귀순하는 자가 많아져 날로 세력이 강해지자, 주왕(紂王)은 서백 창을 유리에 감금시켰다.
 

  이어 서백 창의 큰아들 백읍고를 죽여서 포를 뜬 다음 고깃국을 끊여서 서백 창에게 갖다 주며
“ 세상에서 서백 창을 소위 성인이라 하는데 그가 이 국을 먹으면 제 자식의 살점을 먹는 것이니
성인도 아니요, 먹지 않으면 성인이므로 죽이라.” 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간계를 알아챈, 서백 창은 눈물을 머금고 국을 먹는 시늉
 (살아남기 위해 진짜로 먹었다고도 함)을 했다.

한편 서백 창의 신하인 산의생, 굉요 등이 서백 창을 구해내기 위해주왕에게
낙서의 땅과 미녀와 명마를 뇌물로 바쳤다. 주왕은 크게 기뻐하며 서백 창을 석방하고
궁시(弓矢)와 부월(斧鉞)을 하사하며 천자인 주왕을 대신하여 서쪽 제후들을 다스리게 했다.

 

 서백 창(주나라를 연  문왕), 태공망을 얻다
 

하루는 서백 창이 사냥을 나가려 귀갑(거북등껍질)으로 점을 쳐보니 사관(史官) 편(編)이
‘ 얻는 것은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며 큰곰도 아닌, 사냥에서 얻는 것은 인재다.
’ 라는  점괘를 얻었다.

 

 서백 창은 3일 밤낮을 목욕재계하고 삼가다가 위수(渭水) 상류로 사냥을 나가 위수 번계(磻溪)에서
곧은 낚시를 하고 있는 여상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서백 창과 여상은 인재등용의 원리,  인심을 얻어 천하를 얻고 천하를 경륜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문답을 하였다.

여상의 말을 다 듣고 난 서백 창은 경의를 표하며 절하고 나서 
“ 우리 조상 태공 때 부터 머지 않아 큰 성인이 나타나 우리 주(周)족을 크게 부흥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당신이 바로 그분이요.  우리 태공께서 기다린 지 오래였소.” 하였다.
 

그 후 여상을 태공망(太公望, 태공이 기다리던 사람?) 혹은 태공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백 창은 태공을 자기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가서 스승으로 모시었다.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열다

 서백 창은 매일 아침 단명전에서 조회를 마친 뒤에는 신하들과 함께
치란흥망(治亂興亡,천하의 난리를 다스리고 망하고 흥하는 이치)의 요체에
관한 강태공의 강의를 들었다.
 
 강태공은 서백 창을 도와 성수(별자리)의 움직임을 살펴 절기와 일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치고,  주나라를 크게 융성하게 했으며 특히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강태공은 덕과 계책으로 제후들을 결속시켜 천하의 3분의 2를 주(周)나라에 귀속시키게 했다. 
그러나 서백 창은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강태공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다. 
 
 서백 창의 뒤를 이어 아들 발이 주나라의 무왕으로 즉위했다.
 
 무왕은 고공단보를 태왕(太王)으로 계력을 왕계(王季)라 추존하였으며, 
 서백 창을 문왕(文王)으로 추존하였다. 
 무왕 13년,  천자국인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고자 맹진에서 포고문을 발표하고 목야에 진을 쳤다. 
은나라 백성들은 밥과 물을 가지고 나와 무왕의 군사들을 환영하였으며, 
 주왕의 군사들은 창을 거꾸로 잡고 무왕의 군대에게 길을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은나라는 멸망했다.
 
 무왕은 은나라 수도를 점령한 이튿날 아침
몸소 사단(社壇,제사를 지내는 단)에 나아가 상제(上帝)님께 제사(천제)를 드렸다.
 이어서 무왕은 공신들을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다섯 등급으로 작위를 나누어 영토를 분배하고 제후로 봉함으로써 비로소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강태공도 천하통일의 대공로로  제(齊)나라 땅 백 리의 영토를 받고 제후로 봉해졌다.
 
마씨 부인을 서낭신으로 봉함
 제나라 왕으로 부임한 강태공은 처음에는 많은 이민족의 반항을 받기도 하였지만 정치를 개선하고
풍속을 존중하고 예의를 간략히 하는 등 다스리기에 노력하여 모두가 잘 동화되었다. 
 
 어느 날 강태공이 수레를 타고 시찰을 나갔다.
 어느 거리를 지나는데 옛날 자기를 버리고 재가한 마씨가 들에서 갱피(곡식의 일종)를 훑고 있었다. 
내내 아무 것도 없는 집에 재가하여 갱피를 훑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강태공은 수레를 멈추고 마씨를 불렀다.  마씨는 옛일을 후회하며 다시 자신을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강태공은 물을 한동이 떠오라고 시킨후 마씨부인에게 땅에 쏟으라고 한후
 한번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맺을 수 없다며 재가해 살고있는 마씨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떠났다. 
 
 이후 마씨 부인은 가난하게 살다가 어느 고개 마루턱에서 죽었다.
그후 강태공은 그래도 옛날의 자기 신세를 갚기 위해 마씨 부인을 서낭신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서낭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의 액운을 막고 잡귀를 막는 신이다.
   마씨 부인이 잡귀가 되어 죽어서도 몇십년 살다 없어질 운명을 강태공이 근 3천년이란 세월동안
향화(향불,제사)를 받도록 해서 지난날의 은공을 갚은것이다.  초기 성황당의 유래
  
귀신을 뜻대로 부리다
 
  " 강태공은 72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다"
강태공은 1년을 72후로 나눠 (1후는 5일) 동식물 또는 기타 자연현상 변화의 징후에 근거하여 절기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름을 붙여 농사에 이용하였다.
    또한 강태공은 귀신도 마음대로 사역케 하는 신권을 갖추고 있었는데 중국설화 속에 많은 일화들이
 전해온다.
 [봉신연의]에 보면 은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는 소후의 딸로 은주역 청당에 묵을 때
곤륜산의 천년 묵은 암 여우가 그녀의 혼백을 빼앗고 그녀의 몸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주왕의 비(妃)가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게 되자
곤륜산에서 40 년간 수행을 한 강태공이 도술로 여우를 물리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정산에 좋은 진흙이 있는데 미꾸라지 정령의 방해로 수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육로로 운송해야 했다. 이에 강태공이 신조(神釣)로 미꾸라지 정령을 잡아 수로를 내도록 하였다.  
그 증거로 조어대(釣魚臺)가 있다.
 
 “ 봉서사의 진묵(조선 중기 진묵대사)은 3둔(遁)을 하였고
주나라의 강태공은 52둔을 하였으나
나는 이제 72둔을 다 써서 화둔(火遁)을 트리라.”하신 내용이 있다.  봉서사(전라도 완주군 용진면소재)
 
『봉신연의』에 의하면 강태공이 토둔(土遁) 수둔(水遁) 목둔(木遁) 등을 행하여 몸을 감추어 이동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같이 강태공은 도술에 능통하여 귀신도 능히 뜻대로 부리는 신권이 있었다고 전한다.
 
- 중국소설은 무협소설처럼 워낙 뻥이 심하게 가미돼있는것이 특색이다. 
1%의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하는데 99%의 과장과 뻥?으로 뻥튀기하니 사람들이 다 뻥이라고 하는것이다.
그래도 강태공이 귀신을 부리는 신권을 행사했다는것은 1%의 객관적사실이었을거라고 나는 믿는다-   
 
 

 신교의 맥을 중국 한족에 전수하다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쌓았던 강태공은 강족(姜族)으로 정통 동이족 출신이다. 
강태공은 동방 조선족으로서 신교의 한 맥을 중국 한족에게 전수하게 되는데, 
그는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내려서 나라를 세우고 국가를 통치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삶의 좌표로
삼았다.  그의 저서인 『육도삼략』의 중심에는 동방 신교(神敎)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다. 

사마천 『사기』의 「주본기」에 보면  “ 무왕이 주왕을 처단하고 이튿 날 아침 몸소 사단(社壇)에 나아가 
남쪽을 향하여 모숙정은 맑은 물을 받쳐들고
                     위강숙보는 자리를 깔았으며 … 
                     윤일은 축문을 읽어 주왕의 죄악을 상제께서 듣도록 명백히 아뢰었다” 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청수(淸水,맑은 물)를 모시고 상제께 고하는 부분은 동방 조선족 신교 문화의 원형이다.

또 『사기』「 봉선서」에 의하면 “ 조정의 동남쪽에 태일단(太一壇)을 설하고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을 모셨다.” 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천지인(天地人) 삼재관을 바탕으로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으로서 삼신(三神)을 숭배한

제천행사가 있었는데,  이것이 동방 한민족의 신교(神敎)의 신관이다.

 

 지금으로 부터 8백년전 고려 공민왕 때 행촌 이암은 천일은 조화(造化)의 신,
                                                                       지일은 교화(敎化)의 신,
                                                                       태일은 치화(治化)의 신으로 정의했다.
강태공은 산동성 제나라의 왕이 된 후 동방신교의 삼신관을 서방 중국 땅에 뿌리내렸다.

 

 이로부터 제나라에서 삼신상제님과 치우천황(한민족 배달국 임금)과 천지일월에 제사하는
 팔신제(八神祭)풍속이 더욱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팔신제는 천지의 여덟 신을 섬기는 문화로,  삼신 상제님을 모시는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 등의 신을 모셨다.

 

사기』 ,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의하면 진시황과 한나라 고조(유방)까지도 팔신제를 봉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팔신제는 고대 중국문화 속에 살아있던 동방신교 제사문화의 원형이며 산 증거이다.
 
병법과 정치로 천하만세에 은혜를 베풀다


 강태공이 지은 병법서인 『육도(六韜)』는 다른 병서와 달리 치세(治世)의 대도(大道)로 부터
인간학 조직학을 논급하고 정전(政戰) 및 인륜을 논한 것이 특색이다.

또한 『삼략(三略)』은 감추어져 비전 되다가 진(秦)나라 시대의 황석공이
장량(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의 책사,장자방)에게 전수하여 세상에 드러났다.
 
 태공망의 육도가 역대 병법사상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후대의 손자병법의 손자(孫子), 오자(吳子,오자서), 위료자(尉?子), 이위공(李衛公) 등 중국의 제가(諸家) 병법사상도 『육도삼략』을 기간(基幹)으로 하고 있다.

    전국시대에 6국의 재상을 지낸 유명한 유세가인 소진은 태공망의 병법서를 접하고

비로소 군왕들을 설득하여 천하를 경륜할 도를 터득하게 되었다.
 
 “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 잔악함을 제어하고 폭정을 금하는)의 묘략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술법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루었으되 그 은덕을 보답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동티막이로  ‘ 경신년 모월 모일 강태공 조작(姜太公造作)’ 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의(道義)에 합당하리오.”  하시며 “
  이제 해원(모든 원한을 풀어내는)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게 되리라.”
  

디딜방아에 동티막이 (예전에는 집집마다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동티막이라는것은 액막이, 즉 올 한해도 잡귀로부터 오는
모든 액(질병,사고)을 강태공의 힘을 빌어 막고자 디딜방아에 써 붙인 풍속)   
 

예로부터 잡신을 물리친다는 제살(除煞)의 한 풍속으로 디딜방아를 짓고 나면 흔히 방아몸체에, 
강태공이 태어났다고 하는 연월일시인 ‘경신년(庚申年) 경신월(庚申月) 경신일(庚申日) 경신시(庚申時) 강태공 조작(姜太公 造作)’ 이라고 쓴다.

 

  이를 ‘ 방아상량’이라고 하는데 디딜방아를 고치거나 새로 놓을 때는 반드시 경신일 경신시에 맞추어
방아 동티 (귀신을 노하게 하였을 때 받는 재앙의 하나)를 막고자 하였다. 
 
 이는 강태공을 내세워 잡귀가 덤벼들어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우주원리로 보면
금극목(金克木)의 상극(相克)원리로 강한 금기(金氣)를 지닌 경금(庚金)과 신금(申金)으로써
목기(木氣)에 의한 동티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강태공은 160살을 살다가 죽었다.  
80년은 초야에 묻혀서 가난하게 살았고, 80년은 세상에 뜻을 펼치며 영광스럽게 살았다.

그래서 강태공의 삶을 두고 ‘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고 한다.

 

강태공이 죽자 그를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사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여상은 시해선(尸解仙,육체를 가지고 신선으로 승천)이 되었다고 믿었다. 
또 일각에서는 『육도』라는 여섯 권의 병법서를 남기고 세상을 뜨자 영구(營丘)에
장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천하사 심법
 강태공  

"강태공이 십년 경영으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기 위함이었으랴.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려 하였음이다” 

  

강태공이 80 평생을 가난 속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며 위수에서 10년 동안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려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후세에 천하사를 하는 심법을
전수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 내 종자는 삼천년 전 부터 내가 뿌려놓았느니라.”

 


 <참고자료> 
 『육도삼략』이상옥 역해 명문당 /
『사기』 사마천 원저 김병총 평역 집문당 /
『봉신연의』 안능무 평역 솔출판사 /
『서경』 권덕주 역해 혜원출판사 /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배옥영 지음 다른생각 /
 『디딜방아 연구』 김광언 저 지식산업사
태공망 여상(강태공)의 생애와 심법연구   
 
십년 경영으로 3600 개의 낚시를 벌리다 (10년동안 3600개의 빈 낚시를 벌리다)


 강태공 -  태공망 여상은 지금으로 부터 3000 여년 전인 서기전 12세기경 사람이다.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이며 자(字)는 자아(子牙)로  염제신농씨의 후손이다.  
그의 선조는 일찍이 사악(四嶽 : 四方제후의 장관)이 되어 우임금을 보좌했으며 치수사업에도
큰 공을 세운 바 있었다.    우임금(중국 하은주 시대-하나라,은나라,주나라,  하나라의 창업자 시조)

그후 그의 선조가 여(呂) 나라에 봉하여졌으므로 본성은 강씨이지만 봉지 명을 따라
성씨를 삼기 때문에 여상(呂尙)이라고도 불렀다.
 
여상은 가난 속에서 곤궁하게 살며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며 학문에 열중했는데
집안 살림은 부인 마씨가 맡아 뒷바라지를 했다.  
하루는 마씨 부인이 들에 일을 나가면서 비가 오면 마당에 말려놓은 갱피를 거두어 놓으라고
당부를 하고 나갔다.  
그후 많은 비가 내렸는데 마씨 부인이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늘어놓은 갱피가 빗물에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그런데 여상은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책만 읽고 있었다.  

마씨 부인은 더 이상 가난한 살림을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 재가를 해버렸다. 
이후에도 여상은 여전히 책을 읽거나 위수에서 낚시를 하며 사색하곤 했다. 
 
은, 주나라의 시대상

 

이 무렵은 은나라가 쇠퇴하고 주나라가 일어서기 전의 시대로
그 전후 시대상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은나라의 조상인 ‘설’ 과 주나라의 조상인 ‘후직’ 은 모두 순임금 시대의 인물로
사도(司徒)와 농사(農師) 벼슬을 맡았는데 후에 상(商)과 태(邰)에 봉해졌다.
 

 은나라는 설의 14 대손 탕에 와서 하의 걸(桀)을 멸하고 상(商)나라를 건국했다.  
이후 18 대 반경(盤庚)에 가서 도읍을 은(殷)지역으로 옮기면서 은(殷)나라로 불렸다.
 
주나라는 후직으로 부터 태에 살다가 4세 공유(公劉)에 이르러 ‘빈’으로 천도하였고
13세 고공단보에 이르러 기산(岐山)아래 주원(周原)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이때 비로소 나라이름을  주(周)라 부르게 되었다.    고공단보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셋째 계력이 아들 창(昌)을 낳았는데 성덕이 있어 계력과 창에게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창은 서백(西伯)이라고도 불렸으며,  후일, 주나라를 연 문왕(文王)이다.
 
이 당시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주왕(紂王)은 애첩 달기에 빠져
호화궁전인 녹대를 짓고 주지육림(酒池肉林,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안주를 매단 나무숲)을 만들어
향락과 사치를 일삼았고 충언하는 신하들을 포락지형으로 처형하였다.

이후 민심은 떠나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炮烙之形,포락지형은 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이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달군 후,
죄인으로 하여금 그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하여 발이 미끄러져 불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타죽게
하는 것으로, 이를 '포락지형'이라 불렀다.
 
기름을 발라 숯불 위에 걸쳐 놓은 구리기둥 위를 걷게 하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을 내려 미끄러져서
타 죽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즐거워하였다. 특히 자신에게 충심으로 간언하였던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다.
잠깐! - 
주왕산의 전설에 나오는 중국에서 도망왔다는 주왕은 이 주왕이 아니다, 주왕산 전설의 주왕은
신라왕족 김주원이라는 설과, 중국 당나라때 사람인 주도라는 설이 있는데 이 주도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 이름이 비슷하여, 청송지역 약수터 이름을 달기약수라 지은것이다.
사실 주도(주왕)와 달기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은나라의 주왕과 달기는 3천년전 사람이고, 주도(주왕)는
1400년전쯤의 사람인것이다. 

 

 주왕과 달기는 충신들이 산 채로 불에 타죽는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특히 옳은 말을 하는 충간자(忠諫者)는 모두 이 형에 처했다고 한다. 약칭으로 '포락'이라고도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殷本紀)-
 
- 한편 은나라의 제후국인 주나라의 서백 창은 덕을 쌓고 인망을 얻어서
    귀순하는 자가 많아져 날로 세력이 강해지자, 주왕(紂王)은 서백 창을 유리에 감금시켰다.
 

  이어 서백 창의 큰아들 백읍고를 죽여서 포를 뜬 다음 고깃국을 끊여서 서백 창에게 갖다 주며
“ 세상에서 서백 창을 소위 성인이라 하는데 그가 이 국을 먹으면 제 자식의 살점을 먹는 것이니
성인도 아니요, 먹지 않으면 성인이므로 죽이라.” 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간계를 알아챈, 서백 창은 눈물을 머금고 국을 먹는 시늉
 (살아남기 위해 진짜로 먹었다고도 함)을 했다.

한편 서백 창의 신하인 산의생, 굉요 등이 서백 창을 구해내기 위해주왕에게
낙서의 땅과 미녀와 명마를 뇌물로 바쳤다. 주왕은 크게 기뻐하며 서백 창을 석방하고
궁시(弓矢)와 부월(斧鉞)을 하사하며 천자인 주왕을 대신하여 서쪽 제후들을 다스리게 했다.

 

 서백 창(주나라를 연  문왕), 태공망을 얻다
 

하루는 서백 창이 사냥을 나가려 귀갑(거북등껍질)으로 점을 쳐보니 사관(史官) 편(編)이
‘ 얻는 것은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며 큰곰도 아닌, 사냥에서 얻는 것은 인재다.
’ 라는  점괘를 얻었다.

 

 서백 창은 3일 밤낮을 목욕재계하고 삼가다가 위수(渭水) 상류로 사냥을 나가 위수 번계(磻溪)에서
곧은 낚시를 하고 있는 여상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서백 창과 여상은 인재등용의 원리,  인심을 얻어 천하를 얻고 천하를 경륜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문답을 하였다.

여상의 말을 다 듣고 난 서백 창은 경의를 표하며 절하고 나서 
“ 우리 조상 태공 때 부터 머지 않아 큰 성인이 나타나 우리 주(周)족을 크게 부흥시킬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당신이 바로 그분이요.  우리 태공께서 기다린 지 오래였소.” 하였다.
 

그 후 여상을 태공망(太公望, 태공이 기다리던 사람?) 혹은 태공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백 창은 태공을 자기 수레에 태워 함께 돌아가서 스승으로 모시었다.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열다

 서백 창은 매일 아침 단명전에서 조회를 마친 뒤에는 신하들과 함께
치란흥망(治亂興亡,천하의 난리를 다스리고 망하고 흥하는 이치)의 요체에
관한 강태공의 강의를 들었다.
 
 강태공은 서백 창을 도와 성수(별자리)의 움직임을 살펴 절기와 일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법을 가르치고,  주나라를 크게 융성하게 했으며 특히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강태공은 덕과 계책으로 제후들을 결속시켜 천하의 3분의 2를 주(周)나라에 귀속시키게 했다. 
그러나 서백 창은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강태공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다. 
 
 서백 창의 뒤를 이어 아들 발이 주나라의 무왕으로 즉위했다.
 
 무왕은 고공단보를 태왕(太王)으로 계력을 왕계(王季)라 추존하였으며, 
 서백 창을 문왕(文王)으로 추존하였다. 
 무왕 13년,  천자국인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고자 맹진에서 포고문을 발표하고 목야에 진을 쳤다. 
은나라 백성들은 밥과 물을 가지고 나와 무왕의 군사들을 환영하였으며, 
 주왕의 군사들은 창을 거꾸로 잡고 무왕의 군대에게 길을 내주었다.
이렇게 해서 은나라는 멸망했다.
 
 무왕은 은나라 수도를 점령한 이튿날 아침
몸소 사단(社壇,제사를 지내는 단)에 나아가 상제(上帝)님께 제사(천제)를 드렸다.
 이어서 무왕은 공신들을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다섯 등급으로 작위를 나누어 영토를 분배하고 제후로 봉함으로써 비로소 봉건제도를 실시하였다.
 강태공도 천하통일의 대공로로  제(齊)나라 땅 백 리의 영토를 받고 제후로 봉해졌다.
 
마씨 부인을 서낭신으로 봉함
 제나라 왕으로 부임한 강태공은 처음에는 많은 이민족의 반항을 받기도 하였지만 정치를 개선하고
풍속을 존중하고 예의를 간략히 하는 등 다스리기에 노력하여 모두가 잘 동화되었다. 
 
 어느 날 강태공이 수레를 타고 시찰을 나갔다.
 어느 거리를 지나는데 옛날 자기를 버리고 재가한 마씨가 들에서 갱피(곡식의 일종)를 훑고 있었다. 
내내 아무 것도 없는 집에 재가하여 갱피를 훑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강태공은 수레를 멈추고 마씨를 불렀다.  마씨는 옛일을 후회하며 다시 자신을 받아주기를 간청했다. 
강태공은 물을 한동이 떠오라고 시킨후 마씨부인에게 땅에 쏟으라고 한후
 한번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끊어진 인연은 다시 맺을 수 없다며 재가해 살고있는 마씨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떠났다. 
 
 이후 마씨 부인은 가난하게 살다가 어느 고개 마루턱에서 죽었다.
그후 강태공은 그래도 옛날의 자기 신세를 갚기 위해 마씨 부인을 서낭신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서낭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의 액운을 막고 잡귀를 막는 신이다.
   마씨 부인이 잡귀가 되어 죽어서도 몇십년 살다 없어질 운명을 강태공이 근 3천년이란 세월동안
향화(향불,제사)를 받도록 해서 지난날의 은공을 갚은것이다.  초기 성황당의 유래
  
귀신을 뜻대로 부리다
 
  " 강태공은 72후를 써서 귀신을 종처럼 부렸다"
강태공은 1년을 72후로 나눠 (1후는 5일) 동식물 또는 기타 자연현상 변화의 징후에 근거하여 절기의 변화를 설명하고 이름을 붙여 농사에 이용하였다.
    또한 강태공은 귀신도 마음대로 사역케 하는 신권을 갖추고 있었는데 중국설화 속에 많은 일화들이
 전해온다.
 [봉신연의]에 보면 은나라 주왕의 애첩 달기는 소후의 딸로 은주역 청당에 묵을 때
곤륜산의 천년 묵은 암 여우가 그녀의 혼백을 빼앗고 그녀의 몸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주왕의 비(妃)가 되어 온갖 악행을 일삼게 되자
곤륜산에서 40 년간 수행을 한 강태공이 도술로 여우를 물리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정산에 좋은 진흙이 있는데 미꾸라지 정령의 방해로 수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육로로 운송해야 했다. 이에 강태공이 신조(神釣)로 미꾸라지 정령을 잡아 수로를 내도록 하였다.  
그 증거로 조어대(釣魚臺)가 있다.
 
 “ 봉서사의 진묵(조선 중기 진묵대사)은 3둔(遁)을 하였고
주나라의 강태공은 52둔을 하였으나
나는 이제 72둔을 다 써서 화둔(火遁)을 트리라.”하신 내용이 있다.  봉서사(전라도 완주군 용진면소재)
 
『봉신연의』에 의하면 강태공이 토둔(土遁) 수둔(水遁) 목둔(木遁) 등을 행하여 몸을 감추어 이동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와 같이 강태공은 도술에 능통하여 귀신도 능히 뜻대로 부리는 신권이 있었다고 전한다.
 
- 중국소설은 무협소설처럼 워낙 뻥이 심하게 가미돼있는것이 특색이다. 
1%의 객관적인 사실을 서술하는데 99%의 과장과 뻥?으로 뻥튀기하니 사람들이 다 뻥이라고 하는것이다.
그래도 강태공이 귀신을 부리는 신권을 행사했다는것은 1%의 객관적사실이었을거라고 나는 믿는다-   
 
 

 신교의 맥을 중국 한족에 전수하다

 주나라를 건국하는데 지대한 공을 쌓았던 강태공은 강족(姜族)으로 정통 동이족 출신이다. 
강태공은 동방 조선족으로서 신교의 한 맥을 중국 한족에게 전수하게 되는데, 
그는 삼신상제님의 가르침을 받아내려서 나라를 세우고 국가를 통치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삶의 좌표로
삼았다.  그의 저서인 『육도삼략』의 중심에는 동방 신교(神敎)의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있다. 

사마천 『사기』의 「주본기」에 보면  “ 무왕이 주왕을 처단하고 이튿 날 아침 몸소 사단(社壇)에 나아가 
남쪽을 향하여 모숙정은 맑은 물을 받쳐들고
                     위강숙보는 자리를 깔았으며 … 
                     윤일은 축문을 읽어 주왕의 죄악을 상제께서 듣도록 명백히 아뢰었다” 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청수(淸水,맑은 물)를 모시고 상제께 고하는 부분은 동방 조선족 신교 문화의 원형이다.

또 『사기』「 봉선서」에 의하면 “ 조정의 동남쪽에 태일단(太一壇)을 설하고 천일신(天一神) 지일신(地一神) 태일신(太一神)을 모셨다.” 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천지인(天地人) 삼재관을 바탕으로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으로서 삼신(三神)을 숭배한

제천행사가 있었는데,  이것이 동방 한민족의 신교(神敎)의 신관이다.

 

 지금으로 부터 8백년전 고려 공민왕 때 행촌 이암은 천일은 조화(造化)의 신,
                                                                       지일은 교화(敎化)의 신,
                                                                       태일은 치화(治化)의 신으로 정의했다.
강태공은 산동성 제나라의 왕이 된 후 동방신교의 삼신관을 서방 중국 땅에 뿌리내렸다.

 

 이로부터 제나라에서 삼신상제님과 치우천황(한민족 배달국 임금)과 천지일월에 제사하는
 팔신제(八神祭)풍속이 더욱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팔신제는 천지의 여덟 신을 섬기는 문화로,  삼신 상제님을 모시는 천주(天主), 지주(地主), 병주(兵主), 음주(陰主), 양주(陽主), 월주(月主), 일주(日主), 사시주(四時主) 등의 신을 모셨다.

 

사기』 ,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의하면 진시황과 한나라 고조(유방)까지도 팔신제를 봉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팔신제는 고대 중국문화 속에 살아있던 동방신교 제사문화의 원형이며 산 증거이다.
 
병법과 정치로 천하만세에 은혜를 베풀다


 강태공이 지은 병법서인 『육도(六韜)』는 다른 병서와 달리 치세(治世)의 대도(大道)로 부터
인간학 조직학을 논급하고 정전(政戰) 및 인륜을 논한 것이 특색이다.

또한 『삼략(三略)』은 감추어져 비전 되다가 진(秦)나라 시대의 황석공이
장량(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의 책사,장자방)에게 전수하여 세상에 드러났다.
 
 태공망의 육도가 역대 병법사상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후대의 손자병법의 손자(孫子), 오자(吳子,오자서), 위료자(尉?子), 이위공(李衛公) 등 중국의 제가(諸家) 병법사상도 『육도삼략』을 기간(基幹)으로 하고 있다.

    전국시대에 6국의 재상을 지낸 유명한 유세가인 소진은 태공망의 병법서를 접하고

비로소 군왕들을 설득하여 천하를 경륜할 도를 터득하게 되었다.
 
 “ 강태공이 제잔금폭(除殘禁暴, 잔악함을 제어하고 폭정을 금하는)의 묘략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술법을 전수함으로부터  천하가 그 덕으로 대업을 이루었으되 그 은덕을 보답지 않고

    다만 디딜방아에 동티막이로  ‘ 경신년 모월 모일 강태공 조작(姜太公造作)’ 이라 써 붙일 뿐이니
  어찌 도의(道義)에 합당하리오.”  하시며 “
  이제 해원(모든 원한을 풀어내는)시대를 당하여 모든 신명이 태공의 은혜를 보답하게 되리라.”
  

디딜방아에 동티막이 (예전에는 집집마다 디딜방아가 있었는데 동티막이라는것은 액막이, 즉 올 한해도 잡귀로부터 오는
모든 액(질병,사고)을 강태공의 힘을 빌어 막고자 디딜방아에 써 붙인 풍속)   
 

예로부터 잡신을 물리친다는 제살(除煞)의 한 풍속으로 디딜방아를 짓고 나면 흔히 방아몸체에, 
강태공이 태어났다고 하는 연월일시인 ‘경신년(庚申年) 경신월(庚申月) 경신일(庚申日) 경신시(庚申時) 강태공 조작(姜太公 造作)’ 이라고 쓴다.

 

  이를 ‘ 방아상량’이라고 하는데 디딜방아를 고치거나 새로 놓을 때는 반드시 경신일 경신시에 맞추어
방아 동티 (귀신을 노하게 하였을 때 받는 재앙의 하나)를 막고자 하였다. 
 
 이는 강태공을 내세워 잡귀가 덤벼들어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데, 우주원리로 보면
금극목(金克木)의 상극(相克)원리로 강한 금기(金氣)를 지닌 경금(庚金)과 신금(申金)으로써
목기(木氣)에 의한 동티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강태공은 160살을 살다가 죽었다.  
80년은 초야에 묻혀서 가난하게 살았고, 80년은 세상에 뜻을 펼치며 영광스럽게 살았다.

그래서 강태공의 삶을 두고 ‘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라고 한다.

 

강태공이 죽자 그를 장사를 지내려 하는데 사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여상은 시해선(尸解仙,육체를 가지고 신선으로 승천)이 되었다고 믿었다. 
또 일각에서는 『육도』라는 여섯 권의 병법서를 남기고 세상을 뜨자 영구(營丘)에
장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천하사 심법
 강태공  

"강태공이 십년 경영으로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였음이 어찌 한갓 주(周)나라를 일으켜
봉작(封爵)을 얻기 위함이었으랴.  이를 널리 후세에 전하려 하였음이다” 

  

강태공이 80 평생을 가난 속에 살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며 위수에서 10년 동안
삼천육백 개의 낚시를 벌려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후세에 천하사를 하는 심법을
전수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 내 종자는 삼천년 전 부터 내가 뿌려놓았느니라.”

 


 <참고자료> 
 『육도삼략』이상옥 역해 명문당 /
『사기』 사마천 원저 김병총 평역 집문당 /
『봉신연의』 안능무 평역 솔출판사 /
『서경』 권덕주 역해 혜원출판사 /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배옥영 지음 다른생각 /
 『디딜방아 연구』 김광언 저 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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