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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부터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도로 위를 달리는 무인(無人) 자율주행차가 등장할 예정이다.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자율주행차 개발 자회사 웨이모가 세계 최초로 무인 로봇택시를 상용화하기로 한 것이다.

웨이모의 첫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서비스를 앞두고 현대자동차(005380)가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다. 웨이모의 자율주행 기술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존 크래프칙이 과거 5년간 현대차의 미국 법인장을 맡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자동차업계 관계자, 취재진 등과 이야기를 나누는 존 크래프칙 웨이모 CEO/진상훈 기자
알파벳은 존 크래프칙을 기용해 향후 엄청난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는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그가 떠난 후 최근 미국에서 판매량 감소와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현대차는 속이 쓰릴 수 없는 상황이다.

◇ 웨이모, 세계 최초 무인택시 상용화 눈 앞…200조원 시장 선점

지난 14일(현지시각)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웨이모는 다음달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무인 로봇택시 자율주행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웨이모는 그동안 피닉스 주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해 왔지만,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되면 누구나 피닉스에서 이용료를 지불하고 로봇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웨이모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우버, 리프트 등 현재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호출형 차량공유서비스(카헤일링) 업체들과 직접 경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웨이모는 지난 2009년부터 무인 자율주행차 연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완성차 업체나 경쟁 IT 기업들에 비해 기술 수준이 한 발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까지 웨이모의 완전 자율주행차가 공용도로에서 주행한 거리는 1000만마일(1600만km)로 2위인 우버(300만마일)를 크게 앞선다. 올해 미국의 기술조사업체인 내비건트리서치가 매긴 글로벌 자율주행차 기술 순위에서도 웨이모는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원본보기

웨이모와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공동으로 개발한 자율주행 미니밴 ‘퍼시피카’/웨이모 홈페이지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특히 존 크래프칙이 지난 2015년 CEO로 합류한 이후 웨이모가 기술개발은 물론 사업개발과 상용화 준비에서도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존 크래프칙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14년간 포드에서 대형 프리미엄차량 개발을 맡았던 인물이다. 게다가 현대차 미국법인(HMA)을 이끌면서 판매와 조직관리에서도 수완을 보였다. 자동차 개발과 영업에서 모두 고른 경력을 쌓은 그가 웨이모를 이끌면서 알파벳은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무인 로봇택시 상용화를 눈 앞에 두게 된 셈이다.

모건스탠리는 웨이모가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 회사의 시장가치를 800억달러(약 90조원) 규모로 평가했다. 여기에 무인 자율주행 트럭을 상용화 해 육상운송서비스까지 시작할 경우 960억달러 규모의 부가가치를 추가로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 현대차, 존 크래프칙 내보낸 후 내리막…신기술 개발도 고전 

반면 크래프칙이 떠난 후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는 물론 신기술 개발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의 미국 판매량은 68만5555대로 전년대비 11.5% 감소했다. 올들어 10월까지 누적 판매대수도 54만5444대로 극심한 부진이 이어졌던 지난해보다도 0.4% 줄었다. 세단 중심으로 구성된 판매차종 라인업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한 탓에 미국에서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내비건트리서치의 자율주행기술 평가에서도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최하위권인 12위에 머물렀다.



현대차 미국 법인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존 크래프칙/조선일보DB
사실 존 크래프칙은 현대차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법인장으로 일하면서 취임 초기 3%에 불과했던 미국 내 점유율을 5%대까지 끌어올렸다. 게다가 제네시스와 엘란트라가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데도 앞장서면서 현대차의 브래드 가치를 크게 높이기도 했다. 크래프칙은 그러나 2014년 실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다소 석연찮은 이유로 법인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크래프칙에 이어 판매 전문가인 데이브 주코브스키가 법인장을 맡았지만, 실적 부진으로 2년여만에 경질됐다. 후임 법인장은 국내파인 이경수 당시 현대트랜스리드 CEO가 맡았지만, 역시 판매 부진의 책임을 지고 1년만인 지난달 자리를 떠났다.

현재 현대차 미국 법인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있다. 일단 이용우 현대차 북미권역본부장이 겸직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중국 법인의 경영진을 대거 물갈이한 현대차는 새로운 법인장을 찾는데도 골몰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새 미국 법인장은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판매와 브랜드 관리 등은 물론 신기술 연구동향 파악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가장 이상적인 새 미국 법인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자동차 업계 전반에 두터운 인맥까지 가졌던 존 크래프칙과 같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훈 기자 caesar8199@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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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

 

 

일시: 2018.12.7.() 09:00-18:00

장소: 부경대학교 대학극장

주최: 세계환단학회

후원: ()대한사랑, STB상생방송

 

세계환단학회는 학제간 융합연구를 통하여 대한민국 뿌리역사와 원형문화를 드러내고 세계화하는 학술모임입니다. 정통 민족사학의 맥을 이어 고대사의 난맥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바로잡는 세계환단학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사전등록

기간: 2018115-1130

방법: 세계환단학회 홈페이지(www.hwandan.org) 참조

등록비: 회원 3만원, 비회원 4만원(현장등록시 1만원 추가)

문의: 010-8868-6964(bwahn@cbu.ac.kr)

 

초대의 글

 

안녕하십니까? 대한의 뿌리역사와 문화를 드러내는 2018년 세계환단학회 추계학술대회에 정중히 모십니다.

오늘 우리는 일제의 군화발에 짓밟힌 강토를 수복한 지 70여년이 지났건만 대못같이 박혀있는 식민사관의 망령은 더욱 세차게 국민의식을 마비시키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일제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선역사의 뿌리를 거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단군신화론, 한사군재한반도설, 삼국사기 초기기록불신론, 임나일본부설과 같은 교묘한 역사조작입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사학계에는 문헌근거가 전무한 이런 거짓주장이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학문입니까! 역사학은 나라를 위해서 존재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뿌리를 소중히 되새겨야할 지난 개천절에는 국사교사를 양성하는 유명 국립대 교수가 국립방송에 나와서 단군은 신화이고 단군조선은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보고서도 믿기 어려운 천인공노할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량한 기득권을 위해 역사교과서에도 없는 거짓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그 비열함은 사대주의 식민사학, 매국사학을 넘어서 나라와 조상을 모독하는 반인륜사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야사 복원연구에 투입되는 수천억 국가예산은 과연 그 값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가야를 일본이 식민통치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매국사학입니다. 금번 학술대회를 통해서 가야가 임나라는 잘못된 인식이 완전히 걷힐 것으로 확신합니다. 부디 귀한 걸음 재촉하셔서 우리역사의 미래에 빛을 밝혀주시길 빕니다.

 

20181030

 

세계환단학회장 이익환

프로그램

 

 

접수 및 등록 09:00-10:00

개회사 및 축사 10:00-10:20

개회사 이익환(세계환단학회장,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축사 김영섭(부경대학교 총장)

 

1부 군사고고학연구기획 국제패널

고대사와 동북아 국제관계

 

사회: 허철부(명지대학교 명예교수)

 

1) 동북공정과 한중관계: 언론의 보도양태 분석 10:20-10:50

발표: 장영덕(인하대학교)

 

2) 오족협화론과 일본-만주국의 관계: 중국의 동북공정 다민족통일국가론과의 비교 10:50-11:20

발표: 이종성(규슈대학교)

 

3) 지정토론 11:20-11:50

토론: 션딩창(북경대학교), 김동수(부경대학교)

 

점심식사 11:50-12:50

 

2부 학술발표

Session 1. 桓檀傳授之眞訣 12:50-13:40

 

사회: 김상일(전 한국신학대학교 교수)

 

환단고기에 대한 역사적비평적 접근의 필요

발표: 민영진(감리교신학대학 명예교수)

 

Session 2. 國猶形 史猶魂 13:40-15:50
 

 

사회: 김철수 (중원대학교)

 

1) 간도(間島, 艮島, 墾島) 수복의 역사적 당위성과 방안 13:40-14:10

발표: 조원홍(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2) 대한민국의 네오르네상스, 홍익인간에 길이 있다. 14:10-14:50

발표: 강정모(경희대학교)

 

3) 한민족의 옥문화 14:50-15:20

발표: 정건재(전남과학대학교)

 

4) 종합토론 15:20-15:50

토론: 김상현(전쟁기념관 학예사), 민영현(부산대학교), 윤창열(대전대학교)

 

휴식 15:50-16:10

 

3부 초청특강 16:10-18:00

 

제목: 가야와 임나일본부의 진실

 

연사: 안경전(STB 상생방송 이사장)

 

세계환단학회 역사

평안도 선천출신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 선생은 1911년에 스승 해학 이기, 진사 백관묵, 진사 이형식 그리고 선생의 집안에서 내려오던 한민족 비사를 기록한 삼성기 2,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편찬하면서 이를 󰡔桓檀古記󰡕라고 명명하였다. 󰡔桓檀古記󰡕는 당시 독립운동가가 중심이 된 단학회의 역사교재 역할을 하였다. 1920년 일제의 밀정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계연수 선생이 숨지자 제자인 이유립은 1948년에 초판 󰡔桓檀古記󰡕 한 권을 들고 월남하였다. 선생은 단학회를 이어 1966년에 단단학회를 조직하여 󰡔커발한󰡕, 󰡔대배달민족사󰡕 등의 학술지를 발간하면서 󰡔桓檀古記󰡕에 수록된 대한의 역사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역사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세계환단학회는 민족사학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식민사학의 자학사관에 염증을 느낀 인문, 사회, 자연과학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학제간융합 연구방식으로 명멸해가는 민족사학의 맥을 이어 대한민국의 뿌리역사와 원형문화를 회복하고자 20146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창립되었다. 초대 백산 박성수 박사를 필두로 이홍범 박사, 홍윤기 박사를 거쳐 현재 이익환 박사가 회장을 맡고 있다. 공식 학술지인 세계환단학회지51호까지 발행되었고, 전국 주요 대학도서관에 배포됨으로써 우리 상고사와 홍익역사철학에 대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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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로 흐르는 물을 서해로 돌린

칠보 수력발전소와 계화도 간척사업

 

"저 산에 콧구멍이 둘이 있으니 후일에 저 콧구멍으로 물이 나와서 불을 쓰리라" (도전 5:141:9)

 

 

강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천지공사)에 의해

전개되어온 20세기 인류역사

 

19세기말부터 오늘날까지 100여년간 인류사 발전의 행보는 이전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세기의 이러한 급속한 역사 발전의 원인을 흔히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발전의 이면에 1901년부터 1909년까지 강증산 상제님께서 천지공사(천지공사)를 통해 역사의 물길을 터 놓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1차 세계대전, 2차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남북분단과 최근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씨가 소를 몰로 삼팔선을 넘어간 사건등, 20세기 역사를 움직인 국내외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상제님이 보신 천지공사가 현실로 이화된 것이다.

전북지역의 가뭄을 해결함으로써 전북 칠군-전주, 태인, 정읍, 고부, 부안, 순창, 함열- 에 흉년을 사라지게 했던 칠보산 수력발전소 건설, 그리고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있었던 우리 나라의 보릿고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한 계화도 간척사업, 이 두 가지 사업이 실현된 것도 바로 강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 덕분이다.

 

   

 

                        

 

① 칠보 수력발전소(섬진강 수력발전소라고도함) 유역 안내도

② 칠보발전소로 물을 끌어들이는 취수구

③ 운암호의 물이 칠보터널을 지나 이 송수관으로 떨어져내리면 그 아래에서 발전을 한다

 

 

상제님께서 수많은 공사를 보시는 가운데 당신이 직접 강세하신 이 땅 민생들의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인 식록을 걱정하여 이를 해결해주는 공사를 보신 것이다.  칠보 수력발전소와 계화도 간척사업과 관련된 강증산 상제님의 공사내용을 알아보기로하자.

 

"콧구멍으로 물이 나와 불을 쓰리라"

전북 칠군의 가뭄을 해소시킨 칠보발전소 공사(公事)

 

전북 정주시(구, 정읍시) 칠보면에는 칠보산에 터널을 뚫어 만든 칠보발전소가 있다. 칠보산에 뚫린 이 터널로 섬진강 다목적댐에서 끌어올린 물이 지나는 곳이다.

운암댐은 운암면 운정리에서 정읍군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 골까지 759m의 굴을 뚫어 동진강의 태인천 상류에 유입시켜 태안면 낙양리에 이르러서는 우측으로 김제방면, 좌측에는 정읍방면으로 물길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 운암발전소는 1985년 3월 폐쇄되었으며, 현재는 저수지 안에 수몰되었다.

1965년에 준공된 섬진강댐은 그 규모가 길이 342.3m에 높이가 64m이다. 섬진강 상류로부터 84.2km 지점인 전북 임실군에 댐을 축조하고 칠보산을 뚫어 동진강에 방류함으로써 부안의 계화도 간척지까지 농업용수가 풍부하게 되었다. 섬진강 물은 본래 남해로 흐른다. 그런데 섬진강댐을 막고 칠보발전소를 통해 서해로 물길을 돌린 것이다. 국내 최초의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인 칠보산발전소는 전력자원이 빈약한 호남지방의 수력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주요자원 개발을 위한 동력원을 공급함은 물론, 발전에 사용한 물을 동진강에 방류하여 김제평야의 곡창지대를 기름지게 하고 있다.

또한 섬진강 유역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키면서 하류지역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북 지역에 흉년을 없애고, 생활환경을 크게 변화시킨 이 대공사가 바로 강증산 상제님이 100여년 전에 보았던 천지공사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칠보발전소를 만들게 했던 강증산 상제님의 공사내용을 살펴보자

 

* 정미년 12월에 운산리 신경수의 집에 가시어 고사를 행하시며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하시니 대답하기를 "쓰기에 달렸습니다."하거늘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렇기야 하지만 찻독이 찼다 비었다 하면 못쓸 것이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아야 하리니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 하시매

성도들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양지에 무수한 선을 그리시니 성도들이 "신작로 같은 것을 왜 그리십니까?"하고 여쭈거늘

"이게 신작로로 보이냐? 물 나가는 물똘이니라." 하시고 저수지와 물똘의 도면을 그리시어 불사르며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운산(雲山)이 아니냐. 운암(雲岩) 물줄기를 금만경(金萬頃)으로 돌리더라도 하류에서 원망은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가 대한불갈(大旱不竭)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강태공은 제(齊)나라 한 고을의 흉년을 없게 하였다 하나 나는 전북 일곱 고을의 흉년을 없게 하리니 운암은 장차 만인간의 젖줄이 되리라."하시니라.

또 행단 앞산을 가리키시며 "저 산에 콧구멍이 둘이 있으니 후 일에 저 콧구멍으로 물이 나와 불을 쓰리라." 하시더니

훗날 과연 상제님께서 도면을 그리신 대로 댐과 저수지가 생기고 행단 앞산에는 수력발전소가 생기니라

 

- 찻독 : 쌀을담아 놓은 쌀독의 전라도 방언. 뒤주.

- 대한불갈 :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아니함.

- 두치강 : 선진강,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강증산 상제님은100여년 전 공사를 보실 당시 칠보산에는 터널은커녕 굴조차도 없던 산이었다.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그때 이미 칠보산에 콧구멍이 둘이 생기고 그것으로부터 물이 나오고 또 그 물로 불(전기)을 생산하게 된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강증산 상제님은 공사를 통해 운암의 물줄기를 김만경으로 돌림으로써, 전북 칠군에 가뭄이 없어지며 돌립으로써, 전북 칠군에 가뭄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1965년에 현실도 드러난 것이다.

 

보릿고개 해소에 기여한 계화도 간척사업

 

그리고 섬진강의 물줄기는 계화도로까니 뻗어나가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증산도 도전에 보면 강증산 상제님께서 계화도 간척 사업도 공사로 보신 내용이 나온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운암강(雲岩江)이 흘러 두치강이 되었으나 장차 계화도(界火島)로 나가게 되리라. "하시더니

하루는 계화도에 가시어 바다에 떠 있는 배를 가리키시며 "저 배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으니 내가 육지로 건져 놓으리라."하시니라.

 

(계화도 간척지 섬진강물로 계화도 간척지에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이 곳에서는 연간 70여만톤의 질좋은 계확미와 4000여톤의 보리가 생산된다.

 

- 계화도 : 전북 부안군에 있던 섬. 변산반도의 북단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1963~1968년 계화도와 동진면을 연결하는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육지가 되었다

 

 

   (섬진강댐을 막아 생긴 운암호(옥정호라고도 함)

 

계화도 간척사업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로 시도된 간척사업으로 1963년~197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본래 섬진강 다목적댐 건설로 정든 곳을 떠나야 했던 수몰민 1992세대를 이주하게 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간척사업을 하기 전 계화도(界火島)는 전라북도 부안군에 속해 있던 섬으로서 변산반도의 북단에서 4km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간척사업으로 계화도와 부안군의 동진면을 연결하는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육지화 되었다. 이 간척사업에 의해 약 830만평(2.74ha)에 이르는 농지가 만들어졌다.

가을에 수확한 식량이 다 떨어져 다음해 초여름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풀뿌리나 나무 껍질을 벗겨 먹던 보릿고개. 지금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TV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이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대부분 그렇게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그런에 바로 이 계화도 간척사업이 보리고개 해소의 전깃점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연간 70여만톤의 질 좋은 쌀(계화미)과 4000여톤의 보리가 생산된다. 칠보발전소 건설과 계화도 간척사업, 이 두 공사는 우리 나라의 주식 자급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것이다.

혹자는 강증산 장제님의 이러한 천지공사를 예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언의 차원이 아니다. 강증산 상제님께서 하늘과 땅을 뜯어고치고치는 천지공사를 통해 장차 그렇게 되도록 직접 짜놓으셨고, 그러 인해 그 때가 되면 그 일이 꼭 이루어지는 것이다.

 

* 내가 천지운로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섬진강 상류의 운암강을 막아서 만든 섬진강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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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부시

History(역사) 2018.10.05 11:04
        찬부시
                              전문규
아무 옷이나 입어도 화보인데
비가 온들 아름다움을 가릴수 있나
국화꽃 그윽한 청전하늘에
가을 바람이 옷깃이 스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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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던 진나라의 황제였다. 그런데 진시황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고자 한 예언서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28년에는 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동남동녀와 함께 제나라 사람 서시를 동해에 있다고 전하여지는 봉래, 방장, 영주 등 삼신산에 보낸 적이 있었으며, 32년에는 연나라 사람 노생(盧生)이 바다로부터 동아와 보고한 가운데 녹도서(錄圖書)라는 참서(讖書)에 이르기를 「진나라를 망케할 자는 호라」는 말을 듣고 호(胡)자를 자기의 아들인 호해인 줄을 모르고 북호인 흉노인 줄로만 오해하여, 몽렴(蒙렴)이라는 장수를 시켜 군사 삼십만으로 북쪽 오랑캐를 공격하여 물리치는 동시에 다음해에는 북호가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임조(臨洮)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쌓게 하였던 것이다.

34년에는 승상인 이사가 글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은 세상이 안정되어 백성은 집에서 일만 부지런히 하고 선비는 법령만 배워 익히면 될터인데, 모든 선비들이 그렇지 않아 옛 학문만 하고 지금 것을 배우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 법령이 나오면 입즉심비하고 출즉항의하여 나라 일을 훼방만 하고 인심을 현혹시키니 이런 일을 일절 금하는 동시에 역사책도 진나라 역사가 아니면 전부 불살라버림은 물론이오, 백가시서를 가지고 있는 자도 모두 관에 가지고 나와 불살라 버리되 만약 시서를 가지고 말썽을 부리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목을 베고, 또 옛날 도리만 옳다하고 지금 정치를 비방하는 자는 일가족을 전멸하고, 만약 관리로서 이것을 알고도 집행하지 않는 자는 같은 죄로 다스리며, 명령이 내린지 30일내에 불살으지 않는 자는 묵형(墨刑)을 가하여 강제노동을 시키도록 하고, 다만 없애지 않은 책은 의약에 관한 것과 점서책 그리고 곡식과 초목을 심는데 관한 것 뿐이고, 법령을 배우려는 자는 관리를 선생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 대체의 내용이었는데 시황은 이것을 옳게 여겨 그대로 실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35년에는 후생(候生) 노생(盧生)등이 시황을 비방하고 어디론지 도망해 버렸다. 시황은 크게 노하여 함양에 있는 선비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비방한 자를 문초한 결과 선비들은 자기 발뺌만 하고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서로 불어넣는 것이 460여명에 달하였다. 시황은 이들을 모두 함양에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묻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본 맏아들 부소가 극력 간하였지만 시황은 간하는 말에 또 노하여 부소를 북쪽으로 내쫓아 그곳에 가 있는 몽렴(蒙렴)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 해에는 또 조궁(朝宮)을 지으려고 먼저 전궐(前궐)인 아방궁을 짓게 되었는데 그 규모는 동서가 5백보(3천척)요, 남북이 50장으로 위에는 만명가량 않을 수 있고 아래에는 오장기치(五丈旗幟)를 세울 수 있는 굉장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모든 궁전에는 악기와 미인을 가득 채워 놓고 수시로 이곳저곳 가서 마음대로 즐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언젠가는 시황이 양산궁에 갔다가 산위에서 거리에 지나가는 승상의 행차에 수레와 말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좋지 않게 여긴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승상은 시황의 시종 가운데 한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고 수레와 말탄 사람의 수효를 많이 줄였다. 그 다음 승상의 행차규모가 전보다 많이 줄어진 것을 본 시황은 이것은 필시 전에 양산궁에 같이 갔던 수행원 가운데 누가 말한 것이라 보고 한 사람 한사람 불러 물어보았으나 누구 하나 실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황은 성이 날대로 나서 그 당시 같이 갔던 사람을 전부 잡아 죽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 부터는 시황의 간곳을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모든 정사의 결재는 대소를 막론하고 오직 함양궁에서만 친히 행하여 그의 사생활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37년에는 시황이 지방순시에 나섰는데 좌승상 이사와 작은 아들 호해와 중거부령 조고와 근신 몇 명 등이 수행하게 되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던 중 시황은 무서운 해신과 싸운 꿈을 꾸고 그만 병이 생겨 점차 중하게 되었다. 죽음을 각오 하였던지 자기가 죽으면 함양에 와서 장례를 같이 지내도록 하라는 편지를 써서 만리장성 쪽에 가있는 맏아들 부소에게 전하려고 옥새(玉璽)까지 찍어 놓은 후 이 서신이 조고에게만 넘겨지고 사신이 채 떠나기도 전에 시황은 그만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죽게 되었다. 그때의 나이는 50세.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어떤 변란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여 승상 이사는 이것을 절대로 비밀에 붙이고 식사 올리는 것과 보고사항 등 생시와 다름없이 하였기 때문에 시황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호해, 조고등 근시자 5,6명 뿐이었다. 조고는 호해 이사등과 공모하여 한가지 꾀를 내었다. 그것은 시황의 조서를 위조하여 호해로 태자를 삼고, 공자 부소와 장군 몽렴에게는 족음을 주는 서신을 보내는 동시에, 시황이 죽기 전에 써놓은 부소에게 보내는 글은 몽땅 없애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여 함양으로 향하는데 며칠이 지나는 동안 시신이 썩기 시작하여 냄새가 나므로 이것을 속이기 위하여 썩은 복어를 한섬가량 수레에 실어 냄새를 풍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함양에 돌아와서는 즉시 시황의 붕(崩)한 것을 발표하는 동시에 호해가 뒤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오르고 시황은 여산(驪山)에 장례 지내기로 하였는데, 여산은 황금과 미옥(美玉)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시황의 무덤은 천광(穿壙)할 때에 70여만명을 동원 하였으며, 무덤안에는 여러 가지 이상한 보물을 간직함은 물론이오,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금은으로 오리와 학을 만들어 기계로 오락가락하게 하였으며, 또 사람이 가까이 오면 저절로 화살이 발사되는 장치를 하여 누구나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자식없는 후궁들은 전부 순장하고, 내부시설을 한 장인들도 그 시설을 세상에 알릴까 봐 전부 그 속에서 죽여 버렸다고 전하여지고 있는데 무덤의 크기는 높이가 50장, 주위가 5리나 되었다고 한다.

2세 황제인 호해는 나이가 21세로 조고의 공작으로 황제가 되었으니만치 언제나 조고를 가장 가깝게 하는 동시에 모든 정치를 조고에게 맡기고, 조고 역시 호해에게 아첨하는 동시에 법을 가혹하게 운용하여 자기의 지위를 더욱 굳혀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만 이사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먼저 이사를 제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사는 본래 초나라에 태어나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언제인가 변소에 갔더니 그곳 쥐는 더러운 것만 먹고 사람을 보면 자주 놀래어 달아나기만 하는데, 창고엘 갔더니 그 곳 쥐는 사람을 겁내는 일도 없고 깊숙이 들어박혀 배부르게 맛있는 곡식만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쥐는 마찬가지 쥐인데 어떤 놈은 편안히 잘 살고, 어떤 놈은 잘 먹지도 못하면서 놀래기만 하니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처할 탓에 달렸으니, 사람도 이와 같아 좋은 곳에 처하면 잘 되고 나쁜 곳에 처하면 못될 것이 뻔하니 무엇보다 좋은 곳에 처해야 되겠다 하고 즉시 시골을 떠나 진나라 서울로 가서 길을 밟아 벼슬이 차츰 높은데 올랐던 것이다. 그 후 진나라에는 축객령(逐客令)이 내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나라 사람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그는 저 유명한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라는 글을 지어 시황을 감동케 하여 쫓겨나지 않음은 물론이오, 시황의 신임을 더욱 얻어 승상이 되는 동시에 통일사업과 문물제도의 개혁에 큰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리하여 백성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는데 순자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한비자가 자기보다 우수한 것을 알고, 그 후 한비자가 진나라에 왔을 때에 임금에게 음해하여 잡아가두는 동시에 제멋대로 사약을 주어 그를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가 그만 조고의 모하에 걸려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시황이 죽은 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맨처음 진승(陳勝), 오광(吳廣) 등은 기(蘄)에서, 항양(項梁)과 항적(項籍)(項적) 등은 강동인 오에서, 유방은 패(沛)에서 각각 기병하여 온 천하가 어지럽게 되었다. 조고는 임금인 호해에게 대하여 이렇게 나라가 어지럽게 된 것은 이사가 승상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못한 것은 물론이오, 삼천군수로 가있는 그의 아들 이유가 진승등 적과 내통하여 있다고 허위로 이유를 만들어 일가족과 함께 모두 잡아 죽였던 것이다. 이 때에 이사는 자기의 작은 아들을 돌아보며 「내가 부귀공명은 고사하고, 이제는 고향에서 누런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은들 어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 것이다.  

이사를 죽인 조고는 호해마저 죽이고 나라를 빼앗을 작정으로 먼저 한 가지 시험을 하였다. 그것은 모든 신하들이 호해를 따르는가 또는 자기를 따르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일부러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이것은 말이라고 하였다. 호해는 웃으면서 이것은 분명 사슴인데 왜 말이라고 하는가 하고 두 사람은 서로 「말이다 사슴이다」하고 우겨댔다. 그리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아 말인지 사슴인지 판단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조고의 위세에 눌리어 사슴인줄 뻔히 알면서도 양심을 속여 조고의 편에 들어 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그저 묵묵부답으로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정직한 사람은 사슴이 틀림없다고 솔직하게 대답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조고는 이런 사람들을 눈여겨 봐뒀다가 그 후 자기 의견에 반대한 사람은 모두 잡아 죽였다. 이것이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생겨난 동기인데 이쯤 되고보니 인심은 극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고 조고의 위세는 황제인 호해를 누르게 되었다.

드디어 조고는 자기의 사위인 함양령염락(咸陽令閻樂)과 동생인 조성등과 공모하여 호해를 없애기로 하였다. 먼저 적이 쳐들어오니 막아야겠다고 거짓 꾸며대어, 사위인 염락(閻樂)을 시켜 군사 천 여명을 이끌고 엉뚱하게도 호해가 있는 망이궁을 포위하였다. 호해를 모시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오직 한사람만이 남아 있었는데 호해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왜 이런 기미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이 아주 걸작이었다. 「제가 미리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껏 목숨이 붙어있지, 미리 말 하였더라면 벌써 죽은지 오랬을 것입니다」라고. 호해는 아무리 성을 내고 아무리 안타까워했지만 이제는 별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염락에게 향하여 승상 조고와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였다. 그러면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 터이니 한 고을의 왕이나 되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안된다고 하였고, 그러면 만호가량 되는 지방에 제후로나 있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역시 안된다고 거절당하였다. 마지막에는 할 수 없이 그러면 일개 평민으로 처자와 함께 목숨이나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보았지만 염락은 이것마저 안 된다고 거절한 후 「나는 승상의 명령을 받아 너의 목을 베러 여기에 왔다」고 하지 않는가. 호해도 이제는 할 수 없었던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조고는 여러 대신과 공자(公子)들을 불러놓고 「시황제 때에는 천하를 통일하였기 때문에 황제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국이 모두 자립하여 진나라는 더욱 작아졌으니만치 이름뿐인 황제보다도 옛날과 같이 왕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후 호해의 형의 아들인 공자 영을 진왕으로 정하기로 하고 호해는 평민장으로 하였는데 호해가 임금의 자리에 있은지 경우 3년, 그 후 조고는 공자영(公子嬰)에게 찔려죽고 그의 삼족도 전멸을 당하였으며, 공자 영도 왕이 된지 46일 만에 진군을 격파하고 관중에 들어온 패공(沛公)에게 항복하고 말았는데, 항우가 함양에 들어와서는 공자 영과 제공자 빛 종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각종 보물을 탈취하였으며, 아방궁을 위시한 모든 궁실에는 불을 질러 그 불길이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며, 진시황의 무덤도 항우에게 무참히 발굴되어 진나라는 여기에서 망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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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방(鬼方)

History(역사) 2018.08.18 19:51

 귀문 [鬼門]

귀방()이라고도 한다. 원한을 품거나 인간에게 해코지를 하는 귀신들은 동쪽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는 도삭산()에 모여 사는데, 도삭산에는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동북쪽으로 3천리까지 가지가 길게 뻗어 있고, 이 가지를 따라가면 이승과 연결된 귀문()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이런 연유로 동북향을 귀방()이라 하며, 점술가()들은 이 방위를 귀신이 드나든다 하여 매사에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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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_가라고 해서 ‘가랑비’, 있으라고 해서 ‘이슬비’인가?
가시버시_부부라도 아무에게나 ‘가시버시’라 하면 안 된다
가시아버님·가시어머님_‘장인’과 ‘장모’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갈매기살_‘갈매기살’은 도대체 무슨 고기?
개구리_‘개구리’ 울음소리는 한 가지가 아니다
개숫물_‘개수’는 그릇을 닦는 물이 아니다
건달_‘건달’은 향내를 쫓아 날아다닌다
고린내_‘고린내’는 곯은 냄새가 아니다
고뿔_감기에 걸리면 코에서 불이 나는 법
곱창_꼬불꼬불해서 ‘곱창’?
기와_‘새집’이 ‘기와집’으로 바뀌다
김치_‘김치’는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까치설_‘까치설’은 ‘까치’가 쇠는 설?
깡패_‘깡패’는 광복 이후에 생겨난 말
꼬마_‘꼬마’와 ‘첩(妾)’은 같은 부류이다
나라_‘나라’가 서려면 땅이 있어야 한다
누나_‘누나’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 동기에게 적용됐던 말
담배_우리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당나귀_‘당나귀’는 중국산이다
대머리_‘대머리’는 큰 머리?
데릴사위_요즘은 처가살이하는 ‘데릴사위’가 많다
도루묵_‘도루묵’은 ‘도로 묵’?
도토리_‘도토리’는 ‘멧돼지’의 주식이다
독도_‘독도’는 돌로 된 섬일 뿐
돌팔이_‘돌팔이’가 전문가 뺨친다
동냥_‘동냥’은 방울을 흔들며 시작한다
동생_어머니가 같으면 모두 ‘동생’
동아리_‘동아리’가 ‘서클’을 몰아내다
마파람_‘마파람’이 불면 ‘게’가 먼저 숨는다
막걸리_‘막걸리’는 마구 거칠게 거른 술
말씀_‘말씀’은 말을 하는 것이다
말티고개_‘말티고개’는 말을 타고 넘은 고개?
모래무지_물속 ‘모래’에 숨어 사는 ‘모래무지’
무궁화_‘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녀리_‘무녀리’는 어미 배에서 맨 먼저 나온 새끼이다
무덤_시체를 묻은 곳, ‘무덤’
무지개_‘무지개’는 하늘로 오르는 문이다
미꾸라지_미끌미끌하고 작은 ‘미꾸라지’
밑천_‘밑천’이 있어야 사업도 하고 장가도 간다
바둑_‘바둑’은 돌을 놓아 자기 땅을 확보하는 놀이다
배꼽_배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배꼽’
벙어리_‘벙어리’는 말을 못하여 냉가슴을 앓는다
벽창호_고집이 세면 ‘벽창호’도 뚫는다
병신_‘병신’은 병든 몸?
보조개_‘보조개’는 단지 ‘볼’일 뿐이었다
부채_‘부채’는 부치는 도구이다
비싸다_비싼 물건은 그에 맞는 값이 있기 마련
빈대떡_빈대처럼 생긴 떡은 없다
사과_‘사과’는 능금보다 큰 중국 외래종이다
사내·가시내_‘사내’가 꼬드기면 ‘가시내’는 따라온다
사냥_산행부터 해야 ‘사냥’
사랑_많이 생각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슬_‘사슬’은 ‘구슬’처럼 이어져 있다
새내기_‘새내기’와 ‘헌내기’?
샛서방_‘샛서방’이 애인이라니 ‘애인’은 울고 싶다
서울·시골_경향(京鄕) 의식이 나라를 망친다
소나기_‘소나기’는 ‘소’를 걸고 ‘내기’를 한 비?
손돌_‘손돌’은 뱃사공 이름이 아니다
수라_임금님이 먹는 밥은 별다르다
수수께끼_‘수수께끼’는 말로 겨루는 놀이
수저_‘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숨바꼭질_숨을 바꾸며 꼭꼭 숨으면 ‘숨바꼭질’
스승_‘제자’는 없어도 ‘스승’은 있다
시내_‘시내’는 골짜기를 흐른다
시앗_‘시앗’은 눈물의 씨앗?
실마리_‘실’에도 머리가 있다
심부름_‘심부름’은 힘을 쓰는 일이다
씨발놈_자칫 어머니까지 욕을 먹인다
아낙네_주로 집 안에서 생활해서 ‘아낙네’
아빠·아버지_‘아빠’는 유아어, ‘아버지’는 성인어
아수라장_이 세상 ‘아수라장’이 아닌 곳이 없다
아우내_‘아우내’에는 두 내가 흐른다
아주버님_때론 자식이 쓰는 친족어휘도 빌려 쓴다
아줌마_‘줌마 부대’는 무서울 것이 없다
안성맞춤_‘안성’ 하면 ‘맞춤 놋그릇’
얌체_‘염치’가 없으면 ‘얌체’가 된다
어버이_‘어버이날’이 없으면 ‘어버이’도 사라질 것이다
어음_‘어음’은 두 쪽으로 나뉜다
언니_남성에게도 ‘언니’?
언청이_윗입술이 찢어져 ‘언청이’
얼굴_‘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신(身)’이 ‘얼굴’이다
엉터리_‘엉터리’는 본래 엉터리가 아니다
예쁘다_불쌍하면 예뻐 보인다
오라질_나쁜 짓을 하면 ‘오라’를 진다
오빠_예전에는 남동생에게도 ‘오빠’?
육개장_‘육개장’은 쇠고기로 끓인 탕이다
육시랄_대역 죄인은 죽어서도 벌을 받는다
윷_‘윷놀이’는 있어도 ‘모놀이’는 없다
을씨년스럽다_흉년으로 기근이 든 ‘을사년’
의붓아버지_‘의붓딸’은 ‘의붓아버지’를 조심해야 한다
이판사판_‘이판사판’이 도를 넘으면 ‘개판’
입씨름_‘입’으로 ‘씨름’을 할 수 있을까?
장가들다_장가는 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지새다_눈물로 밤을 지샐 수는 없다
코끼리_코가 길어서 ‘코끼리’
코주부_‘코주부’는 코가 큰 사람이다
패거리_‘패거리’ 문화가 나라를 좀먹는다
하룻강아지_‘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보다 못하다
함진아비_‘함진아비’가 함을 지고 간다
행주치마_‘행주치마’는 ‘행주대첩’과 아무 관계가 없다
화냥년_‘화냥’은 본래 ‘기생’이나 ‘첩’
황새_‘황새’는 크고 도덕적인 새이다
황소_암소보다 크고 수소 중에서도 특별히 커서 ‘황소’
후레아들_아버지가 없으면 ‘후레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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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딴지에서 마누라까지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

1. 가랑이가 찢어지다 :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2. 간이 붓다 : 간이 부으면 지나치게 대담해진다
3. 쓸개 빠진 놈 : 쓸개가 빠지면 사람 노릇 하기 어렵다
4.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 : 어떻게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깔까
5. 오입 : ‘오입’은 ‘五入’인가 ‘外入’인가 ‘誤入’인가
6. 반죽이 좋다 : 변죽을 울리다? 번죽이 좋다?
7. 척지다 : ‘척’은 송사(訟事)에서 ‘피고’를 가리킨다
8. 을씨년스럽다 : 을사년(乙巳年)은 얼마나 비통한 한 해였을까
9. 갈매기살 :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가 아니다
10. 눈에 콩깍지가 씌다 : 눈에 콩깍지가 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1. 삼천포(三千浦)로 빠지다 : 삼천포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12. 딴지 : ‘딴지’인가 ‘딴죽’인가
13. 산통(算筒) 깨다 : ‘산통’을 왜 깰까
14. 헹가래 : ‘헹가래’는 헝가리어?
15. 건달과 한량 :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
16. 고주망태 : 술만 마시면 뿌리를 뽑는 전투 정신은 어디에서 나올까
17. 에누리 : 물건값을 깎는 일도 ‘에누리’요, 물건값을 올리는 일도 ‘에누리’다
18. 내 코가 석 자 : 콧물이 1미터나 나오면 어떻게 되나
19. 벽창호 : ‘벽창호’는 벽에 부치는 창호지?
20. 경치다 : ‘경’은 죄인의 몸에 새겨 넣던 문신
21. 바가지를 긁다, 바가지를 쓰다 : 바가지를 긁으면 병귀가 달아나고, 바가지를 쓰면 온몸이 젖는다
22. 거덜이 나다 : ‘거덜’은 ‘거들거들’ 걷는다
23. 멍텅구리 : ‘멍텅구리’는 물고기 이름?
24. 낭패(狼狽)를 보다 : 낭(狼)과 패(狽)는 상상의 동물
25. 천만(千萬)의 말씀 :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26. 감질나다 : ‘감질이 나면’ 속이 헛헛하다
27. 마누라 : ‘마누라’는 마주 누워 자는 여자?
28. 푼수 : ‘푼수’와 ‘분수’는 그것이 그것이다
29. 억수 : 억수(億水)인가, 억수(億數)인가, 악수(惡水)인가
30. 아줌마 : 아줌마? 아주머니? 여사님?
31. 오빠 : ‘오빠’는 남자 동기를 부르던 말
32. 걸신들리다 : ‘걸신’은 빌어먹는 귀신
33. 라면 : 라면? 라멘? 라미엔?
34.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 : ‘삼십육계’는 달아나는 병법
35. 눈엣가시 : 눈에 가시가 들어가면 얼마나 성가신가
36. 터무니없다 : 집터에는 터의 자취가 남아 있다
37. 총각(總角)무 : ‘총각무’는 있어도 ‘처녀무’는 없다.
38. 노다지 : 노다지는 ‘노 터치’에서 나왔나
39 큰코다치다 : ‘큰코’는 남성의 상징?
40. 도루묵 : 다시 ‘묵’이라고 해라?
41. 하룻강아지 :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
42. 미역국을 먹다 : 미역국은 먹으면 먹을수록 좋다
43. 어처구니없다 :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물이나 사람을 뜻한다
44. 숙맥(菽麥) : ‘콩’과 ‘보리’를 구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45. 시치미를 떼다 :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가 없다
46. 김치 : ‘김치’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지만 고유의 우리말은 아니다
47. 꼬마 : “꼬마야, 꼬마야, 정체를 밝혀라”
48. 꿩 대신 닭 : 꿩 대신 닭? 꿩 대신 소?
49. 빈대떡 : ‘빈대떡’은 과연 ‘빈대’와 같은 떡인가
50. 외상을 긋다 : ‘외상’을 왜 긋는다고 할까

2부 사바사바에서 거시기까지 알고 쓰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

51. 사바사바 : ‘사바사바’는 ‘고등어’ 두 마리인가
52. 네미, 제미, 네미랄, 제미랄 : 이보다 더 심한 욕은 없다
53. 쪽팔리다 : ‘얼굴’을 잘못 내밀면 ‘쪽팔릴’ 수 있다
54. 야코, 쫑코 : 야코는 양코, 그럼 쫑코는 무슨 코인가?
55. 꼴값 : ‘꼴값’은 소가 먹는 ‘여물 값’이 아니다
56. 알나리깔나리(얼레리꼴레리) : 어린 시절 많이 쓰던 말, 얼레리꼴레리~
57. 염병(染病)할 : ‘염병’은 가장 무서운 병, ‘염병할’은 가장 무서운 욕
58. 아사리판 : 덕망 높은 스님들이 모이면 ‘아사리판’이 된다
59. 약빠리 : ‘약빠리’, 악바리, 발바리, 군바리……
60. 쥐뿔도 모르다 : ‘쥐’에게도 작지만 있을 것은(?) 있다.
61. 어리바리하다(어리버리하다) : 어리벙벙한 아이는 어리바리하다
62. 미주알고주알 : ‘미주알’과 ‘고주알’은 구슬이 아니다
63. 육시랄, 오사랄 : 모반을 꾀하면 육시(戮屍)를 하고, 오살(五殺)을 한다
64. 어중이떠중이 : ‘어중이떠중이’는 ‘떠돌이 중’인가
65. 개발새발 : ‘개발새발’은 개의 발과 새의 발인가
66. 긴가민가 : ‘긴가’와 ‘민가’는 성(姓)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67. 꼴통 : ‘꼴통’은 꼴찌의 머리통인가
68. 아니꼽다 : 왜, 꼽냐? 아니, 아니꼬와
69. 튀기 : 얼굴이 튀는 사람이 ‘튀기’인가
70. 노가리를 까다 : 호프집에서 노가리를 안주 삼아 노가리를 까다
71. 싱숭생숭하다 : 마음이 흉흉해지면 ‘싱숭생숭하다’
72. 후레자식 : 여자 혼자 키운 자식이라고 버릇이 없을까
73. 칠칠맞다 : ‘칠칠맞다’와 ‘칠칠맞지 못하다’의 차이는?
74. 얼토당토않다 : 얼굴이 예쁜 토끼? 당근을 좋아하는 토끼?
75. 싸가지 : 내 사랑 싸가지
76. 개차반 : ‘개’가 먹는 ‘똥’이 ‘개차반’이다
77. 식겁하다(시껍하다) : 내사 마 시껍했다아이가
78. 쌤통 : ‘심통’인가 ‘샘통’인가
79. 땡땡이치다 : ‘땡땡이’는 학교 종이다
80. 십팔번(十八番) : ‘교겐(狂言)’의 18번은 특별나다
81. 감쪽같다 : ‘감쪽’의 어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는가
82. 얌체 : ‘염치’를 알면 ‘얌체 짓’을 하지 않는다
83. 땡잡다 : ‘땡’ 중에서 가장 높은 끗수는 ‘장땡’이다
84. 이판사판(理判事判) : ‘이판’, ‘사판’은 ‘개판’, ‘난장판’과 다르다
85. 하늘이 노랗다 : 파란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도 있다
86. 꾀다(꼬시다) : ‘꼬시다’는 경상도 방언?
87. 게거품 : ‘게’도 열 받으면 ‘거품’을 문다
88. 깡패 : ‘깡패’는 ‘깽판’ 치는 패거리인가
89. 고도리 : ‘고도리’ 석 장에는 새가 몇 마리?
90. 짱 : ‘짱’은 ‘우두머리’이다
91.왕(王)따 : ‘왕따돌림’에서 ‘왕따’가 나왔다
92. 아양 떨다 : ‘아얌’을 흔드는 것이 ‘아양’을 떠는 것이다
93. 내숭 : ‘내숭’은 고유어?
94. 거시기 : ‘거시기’는 전라도 방언인가
95. 어쭈구리 : ‘어쭈구리’에서 맥주나 한 컵 마실까
96. 뺑소니 : ‘뺑소니’는 외래어?
97. 삿대질 : ‘삿대질’은 ‘배질’을 할 때 쓰는 말
98. 망나니 : ‘망나니’는 아무나 못 한다
99. 개떡 같다 : ‘개떡’은 개가 먹는 떡이 아니다
100. 제비족(族) : ‘제비족’은 강남 가는 제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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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을 구제하는 신

일반적으로 태을구고천존은 머리만 있는 사자의 등에 올라탄 모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교영험기(道敎靈驗記)』라는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사자가 입에서 불을 토해내며 연화좌(蓮華座)를 지키는데, 신은 그 위에 앉아 있다. 그리고 아홉 가지 빛깔이 몸 가운데로 떨어져 모이며, 빛의 끝 부분은 창과 검 모양으로 밖을 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태을구고천존은 사자 위에 올라타고 있으며, 화염과 무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 신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을 구출하는 신으로, 대만에서는 유난히 인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유족들은 이 신의 이름을 쓴 부적을 갖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사자(死者)의 영혼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계속 일어나거나 병이 좀처럼 낫지 않으면 그 사람은 도사나 무녀에게 점을 치게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본인의 가까운 친인척(예를 들면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그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자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성대한 의식이 베풀어진다. 우선, 사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가볍게 해달라는 서류와 기원을 문서로 만들어서 낭독한 다음, 이를 불태운다. 문서를 불에 태우는 이유는 태을구고천존의 손에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다음에 도사는 제단 위에 미리 준비해놓은 종이로 만든 지옥의 성(城)을 칼로 망가뜨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종이인형을 끄집어낸다. 이는 도사가 지옥으로 내려가, 지옥의 장관과 이야기를 해서 사자를 구해내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러고는 제단 밑에 준비해두었던 대야에 사자의 종이인형을 목욕시켜 종이 다리를 건너게 하며, 지전(紙錢)2)과 종이로 만든 집 모형을 불태우는 의식을 계속한다. 이렇게 해서 지옥에서 고통당하던 사자는 구출되고, 사자의 인척인 제주(祭主)는 병과 불행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신체에 이상을 느끼면, 그것이 사자로부터 오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아플 때는 '조상이나 먼저 간 사람들이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무덤 앞에서 지전을 태우면 대개는 두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태을구고천존은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자들을 위해 특별 사면권을 부여받은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불교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역할을 도교에서는 태을구고천존이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천존에게 현세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이야기

옛날에 언변이 좋은 장(張)씨 성을 가진 도사가 있었다. 그는 가끔씩 말이 너무 지나쳐 거짓말을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다들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병이 들어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생전에 무언가 위급할 때는 태을구고천존의 이름을 부르면 좋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그 이름을 크게 소리쳐보았다. 수십 번이나 그렇게 불러보았지만 그를 데리러 온 귀신들은 단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다시 수십 번이나 더 소리를 치자, 어디선가 붉은 빛과 함께 천존이 나타났다. 정말 천존이 온 것이었다.

"인간의 악업 중에 입으로 하는 실수가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네 수명은 이미 다하였으니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7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돌아가서 내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알리고, 앞으로는 바른 길을 걷도록 노력하여라."

그 순간 제정신이 돌아온 장은 꿈에서 깨어났다. 죽은 게 아니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장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도관이나 사당에서 태을구고천존의 초상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7년 후에 깨끗하게 죽음을 맞았다. 태을구고천존의 위세는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역할을 가진 신의 존재는 죽은 사람의 유족들에게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기둥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든 생전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병에 시달리다가 죽은 후에도 생전에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모진 시련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남은 가족들, 특히 자식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완화·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태을구고천존 같은 역할을 맡은 신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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