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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부시

History(역사) 2018.10.05 11:04
        찬부시
                              전문규
아무 옷이나 입어도 화보인데
비가 온들 아름다움을 가릴수 있나
국화꽃 그윽한 청전하늘에
가을 바람이 옷깃이 스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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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황제로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던 진나라의 황제였다. 그런데 진시황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고자 한 예언서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 28년에는 불사약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동남동녀와 함께 제나라 사람 서시를 동해에 있다고 전하여지는 봉래, 방장, 영주 등 삼신산에 보낸 적이 있었으며, 32년에는 연나라 사람 노생(盧生)이 바다로부터 동아와 보고한 가운데 녹도서(錄圖書)라는 참서(讖書)에 이르기를 「진나라를 망케할 자는 호라」는 말을 듣고 호(胡)자를 자기의 아들인 호해인 줄을 모르고 북호인 흉노인 줄로만 오해하여, 몽렴(蒙렴)이라는 장수를 시켜 군사 삼십만으로 북쪽 오랑캐를 공격하여 물리치는 동시에 다음해에는 북호가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임조(臨洮)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쌓게 하였던 것이다.

34년에는 승상인 이사가 글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은 세상이 안정되어 백성은 집에서 일만 부지런히 하고 선비는 법령만 배워 익히면 될터인데, 모든 선비들이 그렇지 않아 옛 학문만 하고 지금 것을 배우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 법령이 나오면 입즉심비하고 출즉항의하여 나라 일을 훼방만 하고 인심을 현혹시키니 이런 일을 일절 금하는 동시에 역사책도 진나라 역사가 아니면 전부 불살라버림은 물론이오, 백가시서를 가지고 있는 자도 모두 관에 가지고 나와 불살라 버리되 만약 시서를 가지고 말썽을 부리는 자가 있으면 당장에 목을 베고, 또 옛날 도리만 옳다하고 지금 정치를 비방하는 자는 일가족을 전멸하고, 만약 관리로서 이것을 알고도 집행하지 않는 자는 같은 죄로 다스리며, 명령이 내린지 30일내에 불살으지 않는 자는 묵형(墨刑)을 가하여 강제노동을 시키도록 하고, 다만 없애지 않은 책은 의약에 관한 것과 점서책 그리고 곡식과 초목을 심는데 관한 것 뿐이고, 법령을 배우려는 자는 관리를 선생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 대체의 내용이었는데 시황은 이것을 옳게 여겨 그대로 실행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35년에는 후생(候生) 노생(盧生)등이 시황을 비방하고 어디론지 도망해 버렸다. 시황은 크게 노하여 함양에 있는 선비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비방한 자를 문초한 결과 선비들은 자기 발뺌만 하고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서로 불어넣는 것이 460여명에 달하였다. 시황은 이들을 모두 함양에 구덩이를 파고 산채로 묻어버렸던 것이다. 이것을 본 맏아들 부소가 극력 간하였지만 시황은 간하는 말에 또 노하여 부소를 북쪽으로 내쫓아 그곳에 가 있는 몽렴(蒙렴)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 해에는 또 조궁(朝宮)을 지으려고 먼저 전궐(前궐)인 아방궁을 짓게 되었는데 그 규모는 동서가 5백보(3천척)요, 남북이 50장으로 위에는 만명가량 않을 수 있고 아래에는 오장기치(五丈旗幟)를 세울 수 있는 굉장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모든 궁전에는 악기와 미인을 가득 채워 놓고 수시로 이곳저곳 가서 마음대로 즐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언젠가는 시황이 양산궁에 갔다가 산위에서 거리에 지나가는 승상의 행차에 수레와 말탄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좋지 않게 여긴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승상은 시황의 시종 가운데 한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고 수레와 말탄 사람의 수효를 많이 줄였다. 그 다음 승상의 행차규모가 전보다 많이 줄어진 것을 본 시황은 이것은 필시 전에 양산궁에 같이 갔던 수행원 가운데 누가 말한 것이라 보고 한 사람 한사람 불러 물어보았으나 누구 하나 실토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황은 성이 날대로 나서 그 당시 같이 갔던 사람을 전부 잡아 죽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 부터는 시황의 간곳을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모든 정사의 결재는 대소를 막론하고 오직 함양궁에서만 친히 행하여 그의 사생활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37년에는 시황이 지방순시에 나섰는데 좌승상 이사와 작은 아들 호해와 중거부령 조고와 근신 몇 명 등이 수행하게 되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던 중 시황은 무서운 해신과 싸운 꿈을 꾸고 그만 병이 생겨 점차 중하게 되었다. 죽음을 각오 하였던지 자기가 죽으면 함양에 와서 장례를 같이 지내도록 하라는 편지를 써서 만리장성 쪽에 가있는 맏아들 부소에게 전하려고 옥새(玉璽)까지 찍어 놓은 후 이 서신이 조고에게만 넘겨지고 사신이 채 떠나기도 전에 시황은 그만 사구평대(沙丘平臺)에서 죽게 되었다. 그때의 나이는 50세.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어떤 변란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여 승상 이사는 이것을 절대로 비밀에 붙이고 식사 올리는 것과 보고사항 등 생시와 다름없이 하였기 때문에 시황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호해, 조고등 근시자 5,6명 뿐이었다. 조고는 호해 이사등과 공모하여 한가지 꾀를 내었다. 그것은 시황의 조서를 위조하여 호해로 태자를 삼고, 공자 부소와 장군 몽렴에게는 족음을 주는 서신을 보내는 동시에, 시황이 죽기 전에 써놓은 부소에게 보내는 글은 몽땅 없애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재촉하여 함양으로 향하는데 며칠이 지나는 동안 시신이 썩기 시작하여 냄새가 나므로 이것을 속이기 위하여 썩은 복어를 한섬가량 수레에 실어 냄새를 풍기기도 하였던 것이다. 함양에 돌아와서는 즉시 시황의 붕(崩)한 것을 발표하는 동시에 호해가 뒤를 이어 황제의 위에 오르고 시황은 여산(驪山)에 장례 지내기로 하였는데, 여산은 황금과 미옥(美玉)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시황의 무덤은 천광(穿壙)할 때에 70여만명을 동원 하였으며, 무덤안에는 여러 가지 이상한 보물을 간직함은 물론이오,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금은으로 오리와 학을 만들어 기계로 오락가락하게 하였으며, 또 사람이 가까이 오면 저절로 화살이 발사되는 장치를 하여 누구나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자식없는 후궁들은 전부 순장하고, 내부시설을 한 장인들도 그 시설을 세상에 알릴까 봐 전부 그 속에서 죽여 버렸다고 전하여지고 있는데 무덤의 크기는 높이가 50장, 주위가 5리나 되었다고 한다.

2세 황제인 호해는 나이가 21세로 조고의 공작으로 황제가 되었으니만치 언제나 조고를 가장 가깝게 하는 동시에 모든 정치를 조고에게 맡기고, 조고 역시 호해에게 아첨하는 동시에 법을 가혹하게 운용하여 자기의 지위를 더욱 굳혀갔던 것이다. 그런데 다만 이사가 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먼저 이사를 제거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사는 본래 초나라에 태어나 순자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으로 언제인가 변소에 갔더니 그곳 쥐는 더러운 것만 먹고 사람을 보면 자주 놀래어 달아나기만 하는데, 창고엘 갔더니 그 곳 쥐는 사람을 겁내는 일도 없고 깊숙이 들어박혀 배부르게 맛있는 곡식만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쥐는 마찬가지 쥐인데 어떤 놈은 편안히 잘 살고, 어떤 놈은 잘 먹지도 못하면서 놀래기만 하니 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처할 탓에 달렸으니, 사람도 이와 같아 좋은 곳에 처하면 잘 되고 나쁜 곳에 처하면 못될 것이 뻔하니 무엇보다 좋은 곳에 처해야 되겠다 하고 즉시 시골을 떠나 진나라 서울로 가서 길을 밟아 벼슬이 차츰 높은데 올랐던 것이다. 그 후 진나라에는 축객령(逐客令)이 내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나라 사람은 모두 쫓겨나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그는 저 유명한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라는 글을 지어 시황을 감동케 하여 쫓겨나지 않음은 물론이오, 시황의 신임을 더욱 얻어 승상이 되는 동시에 통일사업과 문물제도의 개혁에 큰 공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일을 너무 가혹하게 처리하여 백성의 원망을 사기도 하였는데 순자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한비자가 자기보다 우수한 것을 알고, 그 후 한비자가 진나라에 왔을 때에 임금에게 음해하여 잡아가두는 동시에 제멋대로 사약을 주어 그를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가 그만 조고의 모하에 걸려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시황이 죽은 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맨처음 진승(陳勝), 오광(吳廣) 등은 기(蘄)에서, 항양(項梁)과 항적(項籍)(項적) 등은 강동인 오에서, 유방은 패(沛)에서 각각 기병하여 온 천하가 어지럽게 되었다. 조고는 임금인 호해에게 대하여 이렇게 나라가 어지럽게 된 것은 이사가 승상으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못한 것은 물론이오, 삼천군수로 가있는 그의 아들 이유가 진승등 적과 내통하여 있다고 허위로 이유를 만들어 일가족과 함께 모두 잡아 죽였던 것이다. 이 때에 이사는 자기의 작은 아들을 돌아보며 「내가 부귀공명은 고사하고, 이제는 고향에서 누런 사냥개를 데리고 토끼사냥이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은들 어찌 이것이 가능하겠는가」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던 것이다.  

이사를 죽인 조고는 호해마저 죽이고 나라를 빼앗을 작정으로 먼저 한 가지 시험을 하였다. 그것은 모든 신하들이 호해를 따르는가 또는 자기를 따르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일부러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이것은 말이라고 하였다. 호해는 웃으면서 이것은 분명 사슴인데 왜 말이라고 하는가 하고 두 사람은 서로 「말이다 사슴이다」하고 우겨댔다. 그리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물어보아 말인지 사슴인지 판단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조고의 위세에 눌리어 사슴인줄 뻔히 알면서도 양심을 속여 조고의 편에 들어 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그저 묵묵부답으로 있기도 하였다. 그래도 정직한 사람은 사슴이 틀림없다고 솔직하게 대답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조고는 이런 사람들을 눈여겨 봐뒀다가 그 후 자기 의견에 반대한 사람은 모두 잡아 죽였다. 이것이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생겨난 동기인데 이쯤 되고보니 인심은 극도로 공포에 휩싸여 있고 조고의 위세는 황제인 호해를 누르게 되었다.

드디어 조고는 자기의 사위인 함양령염락(咸陽令閻樂)과 동생인 조성등과 공모하여 호해를 없애기로 하였다. 먼저 적이 쳐들어오니 막아야겠다고 거짓 꾸며대어, 사위인 염락(閻樂)을 시켜 군사 천 여명을 이끌고 엉뚱하게도 호해가 있는 망이궁을 포위하였다. 호해를 모시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오직 한사람만이 남아 있었는데 호해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왜 이런 기미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그 사람의 대답이 아주 걸작이었다. 「제가 미리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껏 목숨이 붙어있지, 미리 말 하였더라면 벌써 죽은지 오랬을 것입니다」라고. 호해는 아무리 성을 내고 아무리 안타까워했지만 이제는 별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염락에게 향하여 승상 조고와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였다. 그러면 황제의 자리를 내놓을 터이니 한 고을의 왕이나 되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안된다고 하였고, 그러면 만호가량 되는 지방에 제후로나 있게 해달라고 하였지만 역시 안된다고 거절당하였다. 마지막에는 할 수 없이 그러면 일개 평민으로 처자와 함께 목숨이나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보았지만 염락은 이것마저 안 된다고 거절한 후 「나는 승상의 명령을 받아 너의 목을 베러 여기에 왔다」고 하지 않는가. 호해도 이제는 할 수 없었던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조고는 여러 대신과 공자(公子)들을 불러놓고 「시황제 때에는 천하를 통일하였기 때문에 황제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국이 모두 자립하여 진나라는 더욱 작아졌으니만치 이름뿐인 황제보다도 옛날과 같이 왕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후 호해의 형의 아들인 공자 영을 진왕으로 정하기로 하고 호해는 평민장으로 하였는데 호해가 임금의 자리에 있은지 경우 3년, 그 후 조고는 공자영(公子嬰)에게 찔려죽고 그의 삼족도 전멸을 당하였으며, 공자 영도 왕이 된지 46일 만에 진군을 격파하고 관중에 들어온 패공(沛公)에게 항복하고 말았는데, 항우가 함양에 들어와서는 공자 영과 제공자 빛 종족들을 모조리 죽이고, 각종 보물을 탈취하였으며, 아방궁을 위시한 모든 궁실에는 불을 질러 그 불길이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하며, 진시황의 무덤도 항우에게 무참히 발굴되어 진나라는 여기에서 망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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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방(鬼方)

History(역사) 2018.08.18 19:51

 귀문 [鬼門]

귀방()이라고도 한다. 원한을 품거나 인간에게 해코지를 하는 귀신들은 동쪽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는 도삭산()에 모여 사는데, 도삭산에는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동북쪽으로 3천리까지 가지가 길게 뻗어 있고, 이 가지를 따라가면 이승과 연결된 귀문()이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이런 연유로 동북향을 귀방()이라 하며, 점술가()들은 이 방위를 귀신이 드나든다 하여 매사에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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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_가라고 해서 ‘가랑비’, 있으라고 해서 ‘이슬비’인가?
가시버시_부부라도 아무에게나 ‘가시버시’라 하면 안 된다
가시아버님·가시어머님_‘장인’과 ‘장모’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수 있다
갈매기살_‘갈매기살’은 도대체 무슨 고기?
개구리_‘개구리’ 울음소리는 한 가지가 아니다
개숫물_‘개수’는 그릇을 닦는 물이 아니다
건달_‘건달’은 향내를 쫓아 날아다닌다
고린내_‘고린내’는 곯은 냄새가 아니다
고뿔_감기에 걸리면 코에서 불이 나는 법
곱창_꼬불꼬불해서 ‘곱창’?
기와_‘새집’이 ‘기와집’으로 바뀌다
김치_‘김치’는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다
까치설_‘까치설’은 ‘까치’가 쇠는 설?
깡패_‘깡패’는 광복 이후에 생겨난 말
꼬마_‘꼬마’와 ‘첩(妾)’은 같은 부류이다
나라_‘나라’가 서려면 땅이 있어야 한다
누나_‘누나’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 동기에게 적용됐던 말
담배_우리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당나귀_‘당나귀’는 중국산이다
대머리_‘대머리’는 큰 머리?
데릴사위_요즘은 처가살이하는 ‘데릴사위’가 많다
도루묵_‘도루묵’은 ‘도로 묵’?
도토리_‘도토리’는 ‘멧돼지’의 주식이다
독도_‘독도’는 돌로 된 섬일 뿐
돌팔이_‘돌팔이’가 전문가 뺨친다
동냥_‘동냥’은 방울을 흔들며 시작한다
동생_어머니가 같으면 모두 ‘동생’
동아리_‘동아리’가 ‘서클’을 몰아내다
마파람_‘마파람’이 불면 ‘게’가 먼저 숨는다
막걸리_‘막걸리’는 마구 거칠게 거른 술
말씀_‘말씀’은 말을 하는 것이다
말티고개_‘말티고개’는 말을 타고 넘은 고개?
모래무지_물속 ‘모래’에 숨어 사는 ‘모래무지’
무궁화_‘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다
무녀리_‘무녀리’는 어미 배에서 맨 먼저 나온 새끼이다
무덤_시체를 묻은 곳, ‘무덤’
무지개_‘무지개’는 하늘로 오르는 문이다
미꾸라지_미끌미끌하고 작은 ‘미꾸라지’
밑천_‘밑천’이 있어야 사업도 하고 장가도 간다
바둑_‘바둑’은 돌을 놓아 자기 땅을 확보하는 놀이다
배꼽_배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배꼽’
벙어리_‘벙어리’는 말을 못하여 냉가슴을 앓는다
벽창호_고집이 세면 ‘벽창호’도 뚫는다
병신_‘병신’은 병든 몸?
보조개_‘보조개’는 단지 ‘볼’일 뿐이었다
부채_‘부채’는 부치는 도구이다
비싸다_비싼 물건은 그에 맞는 값이 있기 마련
빈대떡_빈대처럼 생긴 떡은 없다
사과_‘사과’는 능금보다 큰 중국 외래종이다
사내·가시내_‘사내’가 꼬드기면 ‘가시내’는 따라온다
사냥_산행부터 해야 ‘사냥’
사랑_많이 생각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슬_‘사슬’은 ‘구슬’처럼 이어져 있다
새내기_‘새내기’와 ‘헌내기’?
샛서방_‘샛서방’이 애인이라니 ‘애인’은 울고 싶다
서울·시골_경향(京鄕) 의식이 나라를 망친다
소나기_‘소나기’는 ‘소’를 걸고 ‘내기’를 한 비?
손돌_‘손돌’은 뱃사공 이름이 아니다
수라_임금님이 먹는 밥은 별다르다
수수께끼_‘수수께끼’는 말로 겨루는 놀이
수저_‘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숨바꼭질_숨을 바꾸며 꼭꼭 숨으면 ‘숨바꼭질’
스승_‘제자’는 없어도 ‘스승’은 있다
시내_‘시내’는 골짜기를 흐른다
시앗_‘시앗’은 눈물의 씨앗?
실마리_‘실’에도 머리가 있다
심부름_‘심부름’은 힘을 쓰는 일이다
씨발놈_자칫 어머니까지 욕을 먹인다
아낙네_주로 집 안에서 생활해서 ‘아낙네’
아빠·아버지_‘아빠’는 유아어, ‘아버지’는 성인어
아수라장_이 세상 ‘아수라장’이 아닌 곳이 없다
아우내_‘아우내’에는 두 내가 흐른다
아주버님_때론 자식이 쓰는 친족어휘도 빌려 쓴다
아줌마_‘줌마 부대’는 무서울 것이 없다
안성맞춤_‘안성’ 하면 ‘맞춤 놋그릇’
얌체_‘염치’가 없으면 ‘얌체’가 된다
어버이_‘어버이날’이 없으면 ‘어버이’도 사라질 것이다
어음_‘어음’은 두 쪽으로 나뉜다
언니_남성에게도 ‘언니’?
언청이_윗입술이 찢어져 ‘언청이’
얼굴_‘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신(身)’이 ‘얼굴’이다
엉터리_‘엉터리’는 본래 엉터리가 아니다
예쁘다_불쌍하면 예뻐 보인다
오라질_나쁜 짓을 하면 ‘오라’를 진다
오빠_예전에는 남동생에게도 ‘오빠’?
육개장_‘육개장’은 쇠고기로 끓인 탕이다
육시랄_대역 죄인은 죽어서도 벌을 받는다
윷_‘윷놀이’는 있어도 ‘모놀이’는 없다
을씨년스럽다_흉년으로 기근이 든 ‘을사년’
의붓아버지_‘의붓딸’은 ‘의붓아버지’를 조심해야 한다
이판사판_‘이판사판’이 도를 넘으면 ‘개판’
입씨름_‘입’으로 ‘씨름’을 할 수 있을까?
장가들다_장가는 들기도 하고 가기도 한다
지새다_눈물로 밤을 지샐 수는 없다
코끼리_코가 길어서 ‘코끼리’
코주부_‘코주부’는 코가 큰 사람이다
패거리_‘패거리’ 문화가 나라를 좀먹는다
하룻강아지_‘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보다 못하다
함진아비_‘함진아비’가 함을 지고 간다
행주치마_‘행주치마’는 ‘행주대첩’과 아무 관계가 없다
화냥년_‘화냥’은 본래 ‘기생’이나 ‘첩’
황새_‘황새’는 크고 도덕적인 새이다
황소_암소보다 크고 수소 중에서도 특별히 커서 ‘황소’
후레아들_아버지가 없으면 ‘후레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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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딴지에서 마누라까지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

1. 가랑이가 찢어지다 :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2. 간이 붓다 : 간이 부으면 지나치게 대담해진다
3. 쓸개 빠진 놈 : 쓸개가 빠지면 사람 노릇 하기 어렵다
4.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 : 어떻게 ‘뒷구멍’으로 호박씨를 깔까
5. 오입 : ‘오입’은 ‘五入’인가 ‘外入’인가 ‘誤入’인가
6. 반죽이 좋다 : 변죽을 울리다? 번죽이 좋다?
7. 척지다 : ‘척’은 송사(訟事)에서 ‘피고’를 가리킨다
8. 을씨년스럽다 : 을사년(乙巳年)은 얼마나 비통한 한 해였을까
9. 갈매기살 :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가 아니다
10. 눈에 콩깍지가 씌다 : 눈에 콩깍지가 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1. 삼천포(三千浦)로 빠지다 : 삼천포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12. 딴지 : ‘딴지’인가 ‘딴죽’인가
13. 산통(算筒) 깨다 : ‘산통’을 왜 깰까
14. 헹가래 : ‘헹가래’는 헝가리어?
15. 건달과 한량 :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
16. 고주망태 : 술만 마시면 뿌리를 뽑는 전투 정신은 어디에서 나올까
17. 에누리 : 물건값을 깎는 일도 ‘에누리’요, 물건값을 올리는 일도 ‘에누리’다
18. 내 코가 석 자 : 콧물이 1미터나 나오면 어떻게 되나
19. 벽창호 : ‘벽창호’는 벽에 부치는 창호지?
20. 경치다 : ‘경’은 죄인의 몸에 새겨 넣던 문신
21. 바가지를 긁다, 바가지를 쓰다 : 바가지를 긁으면 병귀가 달아나고, 바가지를 쓰면 온몸이 젖는다
22. 거덜이 나다 : ‘거덜’은 ‘거들거들’ 걷는다
23. 멍텅구리 : ‘멍텅구리’는 물고기 이름?
24. 낭패(狼狽)를 보다 : 낭(狼)과 패(狽)는 상상의 동물
25. 천만(千萬)의 말씀 :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26. 감질나다 : ‘감질이 나면’ 속이 헛헛하다
27. 마누라 : ‘마누라’는 마주 누워 자는 여자?
28. 푼수 : ‘푼수’와 ‘분수’는 그것이 그것이다
29. 억수 : 억수(億水)인가, 억수(億數)인가, 악수(惡水)인가
30. 아줌마 : 아줌마? 아주머니? 여사님?
31. 오빠 : ‘오빠’는 남자 동기를 부르던 말
32. 걸신들리다 : ‘걸신’은 빌어먹는 귀신
33. 라면 : 라면? 라멘? 라미엔?
34. 삼십육계(三十六計) 줄행랑 : ‘삼십육계’는 달아나는 병법
35. 눈엣가시 : 눈에 가시가 들어가면 얼마나 성가신가
36. 터무니없다 : 집터에는 터의 자취가 남아 있다
37. 총각(總角)무 : ‘총각무’는 있어도 ‘처녀무’는 없다.
38. 노다지 : 노다지는 ‘노 터치’에서 나왔나
39 큰코다치다 : ‘큰코’는 남성의 상징?
40. 도루묵 : 다시 ‘묵’이라고 해라?
41. 하룻강아지 : ‘하룻강아지’는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
42. 미역국을 먹다 : 미역국은 먹으면 먹을수록 좋다
43. 어처구니없다 :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물이나 사람을 뜻한다
44. 숙맥(菽麥) : ‘콩’과 ‘보리’를 구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45. 시치미를 떼다 :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가 없다
46. 김치 : ‘김치’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지만 고유의 우리말은 아니다
47. 꼬마 : “꼬마야, 꼬마야, 정체를 밝혀라”
48. 꿩 대신 닭 : 꿩 대신 닭? 꿩 대신 소?
49. 빈대떡 : ‘빈대떡’은 과연 ‘빈대’와 같은 떡인가
50. 외상을 긋다 : ‘외상’을 왜 긋는다고 할까

2부 사바사바에서 거시기까지 알고 쓰면 더 재미있는 우리말

51. 사바사바 : ‘사바사바’는 ‘고등어’ 두 마리인가
52. 네미, 제미, 네미랄, 제미랄 : 이보다 더 심한 욕은 없다
53. 쪽팔리다 : ‘얼굴’을 잘못 내밀면 ‘쪽팔릴’ 수 있다
54. 야코, 쫑코 : 야코는 양코, 그럼 쫑코는 무슨 코인가?
55. 꼴값 : ‘꼴값’은 소가 먹는 ‘여물 값’이 아니다
56. 알나리깔나리(얼레리꼴레리) : 어린 시절 많이 쓰던 말, 얼레리꼴레리~
57. 염병(染病)할 : ‘염병’은 가장 무서운 병, ‘염병할’은 가장 무서운 욕
58. 아사리판 : 덕망 높은 스님들이 모이면 ‘아사리판’이 된다
59. 약빠리 : ‘약빠리’, 악바리, 발바리, 군바리……
60. 쥐뿔도 모르다 : ‘쥐’에게도 작지만 있을 것은(?) 있다.
61. 어리바리하다(어리버리하다) : 어리벙벙한 아이는 어리바리하다
62. 미주알고주알 : ‘미주알’과 ‘고주알’은 구슬이 아니다
63. 육시랄, 오사랄 : 모반을 꾀하면 육시(戮屍)를 하고, 오살(五殺)을 한다
64. 어중이떠중이 : ‘어중이떠중이’는 ‘떠돌이 중’인가
65. 개발새발 : ‘개발새발’은 개의 발과 새의 발인가
66. 긴가민가 : ‘긴가’와 ‘민가’는 성(姓)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67. 꼴통 : ‘꼴통’은 꼴찌의 머리통인가
68. 아니꼽다 : 왜, 꼽냐? 아니, 아니꼬와
69. 튀기 : 얼굴이 튀는 사람이 ‘튀기’인가
70. 노가리를 까다 : 호프집에서 노가리를 안주 삼아 노가리를 까다
71. 싱숭생숭하다 : 마음이 흉흉해지면 ‘싱숭생숭하다’
72. 후레자식 : 여자 혼자 키운 자식이라고 버릇이 없을까
73. 칠칠맞다 : ‘칠칠맞다’와 ‘칠칠맞지 못하다’의 차이는?
74. 얼토당토않다 : 얼굴이 예쁜 토끼? 당근을 좋아하는 토끼?
75. 싸가지 : 내 사랑 싸가지
76. 개차반 : ‘개’가 먹는 ‘똥’이 ‘개차반’이다
77. 식겁하다(시껍하다) : 내사 마 시껍했다아이가
78. 쌤통 : ‘심통’인가 ‘샘통’인가
79. 땡땡이치다 : ‘땡땡이’는 학교 종이다
80. 십팔번(十八番) : ‘교겐(狂言)’의 18번은 특별나다
81. 감쪽같다 : ‘감쪽’의 어원은 감쪽같이 사라졌는가
82. 얌체 : ‘염치’를 알면 ‘얌체 짓’을 하지 않는다
83. 땡잡다 : ‘땡’ 중에서 가장 높은 끗수는 ‘장땡’이다
84. 이판사판(理判事判) : ‘이판’, ‘사판’은 ‘개판’, ‘난장판’과 다르다
85. 하늘이 노랗다 : 파란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도 있다
86. 꾀다(꼬시다) : ‘꼬시다’는 경상도 방언?
87. 게거품 : ‘게’도 열 받으면 ‘거품’을 문다
88. 깡패 : ‘깡패’는 ‘깽판’ 치는 패거리인가
89. 고도리 : ‘고도리’ 석 장에는 새가 몇 마리?
90. 짱 : ‘짱’은 ‘우두머리’이다
91.왕(王)따 : ‘왕따돌림’에서 ‘왕따’가 나왔다
92. 아양 떨다 : ‘아얌’을 흔드는 것이 ‘아양’을 떠는 것이다
93. 내숭 : ‘내숭’은 고유어?
94. 거시기 : ‘거시기’는 전라도 방언인가
95. 어쭈구리 : ‘어쭈구리’에서 맥주나 한 컵 마실까
96. 뺑소니 : ‘뺑소니’는 외래어?
97. 삿대질 : ‘삿대질’은 ‘배질’을 할 때 쓰는 말
98. 망나니 : ‘망나니’는 아무나 못 한다
99. 개떡 같다 : ‘개떡’은 개가 먹는 떡이 아니다
100. 제비족(族) : ‘제비족’은 강남 가는 제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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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을 구제하는 신

일반적으로 태을구고천존은 머리만 있는 사자의 등에 올라탄 모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교영험기(道敎靈驗記)』라는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사자가 입에서 불을 토해내며 연화좌(蓮華座)를 지키는데, 신은 그 위에 앉아 있다. 그리고 아홉 가지 빛깔이 몸 가운데로 떨어져 모이며, 빛의 끝 부분은 창과 검 모양으로 밖을 향하고 있다."

말하자면, 태을구고천존은 사자 위에 올라타고 있으며, 화염과 무기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 신은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을 구출하는 신으로, 대만에서는 유난히 인기가 있다. 사람이 죽으면 유족들은 이 신의 이름을 쓴 부적을 갖고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 사자(死者)의 영혼이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불행한 일이 계속 일어나거나 병이 좀처럼 낫지 않으면 그 사람은 도사나 무녀에게 점을 치게 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본인의 가까운 친인척(예를 들면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니)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어서, 그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자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성대한 의식이 베풀어진다. 우선, 사자가 생전에 지은 죄를 가볍게 해달라는 서류와 기원을 문서로 만들어서 낭독한 다음, 이를 불태운다. 문서를 불에 태우는 이유는 태을구고천존의 손에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다음에 도사는 제단 위에 미리 준비해놓은 종이로 만든 지옥의 성(城)을 칼로 망가뜨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종이인형을 끄집어낸다. 이는 도사가 지옥으로 내려가, 지옥의 장관과 이야기를 해서 사자를 구해내는 행위를 상징한다. 그러고는 제단 밑에 준비해두었던 대야에 사자의 종이인형을 목욕시켜 종이 다리를 건너게 하며, 지전(紙錢)2)과 종이로 만든 집 모형을 불태우는 의식을 계속한다. 이렇게 해서 지옥에서 고통당하던 사자는 구출되고, 사자의 인척인 제주(祭主)는 병과 불행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신체에 이상을 느끼면, 그것이 사자로부터 오는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머리가 아플 때는 '조상이나 먼저 간 사람들이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판단하고, 무덤 앞에서 지전을 태우면 대개는 두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태을구고천존은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사자들을 위해 특별 사면권을 부여받은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불교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역할을 도교에서는 태을구고천존이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천존에게 현세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한 이야기

옛날에 언변이 좋은 장(張)씨 성을 가진 도사가 있었다. 그는 가끔씩 말이 너무 지나쳐 거짓말을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다들 만나기를 꺼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병이 들어 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생전에 무언가 위급할 때는 태을구고천존의 이름을 부르면 좋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 그 이름을 크게 소리쳐보았다. 수십 번이나 그렇게 불러보았지만 그를 데리러 온 귀신들은 단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다시 수십 번이나 더 소리를 치자, 어디선가 붉은 빛과 함께 천존이 나타났다. 정말 천존이 온 것이었다.

"인간의 악업 중에 입으로 하는 실수가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네 수명은 이미 다하였으니 다시 현세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7년 동안 시간을 줄 테니 돌아가서 내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알리고, 앞으로는 바른 길을 걷도록 노력하여라."

그 순간 제정신이 돌아온 장은 꿈에서 깨어났다. 죽은 게 아니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장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도관이나 사당에서 태을구고천존의 초상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썼다. 그리고 7년 후에 깨끗하게 죽음을 맞았다. 태을구고천존의 위세는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역할을 가진 신의 존재는 죽은 사람의 유족들에게는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기둥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든 생전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병에 시달리다가 죽은 후에도 생전에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모진 시련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남은 가족들, 특히 자식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완화·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태을구고천존 같은 역할을 맡은 신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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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에서 발견된 미군의 폭탄]

미군 독도 폭격 사건

[]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시대 현대/현대
출처

 

목차

1948년과 1952년에 미국 공군 폭격대가 독도를 폭격한 사건.

 

미군의 폭탄에 돌아가신 어민의 위령비

역사적 배경

해방 후 울릉도 및 강원도 어민들은 삶의 터전인 독도와 그 주변 해역에서 어로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대일 강화조약 이후 독도를 미국의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아, 결국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들은 미 공군의 독도 폭격 연습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과

미군의 제1차 폭격은 1948년 6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발생했다. 미국 극동공군사령부의 B-29 폭격기 9대가 사전 통보도 없이 4차례에 걸쳐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 사격을 실시하는 등 폭격 훈련을 하였다.

제2차 폭격은 1950년 7월 6일 연합국최고사령부가 독도를 미 공군 폭격 연습지로 선정한 이후, 9월 15일에 발생했다. 이날 오전 11시경 미국 극동공군사령부 소속 폭격기가 독도를 몇 차례 선회하다가 폭탄 4대를 투하했다. 독도에서 어로 중이던 한국 어선들이 미군기의 폭격을 받았는데, 당시 사전 경고는 시마네현[] 어민들에게만 내려져 있던 상태였다. 이날의 폭격은 전투지역이 아닌 장소에서 발생했고, 한국 어민 23명이 조업 중이었다.

[일본의 계략으로 독도를 폭격했던 미군]

결과

제1차 폭격사건으로 독도 해역에서 고기를 잡거나 미역을 따고 있던 울릉도 및 강원도의 어선 20여 척이 파괴되었고, 어부 16명이 즉사하고 10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격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장학상[당시 36세, 1996년 사망]은 “30여 척의 동력선에 한 척당 5~8명이 타고 있었으니까, 150여 명 정도가 숨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군정은 사건 발생 8일이 지나도록 폭격 사실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폭격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고공에서 날았기 때문에 어선을 보지 못했으며, 폭격 30분 뒤 정찰기가 촬영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현장에 작은 선박 여러 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발표하였다. 미군 당국은 소청위원회를 구성, 울릉도와 독도에서 피해 내용을 조사했고, 1명을 제외한 피해자들에게 소정의 배상을 완료하였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배상 내용, 독도를 연습 대상으로 지정한 경위, 사고에 따른 내부 처벌 등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제2차 폭격에서는 인명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1948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선량한 어민들에 대한 진상 규명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명확한 진상 규명이 먼저 요구된다.

[미군 오키나와 주둔했던 미공군 329폭격대대의 자료]

 

참고문헌

  • 『일본은 죽어도 모르는 독도 이야기 88』(예나루, 2005)
  • 홍성근, 「독도폭격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아서」(『울릉문화』5, 2000)
  • 홍성근, 「독도 폭격사건의 국제법적 쟁점 분석」(『독도 연구총서』10, 독도연구보전협회, 2003)
  • 이예균·김성호, 「포커스:독도폭격 미공군 93폭격대대가 했다」(『뉴스메이커』630, 경향신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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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역사) 2018.06.04 17:30
산스크리트어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팔리어 cattāri sati-paṭṭhānāni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네 가지 마음챙김.
(1) 신염처(身念處). 신체를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2) 수염처(受念處). 느낌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3) 심염처(心念處).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4) 법염처(法念處).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여 마음챙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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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서문(書傳序文) 본문

 

경원기미동     선생문공     영침        작서집전

慶元己未冬先生文公令沈으로 作序集傳하시고

명년     선생    몰

明年先生歿커시늘

우십년     시극성편        총약간만언

又十年始克成編하니 總若干萬言이라.

경원(慶元: 南宋 寧帝의 연호) 己未(1199)년 겨울에 선생 朱文公께서 침으로 하여금 序集傳을 짓게 하시고 이듬해에 선생이 별세하시거늘 십 년 만에 비로소 책을 완성하니 모두 몇 만 자라.

 

오호     서기이언재

嗚呼書豈易言哉리오

이제삼왕     치천하지대경대법      개재차서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皆載此書로되

이천견박식         기족이진발온오

而淺見薄識으로 豈足以盡發蘊奧

차생어수천재지하         이욕강명어수천재지전

且生於數千載之下하여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하니

역이난의

亦已難矣.

! 서경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으리오.

이제삼왕의 천하를 다스리는 대경대법이 이 책에 다 실렸으되

나의 얕은 식견과 학식으로

어찌 족히 그 심오한 이치를 다 드러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수천 년 뒤에 태어나 수천 년 전의 것을 밝히려 하니

또한 심히 어려운 일이로다.

 

연        이제삼왕지치     본어도

이나 二帝三王之治本於道하고

이제삼왕지도     본어심

二帝三王之道本於心하니

득기심        즉도여치     고가득이언의

得其心이면 則道與治固可得而言矣리라

그러나 이제삼왕의 다스림은 에 근본하였고

이제삼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하였으니

바로 그 마음을 깨면 도와 다스림을 진실로 말할 수 있으리라.

 

하자

何者

정일집중     요순우상전지심법야

精一執中堯舜禹相授之心法也

건중건극     상탕주무상전지심법야

建中建極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왈덕  왈인 왈경  왈성    언수수이리즉일

曰德 曰仁 曰敬 曰誠言雖殊而理則一이니

무비소이명차심지소야

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무슨 까닭인가?

오직 일심을 갖고 중용의 도를 잃지 않음은

··가 서로 전한 심법이요

중용의 도를 세우고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武王이 서로 전한 심법이니

이 말은 비록 다르나 이치는 곧 하나이니

다 이 마음의 오묘함을 밝힌 것 아님이 없느니라.

 

지어언천즉  엄기심지소자출

至於言天則 嚴其心之所自出이요

언민즉  근기심지소유시

言民則 謹其心之所由施

예악교화     심지발야

禮樂敎化心之發也

전장문물     심지저야

典章文物心之著也

가제국치이천하평      심지추야

家齊國治而天下平心之推也

심지덕이  기성의호

心之德其盛矣乎인저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유래한 바를 엄히 하였고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에 말미암아서 베풀어지는 바를 삼갔으니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현이요

전장과 문물은 이 마음의 드러남이요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히 함은 이 마음을 미루어 확장한 것이니

마음의 덕이 성대하도다.

*至於言天則 嚴其心之所自出이요 言民則 謹其心之所由施.

하늘에 대해 말할 때는, 마음의 근원처인 하늘(, 上帝)을 엄히 공경하고 외경(畏敬)하게 함으로써 天命을 보존하게 하였다. 또 백성에 대해 말할 때는, 마음의 덕에 말미암아 일상 현실에서 베풀어지는 것(道律政規)을 신중히 하여 德化를 펼치도록 하였다.

 

이제삼왕     존차심자야

二帝三王存此心者也

하걸상수     망차심자야

夏桀商受亡此心者也

태갑성왕     곤이존차심자야

太甲成王困而存此心者也

존즉치        망즉란

存則治하고 亡則亂하나니

치란지분     고기심지존부존여하이

治亂之分固其心之存不存如何耳

이제삼왕은 이 마음을 간직한 자요

의 수(: )는 이 마음을 잃은 자요

태갑과 성왕은 애써 이 마음을 간직한 자라.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나니

다스림과 어지러워지는 것의 나누임이

마음을 간직하느냐 못 하느냐의 여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니라.

 

후세인주  유지어이제삼왕지치         불가불구기도

後世人主 有志於二帝三王之治인대 不可不求其道

유지어이제삼왕지도         불가불구기심

有志於二帝三王之道인대 不可不求其心이니

구심지요     사시서        하이재

求心之要舍是書하고 何以哉리오

후세의 군주가 이제삼왕의 다스림에 뜻이 있을진대 그 도를 구하지 않을 수 없고

이제삼왕의 도에 뜻이 있을진대 그 마음을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마음을 구하는 요체는 이 책을 버리고 무엇으로 얻을 수 있으리오.

 

침     자수독이래     침잠기의

自受讀以來沈潛其義하고

참고중설        융회관통

參考衆說하여 融會貫通일새

내감절충        미사오지      다술구문

乃敢折衷이나 微辭奧旨多述舊聞이요

이전우모     선생     개상시정

二典禹謨先生蓋嘗是定하사

수택     상신           오호석재

手澤尙新하시니 嗚呼惜哉

침이 서경을 배워 읽은 이래로 그 뜻을 깊이 침잠하고

여러 학설을 참고하여 자세히 이해하고 관통하고서야

이에 감히 절충하되 은미한 말과 깊은 뜻은 옛날에 들은 것을 기술함이 많고

이전(二典: 堯典, 舜典)대우모(大禹謨)는 선생이 일찍이 바로잡으시어

손때 묻은 흔적이 아직 새로우니 아! 애석하도다.

 

집전     본선생     소명고

集傳本先生所命故

범인용사설     불부지별

凡引用師設不復識別하고

사대지서     분위육권

四代之書分爲六卷하니

문이시이     치이도동

文以時異治以道同이라

집전은 본래 선생의 명인 까닭에

인용한 모든 선생님의 설은 다시 별도로 표지하여 구별하지 아니하고

사대(四代: 虞夏殷周)의 글을 여섯 권으로 나누니

글은 시대에 따라 다르나 천하를 다스리는 도는 모두 같으니라.

 

성인지심     현어서     유화공지묘     저어물

聖人之心見於書猶化工之妙著於物하니

비정심        불능식야

非精深이면 不能識也

성인의 마음이 서경에 드러남은

화공(化工: 하늘의 조화)의 묘한 재주가 물건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깊이 궁구하지 않으면 능히 알 수 없느니라.

 

시전야  어요순우탕문무주공지심

是傳也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

수미필능조기미

雖未必能造其微

어요순우탕문무주공지서      인시훈고

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因是訓詁하면

역가득기지의지대략의

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리라

가정  기사  3월  기망     무이 채침     서

嘉定 己巳 三月 旣望武夷 蔡沈하노라

이 집전은 요순우탕문무주공의 마음에 대해서는

비록 반드시 그 은미한 경지에 나아가지는 못하였지만

요순우탕문무주공의 글에 있어서는 이에 말미암아 訓詁하면 또한 그 뜻의 대략을 얻을 수 있으리라.

가정 기사 3월 기망(16)에 무이 채침이 서문을 쓰노라.

 

*채침(蔡沈, 1176~1230). 남송의 성리학자. 자는 仲默. 주자의 친구이자 수제자인 채원정의 아들. 주자에게 수업하고 주자의 위촉을 받아 주자가 미처 완성치 못한 서경에 주석을 수십 년의 연구 끝에 달아 書集傳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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