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 카톨릭 선교 역사]

1328년 오데리코(Oderice Da Pordenone, 1265~1331, 프란체스코파 신부로 1325~1328년까지 북경에 체재 귀국 도중 티베트에 포교차 들렀다고 전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음) 신부는 포교를 목적으로 티베트에 들어간 최초의 카톨릭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예수 이상으로 많은 것을 행하고 있는 라마승들을 보고 포교는 엄두도 못낸 채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교황청에서는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카톨릭에 적지 않은 타격을 미칠 것이라 우려하여 이 보고서를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각국에 선교사를 파견하면서도 티베트 포교는 아예 단념했다는 것이다.예수 이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참고]오데리코(Oderice Da Pordenone) 신부

오데리코는 이탈리아의 프리울리(Frili)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Udine)에서 작은 형제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사명을 느낀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1321년경에 그는 서 인도에 상륙했고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부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1331년에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곳저곳을 다녔기 때문이다-카톨릭 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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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테마 - 실증환국사 1,2 - 실증배달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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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망캉현 꺼라촌, 6,000m가 넘는 7개의 설산이 감싸고 있는 고원목장 꺼라촌은 1950년 인민해방군이 마을을 지나간 이후, 외부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말을 타고 나흘을 가야 하는 오지, 꺼라 사람들은 설산아래 초원에서 야크와 양의 젖으로 만든 수유(일종의 치즈)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이다.

 

 

 

 

 

꺼라 고원목장에서는 매일 아침 젖을 짤 때 야크와 양에게 붉은 소금을 먹인다. 야크 40마리와 양 40마리를 기르는 츠리완디(46)는 붉은 소금이 질병을 막고 번식을 촉진시킨다고 믿고 있다. 붉은 소금은 어디에서 왔을까?

 

 

 

 

꺼라 고원목장에서는 6월에서 10월까지 1년에 2차례 마을의 19호가 모두 함께 200여 마리의 야크와 말을 이끌고 나흘 걸려 2개의 설산을 넘어 붉은 소금을 구하러 간다. 츠리완디(46)와 30여명의 꺼라 사람들의 야크를 끌고 길을 나섰다.

 

 

 

 

 

붉은 소금이 나오는 곳은 난창강(메콩강의 상류)변 옌징(티벳어 차카롱). 강기슭의 자다촌에는 수십 개의 소금우물이 있다. 이 우물에서 나오는 소금물로 붉은 소금이 생산된다.어떻게 바다가 아닌 내륙 깊숙한 곳에서 소금이 만들어질까? 지각 대변동으로 과거의 바다가 융기하여 이곳의 우물에서 바닷물이 샘솟는 것이다.
 

 

 

자다촌에서만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옌징에서는 자다촌 외에도 하옌징, 상옌징 등 소금 밭을 가진 2개의 마을이 더 있다. 이곳에서는 하얀 소금이 생산된다. 3개 촌의 소금 밭은 수천여 개. 깍아지른 협곡에 만들어진 소금 밭은 옌징 사람들의 강인한 생존의지를 느끼게 한다.

 

 

 

 

자시용종(23,여)은 12살 때부터 소금을 만들었다. 4월부터 6월까지 가장 좋은 소금인 도화염을 만들 때, 소금 밭에는 10살도 안 된 여자애부터 70살이 넘는 할머니까지 소금을 만드는 일을 한다. 30-40kg의 우물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금 밭에 져 나르고, 무거운 소금을 지고 나르는 일은 오로지 여자들만의 몫이다. 고대의 방식 그대로 옌징의 소금은 만들어지고 있다. 옌징의 소금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여인들의 땀으로 만들어진다.

 

 

 

 

옌징의 소금밭은 얼마나 되었을까? 티벳족과 나시족이 옌징의 소금을 차지하기 위해 1,000년 전에 전쟁을 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1,000년 이상된 것으로 추측된다.
옌징 사람들은 소금밭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을까? 6,740m의 신산 카와거보가 딸을 6,360m의 따메옹에게 시집 보낼 때 옌징 지역의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치료하라고 따뜻한 소금물이 나오는 우물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옌징의 소금은 아직도 윈난성 북부에서부터 티벳 동부의 강파지역, 그리고 라싸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주요한 교역품이다. 옌징의 소금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마방들이 1년 내내 옌징으로 찾아온다. 또한 옌징의 남자들도 부족한 곡식을 얻기 위해 옌징의 소금을 싣고 마방을 끌고 떠난다. 옌징의 소금은 차마고도의 살아 있는 마지막 교역품이다.

 

 

 

 

1년 중 소금이 생산되지 않는 때는 장마철이다. 7월로 접어들면 소금우물로 강물이 범람한다. 우기가 지나고 강물의 수위가 줄어드는 10월이 되면 옌징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무너진 소금우물과 소금 밭을 손질하고 다시 소금을 만든다.

 

 

 
매년 정월 보름(장력)이 되면 옌징 사람들은 마을 뒤의 라꽁스(사원)을 찾는다. 소금생산이 잘되길 바라며 소금을 바치기 위해서이다. 또 4월 도화염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라마승을 집으로 부르고, 7월 도화염 생산이 끝날 무렵 마을 뒷산에 올라 룽다(불경이 새겨진 오색천)를 걸고 신산(神山)에 기원을 한다 소금이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옌징에는 다시 마방들이 몰려든다. 이들을 옌징에 불러들인 것은 소금이지만 이제 옌징에서도 식용으로는 예전만큼 이 곳의 소금이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옌징의 소금이 계속 생산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난창강에 발전소가 곧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윈난성과 티벳자치구는 옌징의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고려해서 염전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옌징 사람들이 소금 밭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옌징의 소금 밭은 난창강의 물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KBS특별기획-차마고도-제4편 천년의 염정

https://www.youtube.com/watch?v=J7bV3aQeP-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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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 테마 - 실증환국사 1,2 - 실증배달국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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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쓰촨에서 티벳 라싸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1,000년전 티벳불교가 라싸에서 윈난, 쓰촨 장족 지역으로 전래되던 길이기도 하다. 티벳지역을 지배하던 토번 왕조 38대왕 치송데짼 시절 인도에서 온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은 티벳 전역에 토착 종교인 본교를 몰아내고 차마고도를 따라서 불교를 전파한다. 그리고 지금 순례자들은 바로 그 길 차마고도, 즉 연화생의 길을 따라서 티벳 라싸로 향한다.

 

쓰촨성 더거현 까링딩의 목동 라빠(32)는 루루(60), 부사(64),처자(28), 거송다와(24)와 함께 순례를 떠난다. 총 7개월 정도 소요되는 2,100여 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이들은 왜 스스로 고행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들이 순례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최종 도착지 라싸까지 7개월여간 동행한다.
 
라빠 일행의 순례는 까링딩 마을의 사찰, 까링스(寺)에서 시작한다. 까링스는 더거현의 1,000년 고찰. 문화혁명 때 절 전체가 파괴된 이후 마을 사람들이 작은 건물만을 새로 지어 고색이 사라진 초라한 상태이다. 하지만 까링스는 쓰촨성 장족들에게는 1,000년전 티베트 불교 전래를 상징하는 고찰이다. 티베트 불교의 시조인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이 까링딩 동굴에서 수행한 이후 이곳에 까링스라는 사찰이 세워진 것. 지금도 까링스 활불(活佛,Living Buddha)은 연화생이 수행한 동굴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행함으로서 그 전통을 따르고 있다.

 

 

 

 
순례자들은 출발하기 전 활불 앞에서 서언을 한다. 순례 도중 살생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선(善)만을 행할 것이라고 서언한다. 오체투지,즉 온 몸을 땅 바닥에 던지며 매일 6km 정도를 이동한다. 순례자들 중에 ‘부사’는 64세를 넘긴 고령의 나이. ‘루루’와 함께 차자처라는 수레를 끌고 가는 그는 순례 도중에 자신의 목숨마저 던질 각오다. 순례 도중에 죽는 것이 장족들에게는 가장 상서로운(축복받은) 죽음이다. ‘처자’는 순례를 다녀오면 라마 승려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순례자는 자신을 위해 고행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때 진정한 선(善)을 행하는 것이며 윤회의 업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순례자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그들의 보시를 받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서는 오로지 자연에 의탁해 순례를 한다. 장족들은 순례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순례는 고통에 맞서는 인내의 과정이다. 2006년 12월 말, 티벳고원의 온도가 영하 2-30도 밑으로 내려갈 때 방다의 랑나산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가장 큰 고통과 마주한다. 설원의 산을 오르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평원을 지날 때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신에게 의탁한다. 땅에 부딪혀 생긴 이마의 멍이 굳은 살로 변할 때쯤 그들의 오체투지도 속도를 더한다. 이런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이들은 왜 순례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무엇을 향하여 가는가?
 
모든 순례자들이 향하는 곳이자 티벳인들이 일평생 한번이라도 순례하길 소망하는 곳이 티벳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이다.
그들은 조캉사원에 모셔진 불상을 만나기 위해 먼 순례의 길을 떠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조캉사원의 불상. 바로 이 불상으로부터 티벳 불교가 시작되었다. 630년경 티벳을 지배하던 토번왕조(티벳의 고대왕국) 최고의 영웅인 33대왕 송첸캄포의 위세는 당나라에까지 미치고 당은 그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시 토번은 신장, 청해, 감숙성과 쓰촨, 윈난성의 서쪽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대제국이었다. 당나라 황제는 이러한 송첸캄포와의 화친을 위해 자신의 막내딸인 문성공주를 그에게 시집 보내는데 그 때 문성공주가 가져온 것이 바로 진신사리 불상이다. 중국학자들은 이 불상의 전래가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송첸캄포의 손자인 38대왕 치송데짼은 인도에서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을 불러 오고 연화생은 토착종교인 본교를 배척하고 쌈애사란 절을 지어 불교를 전파시킨다. 지금도 쌈애사에는 치송데짼의 흥불맹서비가 남아 있고 연화생을 위한 축제도 이어지고 있다.

 

 
라빠 일행은 최종 목적지인 티벳 라싸 조캉사원에 도착해 10만배를 올린다. 절을 하는데만 2개월이 걸린다. 그들은 순례를 통해 티벳 불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티벳 불교의 전통은 순례자들로 인해 지금도 차마고도의 길 위에 살아 있다.

 

 

KBS 특별기획 - 차마고도 - 제2편 순례의 길  (동영상시청)

https://youtu.be/9BhwNzY-W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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