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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4

[흥화진 전투]고려거란전쟁 고려를 침공한 거란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성에서 이루어지는 전투가 흥화진 전투이다.고려군과 거란군이 강동 6주의 하나이자 요충지인 흥화진(興化鎭, 현 평안북도 의주군)의 지배권을 놓고 여러 차례 맞붙은 전투 중 하나로 고려거란전쟁 시기 중 제2차 고려거란전쟁 때 일어났다. 흥화진 성은 현재 평안북도 의주군 위원면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성의 경우 삼수채가 휘감고 있어 규모는 작으나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이다. 1009년에 일어난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삼아 거란의 제6대 성종이 직접 400,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다. 침공한 시기가 겨울이라 압록강이 얼어 거란군의 기병들이 빙판 위를 지나 고려의 최전방 요새인 흥화진의 고려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1010년(현종 원년).. 2024. 2. 1.
[고려사]8대 황제 현종 고려의 제8대 대왕이자 해동천자.[1009년 3월 2일 즉위~1031년 6월 17일 (향년 38세)] (22년 3개월 14일) 묘호는 현종(顯宗), 시호는 원문대왕(元文大王), 휘는 순(詢), 자는 안세(安世), 승려 시절의 법명은 선재(禪齋), 즉위 전 봉호는 대량원군(大良院君)이었다. 태조 왕건의 손자이자 안종 왕욱의 아들이다. 한국사에서 유일한 사생아 출신 군주로,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불우한 어린 시절로 유명하다. 태어나자마자 암울한 전란의 시대를 살았고, 몇 년 뒤 고아가 되었으며, 생명의 위협을 받던 중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시해당하며 갑작스럽게 즉위했다. 이후 요나라의 두 차례에 걸친 대침공을 맞아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속에서 남쪽으로 몽진을 떠나는 등 큰 시련을 겪었으나, 결국 요나라.. 2024. 1. 31.
[고려사]인물 강조(康兆) 고려조기 인물로 고려거란전쟁 드라마에서 나오는 인물 강조( 康兆)는 누구인가? 고려 초기의 문관이자 권신. 고려 왕실 반정의 시초 격인 강조의 정변을 주도한 인물이다. 목종으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으나, 되려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했다. 거란이 고려를 침범했을 때는 직접 출정했고, 초반에는 선전하다가 통주 전투에서 패배했다. 요나라 성종의 회유를 받았지만 완강히 거부해 전장 한복판에서 최후를 맞았다. 강조(964~1010) : 강조의 본관과 세계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강씨가 토성으로 나와 있는 곳이 주로 황해도 서해안 일대의 군현들이다. 따라서 강조의 본관은 신천(信川)·영강(永康)일 가능성이 높다.이수건, 『한국중세사회사연구』, 일조각, 1984. 위에선.. 2024. 1. 30.
[고려사]고려 7대 목종(997~1009년) 고려 7대 목종은 재위 997∼1009. 이름은 왕송(王誦). 자는 효신(孝伸). 경종의 큰아들로서, 어머니는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종이 죽었을 때 겨우 2세여서 당숙인 성종이 뒤를 잇고, 성종이 목종을 궁중에서 양육하여 990년(성종 9) 개령군(開寧君)으로 책봉하고, 후사로 지명된 뒤 7년 만에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즉위 첫해 12월 문무양반 및 군인전시과를 개정하고, 1004년 과거시행법을 정하는 등 자못 왕정체제의 확립을 꾀함이 있었으나, 시종 모후(母后) 천추태후(千秋太后)와 김치양(金致陽) 등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009년 정월 모후와 김치양이 그들의 소생을 왕위에 올리고자 태조의 손(孫)으로서 유일하게 왕위계승 자격을 가진 대량원군(大..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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