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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Nisargadatta Maharaj) 는 누구이신가?
태어나신 날짜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스승께서는 "난 태어나지 않았어."라고 가볍게 응답하시곤 했다.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Nisargadatta Maharaj) 선생님의 전기(傳記)를 쓰려 했지만 별로 성과가 없는 작업이었다. 선생님의 정확한 생일도 알 수 없었고, 어린시절에 관한 믿을 만한 정보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친척이나 친구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선생님이 태어나신 것은 1897년 3월 보름이라고 한다.
이날은 하누만 자얀티(Hanuman Jayanti)의 축제일인데, 힌두교인들이 하누만에게 경배를 드리는 날이다. 하누만은 <라마야나>에 나오는 원숭이신의 이름으로 마루티(Maruti)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부모님은 그의 탄생을 이 상서로운 날과 연관시켜 이름을 마루티라고 지었다. 그의 소년기와 청소년기에 관해서는 연결되지 않은 단편적 정보만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 라마야나Ramayana
이 시는 흔히 '라마의 사랑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길이는 〈마하바라타〉보다 짧다. 산스크리트로 된 이 서사시는 시인 발미키가 BC 300년 이후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약 2만 4,000개의 2행 연구가 7권으로 나누어져 있다.
인도인들은 이 시를 암송하는 것을 큰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는 각 지방어로 번역되었는데 캄판의 타밀어판, 크리티바스의 벵골어판, 툴시다스의 힌디어판 〈람차리트마나스〉 등이 그 예이다. 인도 북부지역 도처에서는 이 시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람릴라'라는 야외극으로 해마다 한 번씩 공연된다. 인도 남부에서는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오늘날에도 말라바르의 카타칼리 무용극의 줄거리를 이룬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형태로 동남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
선생님의 부친이신 슈브람판트(Shivra! mpant)는 아주 가난해서 봄베이의 어느 집에서 겨우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칸달가온은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주의 랏나그리(Ratnagri) 지구 뒷산에 있는 작은 마을을 가리키는데 마루티는 여기서 거의 교육을 받지 않고 자랐다.
어린시절에는 아버지를 도와서 힘닿는 대로 가축을 돌보고 소몰이를 하거나 들에서 일을 하고 심부름을 하는 등 그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다.그러나 탐구심이 아주 강해서 온갖 의문 속에서 지냈다. 아버지에게는 비슈누 하리바우 고르(Vishnu Haribhau Gore)라는 이름의 브라만 친구가 있었는데, 이 분은 아주 종교심이 강하고 또 시골 출신으로서는 학식도 풍부한 편이었다. 고르씨는 종종 종교적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년 마루티는 이 말들을 주의깊게 듣고,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주제들을 생각해 보곤 했다. 고르씨는 그에게 친절하면서도 진지하고 현명한 이상형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마루티가 열여덟(18세)이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은 가족은 엄마와 4남 2녀의 자제들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해서 작은 논밭에서 나오던 적은 수입은 그나마 더 줄고, 그것으로는 식구들이 먹고 살만한 양식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마루티의 형은 일자리를 찾아 봄베이(Bombay)로 떠났고, 얼마 후 마루티도 그 뒤를 따라서 봄베이의 어느 사무실의 사환으로 들어가 적은 보수를 받으며 몇 달간 일을 했다. 그러나 수입도 형편없고 일도 맞지 않아 그 곳을 그만두고 잡화상을 시작했다. 애들 옷이나 시골 사람들이나 피는 담배를 손수 손으로 만들어 팔았는데 다행히도 시간이 가면서 이 장사가 제법 수지가 맞아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누리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 결혼도 해서 1남 3녀를 두었다.
어린시절과 청소년기,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까지의 생활은 흔히들 그러는 것과 같이 평범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생활이었다. 그의 생활은 곧 이어 있을 수행의 세계화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즈음 친구 중에 야슈완트라오 바카르(Yashwantrao Baagkar)라고 하는 싣다라메슈와르 마하라지(Siddharameshwar Maharaj)의 제자가 한 사람 있었다.
싣다라메슈와르는 힌두교의 일파인 아홉스승들의 전통(Navnath Sampradaya)의 법맥을 이은 스승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 바카르가 마루티를 자기 스승에게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날 저녁이야말로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스승은 마루티에게 주문(呪文)하나와 간단한 명상을 가르쳤는데 수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비젼을 보게 되었고 이따금씩 삼매에 빠지곤 했다.
뭔가가 그의 내면에서 폭발하여 우주의식과 영생의 체험을 일깨우기 시작하면서 개체적인 마루티는 죽고 니사르 가다타라는 새 이름의 신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라는 틀 속에 살면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바램도 능력도 지니지 못하고 산다. 그들은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며 그들의 모든 노력은 자기만족과 자신의 영광을 성취하는데 주어진다. 그러나 겉으로는 똑같은 세계에 살면서도 동시에 또 하나의 다른 세계, 즉 무한한 지혜로 빛나는 우주의식의 세계에 동시에 살고 있는 선각자, 선지자, 스승들이 있는 법이다.
각성의 체험이 있고 나서 니사르가닷타 마하라지 선생님도 그런 이중적인 삶을 시작했다. 가게 운영은 계속했으나 더 이상 이익에 관심이 없었다. 이후, 그는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순례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히말라야에 가서 영생을 추구하며 여생을 보낼 계획으로 맨발로 히말라야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그러한 영생의 추구가 무의미함을 곧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영생은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육신과의 자기동일시를 이미 넘어선 그의 정신은 생동하는 생명으로 넘치고 평화로왔으며 은총(성령, 도기)으로 가득 찼다.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그에 비해서는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였다.그는 마침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스승께서는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언어구사는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고 정확히 핵심을 찔러 수많은 영혼을 깨우쳤다. 그는 부자 중의 부자로서 그에게서 넘치는 무궁무진한 지혜의 보고에 비하면 아무리 훌륭한 금은보화들도 단지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스승께서는 자애로우시고 부드러우시며, 때론 유우머로 번득이며 사람들의 영혼을 열어 주신다. 한 올의 두려움도 없고 진실 그 자체로 사신다.
그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은 영감으로 가득 차게 되고 스승의 격려를 받으며 진리의 길로 안내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분에 대해서 전기적인 글을 쓰려는 시도 자체가 무익하고 헛된 일이리라.
왜냐하면 스승께서는 이미 과거와 미래에 사는 분이 아니라 영원하고도 변치않는 살아있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된 생명의 주인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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