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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KBS 특별기획 - 차마고도 - 제3편 생명의 차

by 청풍명월7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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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雲南省)의 푸얼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로 지난 2001년 기네스 북에 오른 차나무가 있다. 공식명칭은 천가채 1호 고차왕수. 이 고차수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약 2700세. 높이 약 26미터, 폭 역시 20미터가 넘는 커다란 교목이다. 윈난성 남부지역에서는 이렇게 크고 오래된 고차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역 고차수들은 세상의 모든 차나무들의 어머니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윈난성은 인종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차를 재배하는 소수 민족은 제각기 다른 차신을 모시고 있다. 란창현 징마이촌의 브랑족은 해마다 4월, 차 수확을 하기 전에 산강제를 지내는데 이것이 바로 차나무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차신은 처음 브랑족에게 금은보화를 내리면 금방 써버릴 것이요, 소를 내리면 먹어버 릴 것이니 금과 소 대신 이들에게 차나무를 내렸다고 한다. 이들은 신에게 햇차를 바 치며 풍성한 차수확을 기원한다.

 

 

 

 

중국 윈난, 쓰촨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문명교역로,차마고도. 그 시작은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왕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역사에서 비롯한다.

쓰촨성 야안의 오리진 선사가 7그루의 차나무를 심어 중원의 황제에게 차를 바치기 시작한 이후 당나라 때부터 황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차는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는다.
이후 차는 비단과 함께 중국의 가장 귀한 수출품이 되었다.

군사력에 있어 당나라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던 토번왕국은 수시로 당의 변경을 침략하여 당나라 왕실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하였다. 이를 견디다 못한 당태종은 서기 641년 문성공주를 토번왕 송첸캄포에게 출가시키는데 이때 문성공주와 함께 불교, 그리고 차가 토번왕국으로 전파되었다.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불모의 초원에서 차는 유목민들이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피요 생명”이며 하루도 차를 안마시면 살 수 없다고 한다.
당나라 이후 중원의 제국들은 북방 유목민족과 싸우기 위해 티베트의 강인한 말이 반 드시 필요했고 토번왕국은 생존을 위해 차를 필요로 했다. 차와 말의 교역은 급속히 번성했고 수천년을 이어 오면서 문명과 문명을 잇는 길이 만들어 졌다.

중국 역사의 흐름에 따라 숱한 왕조가 교체되었다. 당, 송, 원, 명 청...그러나 이런 왕조교체에도 불구하고 모든 왕조가 일관되게 사용하던 정책이 있다. 이차역마(易茶易 馬) 즉, 차로써 말을 바꾸라는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정책은 약 천 여년간 이어졌을까? 당 나라 시대에는 본격적인 차와 말의 교역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가는 승려들에 의해 일정량의 차가 티베트로 들어왔고 그것은 일부 승려와 지배계층에만 제공되었다. 이것 이 송나라를 거쳐 원,명,청으로 가면서 본격적인 국가무역이 된다. 여기에는 두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하나는 말이요 하나는 차를 통해 티베트를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서장인은 버터나 치즈(乳酪)을 좋아하며, 차를 얻지 못하면 곧 병이 생겨 곤란하다. 고로 당.송(唐宋) 이래 이차역마(易茶易馬)의 법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明史.食貨志)

송나라까지 대등했던 차마무역은 토번왕국의 멸망 이후 급격하게 변화한다. 지역 토호 와 사원의 라마들은 차를 얻기 위해 명나라에 말을 조공으로 바치고 군신의 관계를 서약한다.
당나라 때 문성공주에 의해 전래된 차는 이제 티베트인의 운명과 티베트의 역사를 좌 지우지 하는 물품이 되고 말았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차마고도의 길들은 일반적으로 8개의 노선으로 나뉘어진다. 그 중 마방들이 주로 이용하던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길, 차마사라는 관청을 두어 국 가가 주도하던 쓰촨성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길 등이 대표적이다.

◆ 윈난성(시솽반나 / 쓰마오 / 대리 / 리장 / 샹그릴라 / 더친) - 티베트 - 네팔 - 인도
◆ 쓰촨성(야안 / 대도하 / 캉딩 / 더거) - 티베트 - 네팔 - 인도

거대한 횡단산맥과 히말라야산맥으로 가로막힌 차마고도는 그 어느 길도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험한 길을 긴 휘파람 소리 하나로 견디며 누빈 차마고도의 주역 들, 바로 마방의 대장인 마궈토와 말몰이꾼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마궈토 선소무. 그는 마방의 회계책임자로 1940년대 윈난성 리장에서 인도까지 차마고 도를 다녔다. 차마고도의 전 구간을 누비고 다녔던 마방들 중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유 일한 마궈토이다.

“나는 리장에서 인도까지 직접 차마고도의 전 노선을 다녀봤다.
리장에서 출발하여 108일을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며 라싸까지 갔다.”



 

 

그가 들려준 마방의 노래,

“부인) 30일 저녁에 결혼하고 초하룻날 길을 떠난다구요?
당신 정말 양심도 없군요.

떠나나려거든 나랑 결혼이나 하지 말지,
나랑 결혼했으면 떠나지나 말지

마방) 당신과 결혼하느라 빚을 많이 졌네
가지 않으면 빚을 갚을 수 없어

부인) 당신이 빚을 졌어도 괜찮아요.
내가 베를 짜서 빚갚는데 도울께요
마방) 당신이 천을 짜도 충분치 않아,
베 짜는 것으로는 담배도 사 피울 수 없어.

부인) 당신이 빚을 졌어도 괜찮아요.
노새를 팔아서 갚으면 되지요.
집 앞에 있는 밭을 팔아서 갚으면 되지요
돌도 기왓장도 말할 수 있는데 왜 당신은 대답이 없나요?”

소박한 노랫말에는 당시 말몰이꾼과 마궈토, 그리고 그들 가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떠나지 말라는 새신부 앞에서 끝내 마방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 앞에 놓인 길, 그 길이 바로 차마고도였기 때문이다.

 

KBS 특별기획 - 차마고도 - 제3편 생명의 차 - 동영상 시청

 

https://www.youtube.com/watch?v=fFVcxYwiH5Q&t=6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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