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
1월 29일 서지현(44ㆍ사법연수원 33기)검사의 글 ‘나는 소망합니다’로부터 시작된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의 불씨는 문화계에 옮겨 붙어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됐다. 연극과 방송 미술 종교 영화 대중음악 등 문화계 전반에 걸쳐 하루가 멀다 하고 폭로가 이어지고 있고, 가해자의 사과도 나오고 있다. 문화계에서는 1월말과 지난달 말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고은 이윤택 오태석 조재현 오달수 배병우 박재동씨 등 긍정적 수사로만 표현되던 문화계 거물들이 고발의 대상이 되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현장의 풍경이 급변하고 있으나 관계자들은 운동을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오늘은 또 누가…” 문화계 촉각
미투 운동으로 문화계 풍속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단 술자리는 사라진 지 한참 됐고, 방송 영화계에서 저녁자리가 2차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줄고 있다. 성폭력이 곧잘 발생하는 장소인 노래방은 출입금지가 됐다. 농담으로 하던 외모 평가를 삼가자는 등 서로 언행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문화계 전반에 입 조심, 몸 단속 주의보가 내려졌지만 또 어떤 사례가 등장할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혹시 성폭력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앞으로 40~50대 남자배우 캐스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곤혹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과거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었을지 제발 저린 경우도 많다. 방송가 몇몇 연출가들은 “난 그런 말이나 행동(성추행) 한 적 없지?”라며 여자 작가 등 스태프들에게 확인까지 하고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남자 영화인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자신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옛 일을 성추행이라고 언급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아 고민하는 영화인들이 있다”고 밝혔다.
“연극계 다시 세우자” 분위기
미투 불길이 가장 많이 번진 곳은 연극계다. 지난달 14일 이윤택 연극연출가의 상습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글이 도화선이 됐다. 연극계 큰 어른으로 여겨지던 오태석 연극연출가,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을 역임하고 차기 국립극장장 유력 후보였던 김석만 연출가, ‘명성황후’로 한국 뮤지컬의 신세계를 열었다는 윤호진 에이콤 대표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 연극에서 다진 연기력으로 방송과 영화로 대중에게 사랑 받은 배우 조재현ㆍ조민기ㆍ최일화ㆍ오달수도 폭로 대상이 됐다.
거장 연출가는 물론 유명 배우들과 대학교수들까지 줄줄이 성추행 가해자가 되면서 연극계는 ‘쑥대밭’이 됐다. 하지만 연극계는 위기로 인식하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산고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낡은 위계 의식이 만들어낸 착취 문화까지 없애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은 지난달 26일 서울시극단의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제작발표회에서 “한국 연극이 이번 일을 계기로 리셋(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극계에서는 자체적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성폭력 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성폭력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립극단은 법률자문을 통해 계약서 내 성폭력 관련 조항을 체계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극장인 남산예술센터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한명구씨가 출연하기로 했던 공연을 아예 취소했다. 출판계와 영화계에서도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등 피해자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영화 출연계약서에 성폭력 조항을 추가하는 등 배우의 품위 유지와 관련한 의무 사항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전히 피해자들이 불이익 당하는 문화
가해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있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됐다고 하나 누구나 피해 사실을 마음 놓고 알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건 아니다. 가장 폭로가 많았던 연극계도 예외는 아니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참여자이기도 한 임인자 연극기획자는 “아직도 다른 동료들에게 해가 될까 하는 우려와 글을 내리라는 가해자의 압박 등으로 익명이 아니면 고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로 폭로를 종용할 경우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 문단에서는 이미 2016년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건 온라인 폭로 운동이 있었다. 한 여성 중견 문인은 “당시 나는 그렇게 나서지 않았는데도 주변에서 싸늘한 시선을 느껴야 했다. 대놓고 저지르는 성폭력은 줄어들지 몰라도 폭로자는 알게 모르게 배척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성폭력을 ‘관습’으로 이해하고 묵인하는 문제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관계자들은 강조한다. 임인자 기획자는 “연극계가 유독 문제 있는 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투 운동 한 달은 변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각성을 요구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추악한 그들]- 그림 클릭시 확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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