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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 단군조선사(역사)

[역사]거란(요)의 멸망과 그 이후

by 청풍명월7 202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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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이 고려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 그 이후의 역사가
궁금해서 정리하였다.

요의 멸망과 북요·서요


성종 이후 흥종(興宗, 재위 1031~1055)과 도종(道宗, 재위 1055~1101) 시기를 거치며 요의 국세는 점차 쇠락해 갔다.

흥종은 송에게 더 많은 세폐를 얻어내기 위해 서하(西夏)와 전쟁을 자주 벌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또한 황실 내부의 권력 다툼도 치열해져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렇듯 요가 정치적 내분에 휩싸여 있는 사이에 여진(女眞)의 세력이 커져서 1115년 완안부[完顔部]의 아골타(阿骨打, 1068~1123)가 여진 부족들을 통합하여 금(金, 1115∼1234)을 건국하였다.

요의 천조제(天祚帝, 재위 1101~1125)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를 진압하려 했지만, 금에게 패배하였고, 요 내부에서도 반란이 일어나 퇴각하였다.

1120년 금은 연운16주를 되찾으려는 송과 힘을 합하여 요를 협공했으며, 1121년 무렵에 이미 요는 영토의 절반을 빼앗겼다.

요에서는 황위(皇位) 계승을 둘러싼 반란이 다시 일어나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1022년 금은 요의 중경(中京)을 공격하였고, 천조제는 네이멍구 지역의 협산(夾山)으로 피신해 재기를 꾀했다.

그러나 1122년 연경(燕京, 지금의 중국 베이징시)에서 야율대석(耶律大石), 이처온(李處溫) 등이 야율순(耶律淳)을 따로 황제로 옹립하여 요의 정치적 혼란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를 역사에서는 ‘북요(北遼)’라고 칭한다.

북요는 야율순이 병으로 죽은 뒤 덕비(德妃)가 섭정이 되어 통치했지만, 1123년 금이 연경을 점령하자 덕비와 야율대석이 천조제에게 투항함으로써 멸망하였다.

1124년에 이르러 요는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했으며, 1125년 천조제가 금 군대에 사로잡혀 금의 상경(上京, 지금의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으로 압송되면서 멸망하였다. 요의 멸망 이후 황족인 야율대석이 남은 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해 1132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서요(西遼)를 건국하였다. 서요는 3대에 걸쳐 존속했지만, 1218년 몽골제국에 복속되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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