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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양건당 애마지총에 대한 충성스러운 애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도 충성이 어려운데 말로써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함께죽으니 그 의리로써 4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을 찾게 한다.
▶말의 주인장
성명 : 황대중黃大中 장군
출생 : 1551년 한성부 (現 서울특별시)
사망 : 1597년 9월 26일 (향년 46세) 전라도 남원부 남원성(現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
자 : 정숙(正叔)
호 : 양건당(兩蹇堂)
본관 : 장수 황씨
조선의 의병장. 임진왜란때 맹활약한 장수인 황진의 6촌 동생이다.
한성부에서 태어났으나 영암군수로 부임하던 할아버지를 따라 강진으로 이주해 살았다. 효성이 지극한 걸로 알려져 어머니가 병환 중일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 약재로 사용하여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효건이라 불렀다. 부친의 장례식때 효심이 알려져 조문객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조는 정릉 참봉이라는 벼슬을 내리려 했으나 사양했다.
다리를 절었음에도 활쏘기와 무예가 출중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는 별초군으로 지원하였고 김억추, 선거이와 함께 격문을 띄워 전국에서 무예가 뛰어난 장정 80명을 모집하여 선조가 의주로 피란갈 때 호위 무사로 활약했다.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부대와 함께 남하하다가 1593년(선조 26년)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6촌 형인 황진과 분전했으나 황진은 총탄에 전사하고 진주성이 함락되자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탈출해 이순신의 휘하 장수로 활약했다. 이때 황대중은 해전 중 총탄을 맞아 나머지 한쪽 다리 마저 절게 되었다. 이순신은 “과거의 다리는 ‘효건’, 지금의 다리는 ‘충건’, 두 다리를 함께 저니 ‘양건’이로다.” 양건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1597년(선조 30년) 남원성 전투 당시 전투 도중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함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총탄을 맞아 숨이 멎기 전, 그는 달려온 김완에게 “내 칼을 가지고 가서 적을 베어 주게. 그리고 내 시체와 유품을 내 말에 실어 주게. 그리하면 이 말이 나의 고향으로 갈걸세.”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황대중의 시신을 말 등 위에 얹어 주자, 애마는 주인을 태우고 300리 길을 밤낮으로 달려 가족들이 있는 강진까지 달렸다.
황대중의 시신을 강진까지 옮긴 말은 장례식 중 식읍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는데 유족들은 황대중의 묘옆에 말무덤을 만들어 양건당 애마지총’이라는 비석을 세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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