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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검은 전사 네오콘(Neocon)의 정체
과거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내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관료는 경제 관료들이다. 트럼프 재무부 관련 인사들은 대채로 록펠러 카르텔인 골드만삭스 출신 3명, 로스차일드 카르텔 1명 이렇게 구성되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 유대재벌의 권력 지형에 따라서 재무부 인사를 한 것으로 보여 진다. 트럼프 행정부 내각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미국 내 권력 2순위인《네오콘》세력이다.
군산복합체의 지원을 받는 네오콘 방송사가
①CNN T.V를 통해서
②뉴욕타임즈(NYT),
③워싱턴포스트(WP),
④월 스트릿드(WSJ) 지 등
반 트럼프 그림자 정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러시아의 스캔들 여론 조작은 민주당계 네오콘과 군산복합체가 뒤에 있었다. 바로 트럼프에 반기를 든 검은 그림자정부의 군산복합체 쪽과 네오콘 세력이다. 트럼프 대통령 내각의 특히 국무장관과 국방장관 임명은 네오콘 인사를 임명하는 것이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를 무시한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이다. 헨리 키신저는 트럼프 행정부의 인사문제는 괜찮다고 말을 한다. 미국 내 텍사스 유대인과 애틀랜타 유대인, 그리고 이스라엘 로스차일드 계에서 뭐라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네오콘과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네오콘 쪽의 국방관련 예산을 적어도 1천억~2000억 달러쯤 되어 있다. 즉, 텍사스 군산복합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트럼프는 앞으로 어떻게 예산을 배분해 줄지도 궁금하다.』
▶미 네오콘(Neocon)대부「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미 전통적인 보수주의 본류는《네오콘(Neocon)》성향이 아니였다. 미국의 지나친 전쟁과 침략적 개입주의가 미국을 위기에 빠뜨릴 위험이 있으며 종국적 멸망을 차초 한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네오콘은 미국 좌파 지식인의 사상전향의 산물이다. 그들은 본래 민주당 좌파였다.1960년대 말 뉴 레프트(신좌파)가 등장하면서 좌파 진영에서 이탈한 트로츠키주의(무정부주의) 성향의 네오콘이 등장하였다.
뉴 레프트의 고립주의가 대소(對蘇) 타협 노선으로 흐를 것을 우려해 대소 강경론자인 헨리 잭슨 상원의원 휘하에 집결하였다. 잭슨이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 경쟁에서 탈락하자 공화당으로 옮겨, 1980년 레이건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특히 외교·군사 분야에서 실무를 맡아 능력을 발휘하자 《네오콘》은 「악의 제국」쏘련을 붕괴시킨 것이 자신들의 공로라고 자랑한다.
네오콘의 사상적 모태(母胎)를 찾아 올라가면 「네오 스트라우스」라는 괴인 인물과 만나게 된다. 네오 스트라우스는 네오콘의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네오 스트라우스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생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①「플라톤」
②「아리스토텔레스」등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과
③「니콜로 마키아벨리」
④「토머스 홉스」등
근세 정치철학을 강의하였다.
《네오콘》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을 네오 스트라우시언 즉, (네오 스트라우스 추종자)임을 자처하면서 그와 동등한 지적 소유자인 척 한다. 한마디로 위선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혹자는 네오콘을「리오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3년 세상을 떠난 「네오 스트라우스」가 46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되살아나 초강국 미제국주의국가가 세계의 장래를 위협하고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와 전율을 함께 느끼게 한다.
네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사상은 극단적 엘리트주의다.
「불평등은 인간의 기본 조건이며, 정치는 엘리트가 맡아야 한다. 엘리트는 대중을 통치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할 수 있으며, 좋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선의(善意)의 거짓말은 용납된다.」
는 자기최면의 론리를 내세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 론리가 사담 후세인과 테러 조직 알 카에다의 연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는 네오콘이 결과적으로 후세인을 제거한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 잘된 일이냐, 위선적 태도를 보인 것이냐가 좋은 예이다.
마키아벨리와 홉스를 신봉한 네오 스트라우스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믿었다. 그 때문에 영구젓인 평화보다 영구적인 전쟁이 필요하며 평화가 오랫동안 계속되면 사회는 부패하므로 영구적인 전쟁을 통해 통치를 강화함으로써 사회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외부의 적이 필요하며,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라우스의 지론이였다.
스트라우스의 이 같은 주장은 평화지향의 소극적 외교정책보다 호전적이며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네오콘에 그대로 들어맞는 논리이다. 종교에 대해 스트라우스는「대중에게 종교는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종교는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불가결한 아편」이며, 대중은 아편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스트라우스의 주장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실패한 것은 대중에게 종교적, 도덕적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고 지적한다.
대부분 네오콘이 자신들은 무신론자거나 종교적으로 세속주의자이면서도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남부「바이블 벨트」의 기독교 우파 연합, 그 중에서도 개신교 근본주의 세력과 손잡은 것도 같은 그런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트라우스는 1899년 독일 마르부르크 부근「키르히 하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곡물상이었던 아버지는 정통 유대교도였지만 스트라우스는 무신론자였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한 스트라우스는 1921년 철학자「에른스트 카시러」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마쳤다. 처음 신학으로 출발해 정치철학으로 바꿨었다. 스트라우스는 당시 독일철학의 주류였던 「신 칸트주의」를 거부했고,「막스 베버」의 몰가치적 학문 입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소크라테스」「플라톤」「스피노자」와「·마키아벨리」「홉스」등 고전철학자들의 사상을 올바로 해석하는데 주력했다.
당대 독일 철학자들 가운데서는 「마르틴 하이데거」를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스트라우스의 사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사회의 혼란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아돌프 히틀러」가 등장해 유대인을 집단학살하는 것을 보면서 스트라우스는 인간성에 대한 긍정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계몽주의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또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민주주의는 현실적으로 무효라고 믿게 됐다. 이 같은 믿음은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에 확고히 뿌리내렸으며,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스트라우스는 실존주의가 독일 젊은이들로 하여금 나치의 허무주의에 빠져들게 했다는 이유로「하이데거」에 대한 존경을 거둬들였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직전인 1932년 스트라우스는 독일을 탈출하였다.
친구인 정치학자「칼 슈미트」의 도움으로 미국「록펠러 재단」의「펠로 십」을 얻어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스트라우스는 홉스에 관한 저서들을 집필했는데, 지금도 홉스의 사상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들로 평가받고 있다. 스트라우스는 1938년 미국에 도착해 망명 대학으로 유명했던 뉴욕의「뉴 스쿨 포 소셜」연구원에 몸담았다.
뉴 스쿨에는 유럽 각지에서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유대계 학자 180명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히틀러가 미국에 준 선물이라고 불렀다. 1948년 스트라우스는 시카고 대학 철학교수로 부임한다. 당시 시카고 대학은 (시카코대학은 록펠러가 세운 대학), 록펠러 재단이 제공한 엄청난 후원금을 토대로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중이었다.
당시 시카고 대학 총장은 학생들에게 인문교양교육을 강조한「시카고 계획」으로 유명한「로버트 허친스」였다. 《대학은 머리를 쓰는 곳이지 몸을 쓰는 곳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미식축구팀을 해체하기까지 한 허친스는 거물급 학자들을 끌어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스트라우스는 국제정치학자「한스 모겐소」경제학자「밀튼 프리드먼」과 함께 당시 허친스가 유치한 세 명의 거물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스트라우스는 학생들에게 숭배에 가까운 존경을 받았다. 학생들은 스트라우스라는 탁월한 교사를 통해 서양고전 철학자들의 위대한 학문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인기 교수였던 스트라우스는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을 위해 마이크로 폰을 몸에 부착하고 강의하였다. 학생들은 스트라우스의 강의를 녹음해 강의가 끝난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 들었다. 비단 시카고 대학 학생들뿐 아니라 시카고의 종교인과 사회저명인사들도 강의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시카코는《네오콘》의 본거지가 되였다. 사람들은 스트라우스의 세미나와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당시 스트라우스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 가운데는 특히 유대계 좌파 지식인들이 많았다. 네오콘의 대부「어빙 크리스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수적인「위클리 스탠더드」편집장은「빌 크리스톨」의 아버지다. 언론인 출신「크리스톨」은「트로츠키주의자」였다.
「트로츠키주의자」란「무정부주의자」를 말한다. 크리스톨은 부인「거투드 히멜파브」를 통해 스트라우스를 알게 된다. 히멜파브는 한 국가 두 문화라는 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가 미국사회에 초래한 재앙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보수적 인물이다. 스트라우스를 발견한「히멜파브」는 남편을 스트라우스에게 소개하였다. 크리스톨은 1960년대 말 민주당 좌파와 결별하고 네오콘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그녀는 스트라우스를 그 사상적 모태로 삼았다. 현재 네오콘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폴 월포위츠」전 국방부 부장관과「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은 스트라우스의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다. 폴 월포위츠와 펄의 스승은 스트라우스의 수제자였던「앨런 블룸」과「앨버트 월스테터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한 블룸은 시카고 대학 철학교수로 《미국 정신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다.
좌익 진보파 학자들의 무책임한 선동으로 미국의 고등교육이 얼마나 황폐해졌는가를 날카롭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월 스테터」는 안보정책 이론가로 외교정책에서 현상유지라는 수동적 자세보다 현상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이며 공격적 자세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네오콘의 공격적 안보정책은「월 스테터」로부터 크게 영향 받았다.
◆ 네오콘(Neocon)의 싱크탱크 (PNAC)
레이건의 뒤를 이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네오콘》은 보수적 국제주의자들에게 밀려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다. 부시는 미국의 힘을 국제적 합의에 따라 사용하기를 원하였다. 걸프전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여러 차례결의를 거쳐 결성된 다국적군이 승리를 거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그러나 네오콘은 부시의 이 같은 온건한 외교 노선이 불만이었다.
※ [걸프전 역사]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侵奪)이 계기가 되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 미국은 이라크의 철수 시한 이틀 뒤인 1991년 1월 17일 대공습을 단행하여 이로부터 1개월간 10만여 회에 걸친 공중 폭격을 감행, 이라크의 주요 시설을 거의 파괴하였다. 2월 24일에는 전면 지상 작전을 전개,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축출한 뒤 지상전 개시 백 시간 만인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 [인물] 폴 던데스 월포위츠(영어: Paul Dundes Wolfowitz, 문화어: 폴 울포위쯔, 1943년 12월 22일 ~ )는 전 세계은행의 총재, 미국의 전 인도네시아 대사, 국방부 부장관, 존스 홉킨스 대학교 폴 니츠 고등국제학대학의 전 학장이다. 그는 신보수주의(네오콘)를 주도하고 있다.
당시 국방차관으로 있던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1992년 봄 백악관에《방위계획지침》이라는 야심찬 보고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부시와 백악관 수뇌부는 이 보고서가 너무 과격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폴 월포위츠의 방위계획지침은 미국은 잠재적 경쟁국들이 지역적 또는 국제적으로 보다 큰 역할을 맡고자 하는 의도를 미리 차단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대규모 군사비지출을 통해 세계최강의 군사력 유지해야하고
▶ 적성 국가들의 WMD 보유와 불량국가 또는 테러조직으로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공격을 가하며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행보를 보다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동맹과 국제기구의 지위를 격하(格下)시키자는 것 등을 권고하였다.
아들 부시 행정부의 외교군사 노선은 폴 월포위츠의 방위계획지침 내용에 그대로 따른 것이다.
부시의 재선 실패로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백악관을 장악한 1990년대 이후 네오콘은 방관자로 갈 길을 잃었다. 그러나 언제고 권력의 무대로 복귀할 날을 준비한다. 1997년 워싱턴 DC에 설립한 싱크탱크《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계획(PNAC)》은 그 노력한 결실의 하나이다. (PNAC)의 최종 목표는 전 지구적 미제국의 건설과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건설에 중점을 두었다.
(PNAC) 발기인 명단에는 네오콘은 물론「체니」「도널드 럼스펠드」등 아들 부시 행정부의 실력자들이 망라돼 있다. (PNAC)는 기존 네오콘의 아성인 (AEI)와 긴밀한 련계 밑에 사무실도 (AEI) 빌딩 안에 들어 있다. (PNAC)가 추구하는 목표는 부시가 아직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인 2000년 9월 발표한 백서《미국 방위의 재건 : 새로운 세기를 위한 전략, 군 그리고 자원》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백서는 미국이 전 지구적 제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항으로 다섯 가지를 꼽았다.
▼남유럽·동남아 그리고 중동에 항구적 군사 기지 확보한다.
▼전투기·잠수함·해상 함정의 능력 제고를 포함한 미군 현대화한다.
▼전 지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개발, 배치와 우주 공간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국제 인민들을 통제한다.
▼군비지출을 현재의 국내총생산(GDP) 3% 수준에서 최소 3.8% 수준으로 늘릴 것 등이 제시하고 있다.
(PNAC) 백서는 이어 미군이 맡아야 할 핵심임무들을 제시하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두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복수의 전장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는 것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필요한 안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미국의 세계경찰 임무》를 지속하는 것이다. 이는 미군은 전 지구적 제국을 지키는 글로보 캅(세계경찰) 역할을 맡는 것이다.
(PNAC) 백서에 실린 내용은 2001년 9월20일 부시가 발표한《미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02회계 년 도 국방비로 책정한 3,790억 달러는 GDP의 3.8%’와 정확히 일치한다. 당초 네오콘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기대했던 사람은 호전적인 강성「존 매케인」상원의원이었다. 존 매케인에 비해 부시정부의 외교문제에 대해 식견과 적극성 모두 부족하였다.
선거 기간 중 부시는 미국외교의 오만성을 경계하면서 미국이 세계에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 세계는 미국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온건한 태도로 네오콘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네오콘이 지지하는 체니가 부통령이 되고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체니는 부시에게 네오콘을 등용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네오콘의 충고를 따른 부시의 강경외교 노선이 채택된다.
부시는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적인 유권자, 특히 기독교 우파의 영향력이 강한 남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2000년 겨울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부시가 당선되자 네오콘은 대거 행정부로 진출하게 된다. 특히 권력의 핵심인 백악관과 국방부를 장악하였다. 전쟁의 광풍이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국제정치 외교문제에 어두운 부시를 대신해 사실상 미국외교를 요리하는 부통령 체니와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측근 브레인은 거의 네오콘이 였다.
부시는(AEI)에서 열린 네오콘 모임에 참석해 연설을 통해 그대들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브레인 집단이다. 내 정부는 그대들 가운데 20여 명을 핵심 요직에 발탁해 쓰고 있다고 네오콘을 극찬한다. 부시 행정부에 들어가지 않은 네오콘 새력들도 네오콘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 하였다. 부시정권 초기 네오콘은 국무장관 콜린 파월 등 보수적 국제주의자들의 견제로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9·11 테러는《네오콘》에는 일종의《축복》이었다. 미국인들은 네오콘이 9·11 테러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였고,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대통령은 네오콘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6월1일 부시가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밝힌 부시 독트린은
폴 월포위츠를 비롯한 네오콘이 10년 동안 준비해온《폴 월포위츠 독트린》을 이름만 바꾼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폴 월포위츠 독트린을 구성하는 기둥은
▶일방주의와
▶선제공격 그리고
▶이스라엘 적극 지지 등
세 가지였다.
바로
▶「유대의 군산복합체」과
▶「유대의 네오콘」과
▶「유대의 미 주류언론」
3위 일체가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자 이 유대의《그림자 정부의 중심》과 대립관계가 형성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 선포와 미국우선주의 정치가 군산복합체와 주류언론의 대립관계가 된 것이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유지해 온 외교정책을 뒤엎는 것이나 다름없다. 1945년 미국 지도자들은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를 재현한 「팍스 아메리카나」대신에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에 군산복합체와 주류 언론매체가 기를 펼 수가 없게 되었다.
1990년대 쏘련의 해제로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은 지난 29년 동안 미국은 일방적으로 독주하기보다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유대의 일루미나티의《신세계질서》를 구상하였다. 이에 반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이 국제조약에서 이탈하였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京都) 협약,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조약 탈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일방적으로 탈퇴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에서 탈퇴함으로써 국제사회를 실망시켰다.
《네오콘》은 미국이 보유한 슈퍼 파워가 일방주의 체제를 불가피하게 하고 그것을 타당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의 힘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 미국은 19조 달러의 빗더미에 올라앉았다. 누가 이 빗을 갚을 것인가. 미 군산복합체와 네오콘 전쟁세력이 미 정부의 재정을 고갈시켰다.
현재 미국의 GDP는 세계의 20%에 불과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가 황폐해진 1945년 세계 공산품의 절반을 생산하던 때에 비하면 훨씬 작은 힘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으로 미국은 더 힘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완의 전쟁승리는 그 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후 복구비용과 치안 유지에 필요한 병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그 동안 무시해온 유엔에 협력을 구하고,
우방국들에 돈과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손을 벌리는 형편이 되였다. 국가채무는 공식적으로 19조 달러에 달하지만 비공식 채무는 계산조차 할 수가 없다. 네오콘이 주장하는 일방주의 체제가 얼마나 비극적이며 허망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미국 자신들이 불량국가이면서 다른 나라를 불량국가로 몰아가고 있다. 네오콘들이 불량국가들이 보유한 WMD 공격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명분을 네 걸고 있다.
선제공격을 채택한 것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전통을 위반한 것이다. 오늘날 선제공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만약 북조선과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타이완(臺灣), 이스라엘과 중동 아랍권, 남한이 상대방이 공격해올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면 세상은 끝장나고 말 것이다. 21세기 오는 날 미국은 그럴 힘이 없다.
◆정신적으로 부도덕한 강경 전쟁세력 《네오콘》
미 국무부 정통 직업외교관들은 이를 가리켜 미국 외교의 전부는 고작 이스라엘을 위한 국제 외교화(化)가 전부라고 개탄하고 있다. 동서 냉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세계가 더 평화로워 질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냉전 시절은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 균형을 이룸으로써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적 환경의 시대를 구가하였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이다.
미국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멋대로 행동하고 초강국 미국은 국제사회의 기존의 규범을 따를 필요가 없으며, 미국 스스로 필요한 룰을 만들어 가겠다는 태도였다. 이 같은 오만한 일방주의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세력이 바로《네오콘》 세력이였다. 유대 일루미나티는 군산복합체과 결탁된 네오콘 세력을 이용해 그림자 정부를 유지해 자신들의 야심을 실현시키자고 하였다.
그들은 미국이 제국이 되는 것은 운명이며 미국은 그 운명을 껴안아야 한다는 자기위안의 주장에 노예가 되어 왔다. 이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을 아무리 그럴 듯한 이론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그 침략적 본질은 감춰지지 않는다. 미국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자들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미국은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인류 발전을 위해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미국도 보통 국가와 다르지 않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전 세계를 휩쓴 반전(反戰)·반미 데모의 물결은 미국의 국력을 시기해서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강대국 논리에 반대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의사 표시였다. 미국의 네오콘은 일종의 확신 범들이다. 거기에 부폐한 그림자 정부는 미국인의 적이 되였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원칙에 따라 세계를 재편하고자 한다. 네오콘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마저 불사한다.
그들에게 전쟁은 자연 상태며, 평화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또 그들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전쟁을 계획하고 전쟁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청년 시절을 보낸 네오콘은 무슨 이유에서든 거의 예외 없이 베트남 전쟁에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부시 자신도 힘 있는 정치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베트남전에 가지 않았다. 전쟁의 참혹한 참상을 모르는 네오콘들 이디.
정의의 전쟁, 악과의 싸움을 외치는 네오콘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된 것인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네오콘은 부도덕하고 위선적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가 있고 후세인과 알 카에다의 테러조직과 연계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터무니 없는 전쟁의 구실을 만들어 낸다. 후세인 독재정권 타도하고 이라크 민주화가 목표라고 주장한다. 이라크에서 그치지 않고 다음 타깃인 북조선, 이란·시리아·리비아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핵무기를 수 백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제제를 가하 기는 커녕 한없이 관대하다. 위선의 전형이 미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랍 사람들이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다. 네오콘의 첫 번 째 제국실험 전쟁인 이라크전쟁은 아직 전투가 계속 중이다. 이라크인들의 민심 잡기에도 실패하였다. 매월 50억 달러씩 들어가는 점령 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처럼 불어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4년 회계 년 도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 비용으로 870억 달러를 승인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였다. 2002년 3월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비로 지출한 군사비는 약15조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강대국의 흥망사》를 쓴 미국 예일대 역사학 교수 폴 케네디는「만약 이대로 미국이 점점 더 제국주의처럼 보이고 제국주의처럼 행동하면 미국은 수년 내에 지구에서 사라 질 지도 모른다」고 경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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