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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tradamus_주요 예언

011_Nostradamus(노스트라다무스)_단두대

by 청풍명월7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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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프랑스혁명

단두대(斷頭臺) 또는 기요틴(프랑스어: guillotine)은 프랑스 혁명 당시 죄수의 목을 자르는 형벌인 참수형을 가할 때 사용한 사형 기구이다. 이 기구는 1792년 정식 사형 도구가 되었다.

참수형을 도부수가 시행할 경우, 해당 도부수는 고도의 검술을 필요로 하는데 도부수의 검술 실력이 부족하거나 참수형 집행 도중 실수를 할 경우 사형수의 목을 단번에 날리지 못하고 베다 말거나 참수검이 목이 아닌 뒷통수나 등에 박히기도 한다. 이런 불편한 점을 개선하고 빠른 시간 안에 참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단두대를 개발했는데 단두대는 한 마디로 자동 참수 기계이다. 무거운 칼날을 줄로 고정시킨 형태이며 줄만 끊으면 칼날의 무게로 인해 칼날이 떨어져서 사형수의 목을 자동으로 절삭하는 기계이다.

프랑스의 사형도구인 단두대

1791년에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국민의회에서 계급에 상관없이 참수형에 처할 죄수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왕의 주치의이자 외과학회의 사무국장이던 안토닌 루이 박사와 파리 의료기기부의 해부학 교수인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박사를 필두로 이 건에 관한 위원회가 형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이탈리아의 “만나이아”와 스코틀랜드의 “메이든”, 그리고 “헬리팩스 지빗” 등의 참수기구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전처럼 무딘 도끼나 교수형으로 사형수의 형을 집행하는 것은 인도적이지 않고, 형집행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에, 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에게 형을 집행하기에는 검이나 도끼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에 기구로 형을 집행하자는 주제의 논문으로 제출하였다. 기요탱은 이 기구로 사형수들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실제로 이 기구의 설계에 기요탱 박사의 공헌은 미미하고, 앙투안 루이 박사가 기요탱 박사가 제안한 생각을 발전시켜, 설계한 뒤 이 기구(단두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 사형기구가 루이종, 또는 루이세트로 불렸으나, 언론에서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조제프이냐스 기요탱 박사의 이름을 따서 이름붙여졌다. 그 결과 기요탱 박사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단두대의 구조는 길게 세워진 2개의 기둥 사이로 비스듬하고 묵직한 무쇠칼날이 꼭대기에 밧줄로 매달려져 있다. 사형수는 틀의 아랫부분에 목이 칼날 바로 밑부분에 위치하도록 고정되며, 사형 집행인이 밧줄을 끊으면 칼이 떨어져 목을 자르는 것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여기서 죽었으며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당통 역시 이 기구로 인하여 죽었고, 과학자 라부아지에도 여기에서 죽었다. 단두대로 많은 사람을 죽인 로베스피에르는 역설적으로 이 기구에 의해 죽었다. 기요탱 박사도 단두대에서 죽었다고 전해지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1814년 5월 26일에 자연사하였다.

프랑스에서 단두대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때는 1977년 9월 10일이었으며, 사형 폐지를 내건 프랑스 사회당이 집권여당이 된 1981년에 사형제를 폐지되며 단두대 사용도 종료되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단두대를 이용해 반대파를 학살했다. 이렇게 살해된 희생자 수는 공식적으로 2만명을 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정권은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하 단두대를 사용하였다. 그 밖에도 벨기에, 스웨덴, 룩셈부르크도 단두대를 사용한 바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단두대 참수 모습



첫번째 적그리스도 예언과 더불어 노스트라다무스는 프랑스 혁명도 예언했습니다.
이 영감이 프랑스인이었던 그를 괴롭혔을것입니다. 혁명에서 나타날 여러 정황들을 노스트라다무스는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배심원제도 도입과 전제정치의 종말까지도 말입니다.

왕권은 무너지고 왕은 죄 값을 치르리라
군중이 뽐은 배심원들은 왕비를 사형시킬 것이다.
그들은 왕비의 아들임을 부정하고 왕의 정부 역시 왕비와 같은 운명에 처하리라.
입엔 피가 흥건하고 머리 잘린 군상들과 피의 살육이 있으리라.(백시선)

 마리 앙트와네트와 왕의 정부 그리고 다른 왕족들이 죽습니다
당시엔 없던 단두대를 암시한 부분은 예언의 절정입니다.
머리 잘린 군상들과 피의 살육... 정말 그랬습니다.
공포정치시기에 나타난 서슬퍼런 단두대에서 1만 7천명의 목이 잘렸나간 것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파리, 루브르 미술관. (출처. 네이버 블로그)


그의 조국에 대한 세심한 예언은 조국 프랑스인으로 프랑스 관련 예언도 많이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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