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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세계

[진리의 향기]유식학의 개조 무착스님

by 청풍명월7 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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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가의 자비 

유식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아상가(한역명은 무착)는 인도 불교의 유명한 성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4세기에 활동했든 인물이다. 혼자서 은둔하기 위해 그는 산으로 가서 미륵불을 향한 명상수행에 전념했다. 그는 미륵불의 축복을 받아 가르침을 전수 받기를 강렬하게 염원했다. 

아상가는 6년 동안 매우 집중해서 명상을 닦았지만, 단 한 가지 상스러운 꿈조차 꾸지 못했다. 그는 실의에 빠져 미륵불을 만나려는 자신의 염원이 성공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은둔 생활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났다. 

문수보살의 뺨을 때린 무착스님


얼마가지 않아서 그는 커다란 철근 막대기를 비단 천으로 닦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아상가는 그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 남자가 말했다. 

『나는 바늘이 없어서 이 철근 막대기로 바늘 하나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상가는 놀랐다. 

『설영 백년이 걸려서 그것을 만들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 있을까?』라고 그는 생각했지만,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저토록 어리석은 일에 매달려 수고하는 사람들을 봐라. 너는 무엇인가 정말 가치 있고, 영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과 비교하면 너는 아직 수행이란 근처에도 못 간 거야.』 

그리고는 곧 몸을 되돌려 은둔지로 돌아갔다. 

다시 3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륵불로부터 아무 신호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나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그가 다시 은둔지를 떠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가는 길을 커다란 바위가 가로 막고 있었다. 
하늘만큼 높은 큰 바위였다. 
그런데 그 바위 끝에서 한 남자가 물에 흠뻑 적신 깃털로 바위를 부지런히 닦고 있었다. 아상가는 궁금증이 생겨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 남자가 답했다. 

『이 바위가 너무 커서 내 집에 햇빛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위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아상가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크게 감복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기가 해온 헌신이 진실로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은둔지로 돌아왔다. 

다시 3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상서로운 꿈 한번 꾸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정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은둔지를 영원히 떠나기로 했다. 

날은 저물어 가는 데 우연히 그는 길가에 누워 있는 개와 마주쳤다. 
개는 앞다리만 있고 몸의 아랫부분은 썩어 문드러지고, 
온 몸은 구더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처럼 처참한 상황임에도, 개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달려들려 했고, 
성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몸을 질질 끌면서 애처롭게 물려고 했다. 

이런 광경을 접한 아상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자비심이 솟구쳤다. 
그는 자기 몸의 일부를 잘라내어 개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그리고 개의 몸을 파먹는 구더기를 입으로 떼어내기 위해 몸을 굽혔다. 
그러나 그가 구더기를 손으로 떼어내면 그 구더기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었다.구데기를 입으로 떼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았다. 
아상가는 무릎을 꿇고 끔찍하게 괴로운 광경에 크게 몸부림치면서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점점 기울여 혓바닥을 내밀었다. 

그가 안 다음 일은 그의 혓바닥이 땅에 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쳐다보았더니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바로 그곳에 빛나는 오로라에 둘러싸인 미륵불이 현현해 있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아상가가 말했다. 
『내가 그토록 갈망할 때는 왜 현현하지 않으셨습니까?』 
미륵불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이전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었지만, 
그대의 부정적인 업과 미혹으로 인해서 나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대가 12년에 걸쳐 수행을 닦아 그것들이 어느 정도 소진되었기에 
마침내 개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그대가 마음 깊숙이 자비심을 일으켰기에 
온갖 미혹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대 자신의 눈으로 그대 앞에 언제나 있었던 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만일 그대가 무슨 일이 났는지 믿지 못하겠거든 
그대의 어깨를 내 몸에 대고 그대 말고 
어느 누가 나를 볼 수 있는지 알아보라.』 

아상가는 자기의 오른쪽 어깨를 미륵불에 대고 
시장으로 가서 모든 사람에게 물었다. 
『내 어깨에 무엇이 닿아 있습니까?』 
대부분이 사람은 
『뭐가 있어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하고는 자기 갈 길을 서둘러 가버렸다. 그런데 업이 어느 정도 정화된 오직 단 한 명 늙은 여인만이 이렇게 답했다. 
『당신 어깨에 썩어문드러진 늙은 개의 시체가 닿아 있습니다.』 

아상가는 자신의 업을 정화해 변화시킨 자비의 끝없는 힘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미륵불의 비젼과 가르침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그릇이 된 것이다. 
<다정한 보살핌>을 뜻하는 그 미륵불은 아상가를 하늘 세계로 데려가 불교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숭고한 가르침들을 전수했다. 그의 가르침 바로 오늘날 우리가 <유식학>이라고 하는 하나의 거대한 학문의 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수행처앞에 핀 꽃

 

[유식학]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요가차라(산스크리트어: योगाचार Yogācāra)는 4세기 인도의 무착스님이 만든 대승불교 종파이다. 대승불교를 창시한 3세기 용수스님의 중관파와 함께 대승불교의 양대 축이다. 3세기 용수는 반야경, 4세기 무착은 유가사지론을 널리 배포했다.

유가행파는 유식파(唯識派, 산스크리트어: विज्ञानवाद Vijñānavāda 비즈냐나바다), 유식종(唯識宗), 유가행유식학파(瑜伽行唯識學派), 유식유가행파(唯識瑜伽行派), 유가불교(瑜伽佛敎, 요가불교)로도 불린다.

"유식(唯識)"에서 유(唯)는 "오직"을 뜻하며 식(識)은 의식(Consciousness) 또는 마음(Mind)을 뜻한다. 식(識)은 산스크리트어로는 비즈냐나(Vijñāna)로 지혜를 뜻하는 즈냐나(Jñāna)의 대가 된다. 영어권에서는 유식을 흔히 "Consciousness only"라고 번역한다.

유가행파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그 밖의 논서(論書)를 저술한 미륵(彌勒)을 종파의 조사(祖師)로 하는 인도 대승불교의 종파이다. 호흡을 조정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등의 지관(止觀: 선정과 지혜) 수행을 통해 바른 이치(正理)와 상응(相應)하려고 하는 유가행(瑜伽行 · Yoga · 요가)을 실천하였다. 유가행파는 유가행의 체험을 바탕으로 아뢰야식이라는 새로운 심식(心識)과 이에 따른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중관파에서 주장된 반야의 공사상(空思想)의 불충분한 점을 보충하고, 일체의 존재는 심식(心識)의 변전이며 심식(心識)만이 실재라고 보는 유식설(唯識說)을 세워 대승의 교리적인 발전을 성취하였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유가행파의 근본 경전이다.

미륵(彌勒)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더불어 무착(無着: c.300-390)의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세친(世親: c.320-400)의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십지경론(十地經論)》·《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이 유가행파의 주요 소의 논서이다. 또한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문하의 십대 논사의 학설을 호법(護法: 530-561)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여 현장(玄奘: 602-664)이 번역 · 편집한 《성유식론(成唯識論)》도 주요 소의 논서에 포함된다.

인도 불교의 유가행파에 대응하는 중국 · 한국 또는 일본 불교의 종파로는 《십지경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지론종(地論宗), 《섭대승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섭론종(攝論宗), 《성유식론》을 소의 논서로 하는 법상종(法相宗: 자은종 · 유식종)이 있다.

역사
중관파(中觀派)에서는 현상계의 제법(諸法)이 공임을 여러 논법으로 논증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현상계의 존재가 어째서 그 같은 질서 밑에서 성립되어 있는가를 체계적 · 조직적으로 설명한 것이 유가행파의 사상, 즉 유식설(唯識說)이다.

유식이란, 일체의 것은 식(識·consciousness)뿐이라는 설이며, 주관의 구조도 식, 객관의 구조도 식이라 주장했다. 이 이론체계에는 유부(有部)의 법상(法相)인 5위 75법,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심법)의 분석이 채택되어, 그것이 새로운 대승의 공의 입장에서 심화되어 해석되고 있다. 유식설은 이미 그 경전들인 《해심밀경(解深密經)》이나 《대승아비달마경(大乘阿毘達磨經)》 속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것을 이론적으로 문제가 되도록 제기한 것은 미륵(彌勒: c.270-350)이며, 그의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비롯한 제론(諸論)에 나타나 있다. 미륵의 가르침을 받은 무착(無着: c.300-390)의 《섭대승론(攝大乘論)》과 그 밖의 여러 논서(論書)에서 유가행파의 사상은 조직화되었다. 무착의 동생 세친(世親: c.320-400)은 처음에는 소승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하여 《구사론(俱舍論)》을 지었으나, 후에는 대승으로 옮겨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등의 저서를 내고 유가유식(瑜伽唯識)의 사상을 크게 선양하였다.

유가행파는 후일 디그나가(Dignāga · 陳那 · 진나)의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와 구나마티(Gunamati · 德慧 · 덕혜)의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의 두 파로 나뉘며 특히 디그나가는 인도 논리학의 대성자로 유명하다. 유상유식은 요가의 유상삼매, 무상유식은 요가의 무상삼매를 말한다.

사상 및 수행
유식설에서는 인간의 현실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법은 실유(實有)가 아니며 그 실상(實相)은 공인데, 오직 공이라는 하나의 원리에 따라 현실차별의 상(相)이 현출(現出)할 수는 없는 일이며, 여러 존재가 현재 있는 그것처럼 달성되기 위해서는 각기 공에 뒷받침된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 그 원인이 되는 것이 이미 가능력(可能力)인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을 종(種)이라 하고, 이는 순수한 정신작용으로서의 식(識)으로서 모든 것은 오직 이 식에 의해 나타난 것("유식 · 唯識")이라고 설파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설하는 유식설은 선정체험(禪定體驗)에 있어서의 인식 대상이 선정실천가의 주관에 의해 현현(顯現)되는 것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 설이 선정, 즉 유가행(瑜伽行 · Yoga · 요가)의 실천가(瑜伽師)에 의해 조직 · 계승되었다 하여, 이 유식설을 역설하며 유가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유가행파(瑜伽行派 · 요가차라: 요가의 실행자)라고 한다.

분파
유식설(唯識說)은 바수반두 이후 인도의 사상계에 있어서 대단히 우세하게 되어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여러 분파가 성립되었다. 아상가와 바수반두에서 유래한 경식구공(境識俱空: 현상도 없고 마음(제8식)도 없다, 현상과 마음(제8식)이 모두 사라진 곳에 진여(제9식)가 있다)을 주장하는 진실유식설(眞實唯識說)은 인도에서는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라고 호칭된다. 이는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90)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어 섭론종(攝論宗)으로 발전하였다.

무상유식파의 경식구공의 입장에 대하여 일단 식(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 즉 경공심유(境空心有: 현상은 없으나 마음(제8식)은 있다, 청정해진 마음(제8식)이 곧 진여다)의 방편유식설(方便唯識說)은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가 주장한 것으로서, 디그나가(Dignaga · 陳那 · 域龍)에서 시작하여 무성(無性)을 거쳐 호법(護法: 530~561)에 이르러 대성되었다. 방편유식설은 현장 삼장(玄裝三藏)에 의해 중국 · 한국에 전해져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디그나가는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등을 저작하였다. 그는 지식근거로서 직접지각(直接知覺)과 추론(推論)과의 두 종류만을 승인하면서, 직접지각은 분별(分別)을 떠난 것이어서 내용이 없는 것이지만, 추론의 작용이 가(加)해짐으로써 구체적인 지식으로서 성립한다고 한다. 또 보편(普遍)의 존재를 부인하여, 그것은 타자(他者)의 배제(排除)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구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참뜻으로 말하는 개별자란 작용의 어느 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신인명(新因明)'을 확립하였다. 샨카라스바민(Sankarasvamin)의 《인명입정이론(因明入正理論)》(당나라 현장 역)은 그 입문서(入門書)인데, 중국 · 한국에서는 인명(因明)의 근본 전적(根本典籍)으로서 많이 연구되었다.

디그나가의 논리사상은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 · 法稱 · 법칭: fl. c. 650)에 의해서 더 한층 세밀해졌다. 그에 의하면 각 순간이 승의(勝義)에 있어서 어떤 것이다. 우리는 각 순간의 연속으로서 의식의 흐름을 상정(想定)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을 구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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