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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stradamus_백시선

[Nostradamus]백시선 1권 5편_카르카손과 나르본

by 청풍명월7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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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선(centuries) 1권(券) 5편(篇) 사행시(四行詩)


[프랑스어]
Chassez seront sans faire long combat,
Par le pays seront plus fort greuez :
Bourg & Cité auront plus grand debat
Carcas, Narbonne, auront cœurs esprouvez,


[영어]
They will be driven away for a long drawn out fight.
The countryside will be most grievously troubled.
Town and country will have greater struggle.
Carcassonne and Narbonne will have their hearts tried.


[한국어]
그들은 전투를 준비하는데 오랫동안 미쳐 있으리니.
지방은 매우 슬픈 고통 속에 있고 
도시와 시골은 더 큰 투쟁을 하리라.
카르카손과 나르본은 그들의 심장을 혹사하리라.(백시선 1권 5편)

백시선(百詩選, 제세기, Centuries)는 이미 500년전에 그 이후를 예언한 서적으로 그 책이 서술된 이후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4행의 구절중에서 단서는 4행()에 남아 있다. 지명(地名)이 2곳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카르카손( Carcas, Carcassonne)를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 남서부 오드 주, 오드 강 중류 연안 카르카손( Carcas, Carcassonne) Castle of Carcassonne


카르카손( Carcas, Carcassonne) Castle of Carcassonne 

프랑스 툴루즈의 남동쪽, 오드 강이 동쪽으로 굽어 흐르는 곳 가까이에 있으며, 오드 강의 흐름에 따라 빌바스시테의 두 시가지로 나누어진다. 시테에는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중세 성의 유적이 있다.

오드 강의 오른쪽 유역에 가파르게 솟아 있는 구릉 꼭대기에 자리잡은 시테는 일찍이 BC 5세기에 이베리아인들이 거주했던 곳으로 그후 로마 지배하의 갈리아인들의 차지가 되었다. 내부 성벽은 외리크 1세가 서(西)고트족의 왕으로 재위하던 485년에 축조되었다.

508년 클로비스가 점령에 실패한 후로 728년에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했으며 752년에는 단신왕 피핀 3세가 점령했다. 카르카손과 베지에의 자작이 생나제르 바실리카(1096~1150)를 지었고, 1125년경에 콩탈 성이 서고트족의 성벽 안에 들어섰다.

1247년 알비파 전쟁의 결과로 자작들의 재산이 프랑스 국왕에 귀속되었으며, 그후 이 도시에 위대한 건축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대성당 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랑 성가대석을 고딕 양식의 구조물로 바꾸었으며(로마네스크 양식의 본당은 남아 있음), 14~16세기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졌다. 작은 탑, 망루, 총안 들을 갖춘 외부 성벽이 루이 9세의 재위기간에 이어 그의 아들 필리프 3세 때까지 세워졌다. 특히 필리프 3세는 내부 성벽에 아름다운 나르보네 성문을 추가로 만들었다.

프랑스 남서부 오드 주, 오드 강 중류 연안 카르카손( Carcas, Carcassonne) Castle of Carcassonne의 위치



노스트라다무스는 1566년 사망하게 된다. 그 이후에 10여년 세월이 흐른 후에 카르카손 
1575년과 1585년에 위그노(신교) 전쟁의 일환으로 신교도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격퇴되었다. 이는 프랑스의 종교내전이 발발할 것이며 카르카손이 전쟁터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 전쟁이 위그노(신교) 전쟁이다. 

Guerres de Religion (1562 ~ 1598) 위그노(신교) 전쟁

Guerres de Religion (1562 ~ 1598) 위그노(신교) 전쟁


16세기 후반 발루아-앙굴렘 왕조 프랑스 왕국에서 37년에 걸쳐 진행된 대대적인 종교 내전으로, 프랑스 종교전쟁(guerres de religion/French Wars of Religion)이라고도 불린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극에 달해 나라 전체가 뒤집혔던 사건이었다.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각국이 얽혀들어갔던 이 사건은 백년전쟁 시기 이후 프랑스의 중흥을 이끈 발루아 왕조가 무너지고, 이를 대체해 훗날 절대왕정을 수립하게 되는 부르봉 왕조가 발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위그노(신교)는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칼뱅파 교도에 대한 멸칭(경하는 호)이다.

나르본( Narbonne)은 지중해 연한 도시다.

 

나르본( Narbonne)

지중해에서 13㎞ 떨어져 있고 카르카손 동부에 있는 포도재배 평야에 자리잡고 있다나르본은 본래 로마가 갈리아에 세웠던 최초의 식민지(BC 118)인 나르보마르티우스로 그뒤 지중해연안에서 번창한 항구도시가 되었다.

나르본이란 이름은 나르보마르티우스에서 따온 것이다. 413년에 서고트족이 점령해 수도로 삼았고 719년에는 사라센족이 침입해 759년까지 점령했다. 중세에는 툴루즈 백작가(家)가 도시의 남부를, 교황청에서 파견된 주교가 도시의 북부를 각각 다스렸다. 16세기초에 들어와 프랑스 국왕의 영토로 통합되었다.

나르본(Narbonne)


1272년에 시작해 완공을 보지 못한 생쥐스트 성당에는 성가대석과 2개의 사각탑만이 남아 있다. 북프랑스 성당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가대석은 특히 높으며 전체적으로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2~13세기의 것인 생폴세르주 바실리카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초기 고딕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 요새 모양으로 지어진 대주교 궁에 있는 3개의 사각탑은 12~13세기에 세운 것이고, 같은 궁에 있는 고딕 양식의 시 청사는 19세기에 지은 것이다. 지금 이 시청사는 2개의 박물관으로 쓰이면서 그림과 도자기, 로마인이 쓰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미디 운하에서 갈라져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로빈 운하는 역사적으로 '시테'(큰 도시)로 알려진 북부지역과 남부의 '부르'(작은 도시)를 나누고 있다. 좁고 꾸불꾸불한 아름다운 가로수 거리들이 있고, 주요도로와 철도의 교차점이기도 해서 오드 포도주 무역이 성하다. 1959년 도시 바로 외곽에 우라늄 가공처리공장이 건설되었다. 다른 산업은 비료와 농기계 등 주로 포도주 생산에 관련된 것이다.

Nostradamus(1503~1566년)


Nostradamus(1503~1566년)의 백시선 1권 4편~5편은 사후 프랑스에서 펼쳐지는 참혹한 종교전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카톨릭과 신교의 싸움이 1562~1598년 까지 이어진다. 영국은 카톡릭에서 벗어나 신교(성공회)가 되었으며 프랑스도 엄청난 혼란의 세상이 된다. 5편은 구체적으로 "심장이 혹사 당할 정도"의 어려움이 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가올 일을 스크린 처럼 보고 예언 시(詩)로서 기록하여 둔 것이다.

Nostradamus(1503~1566년) 아들 세자르와 조국 프랑스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 조국에 대한 예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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