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선(centuries) 1권(券) 6편(篇) 사행시(四行詩)
[프랑스어]
L'œil de Rauenne sera destitué,
Quand à ses pieds les aisles failliront,
Les deux de Bresse auront constitué,
Turin, Verseil, que Gaulois foulleront.
[영어]
The eye of Ravenna will be forsaken,
when his wings will fail at his feet.
The two of Bresse will have made a constitution
for Turin and Vercelli, which the French will trample underfoot
[한국어]
그의 날개가 발 아래로 떨어졌을 때,
라벤나의 눈은 버려질 것이니라.
브레스의 두 사람은 프랑스가 짓밟은 토리노와 베르첼리를 위하여
헌법을 제정하리라.(백시선 1권 6편)
백시선(百詩選, 제세기, Centuries)은 Nostradamus의 조국인 프랑스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서양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필요하다.
The eye of Ravenna will be forsaken(라벤나의 눈은 버려질 것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라벤나(Ravenna)는 이탈리아의 도시 이름이다.
1527년부터 1529년까지 라벤나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잠깐 받은 적도 있지만, 그 후 교황령에 돌아왔다. 1636년 5월에는 엄청난 홍수로 피해를 입었다.
1798년 프랑스 제1공화국의 치살피나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제1제국 하에서 이탈리아 왕국에 할양되었으나 1814년 교황령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1861년 이탈리아 통일을 통해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그의 날개가 발 아래로 떨어졌을 때, 라벤나의 눈은 버려질 것이니라.(백시선 1권 6편 1~2行)
여기에서 그는 나폴레옹(Napoleon, 1769 ~ 1821)을 지칭한다. 그의 날개가 발 아래로 떨어진해 1814년 4월 11일에 황제자리에서 퇴위하고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 때에 이르러 라벤나(Ravenna)는 버려지고 1814년 교황령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치살피나 공화국 Repubblica Cisalpina(프랑스어) , Cisalpine Republic(영어)
나폴레옹(Napoleon, 1769 ~ 1821)이 1797년 6월 북부 이탈리아 포 강 유역 주변의 점령지에 세운 공화국.
처음에는 롬바르디아 지역을 포괄하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에밀리아·모데나·볼로냐(이들 지역은 이전에 치스파다나 공화국을 이루고 있었음)까지 확대되었으며, 베네치아의 내륙 일부와 발텔리나(벨틀린) 지방의 스위스 일부 주(州)까지 병합했다.
이 공화국은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체결한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 10. 17)으로 승인되었다.
치살피나 공화국은 프랑스의 통령정부 제도를 모방한 자체 헌법과 정부를 갖고 있었다. 파리에 대사관을 설치하는 등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이었으나 프랑스군과 매달 지급되는 보조금으로 인해 프랑스에 단단히 매여 있었다. 1801년 헌법을 개정해 나폴레옹을 독재적 수반으로 하는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나 1805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이탈리아 왕국이 되었다. 제노바를 중심으로는 리구리안 공화국이, 교황령에는 로마 공화국이 세워졌다.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정권 역시 해체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베네치아는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제노바는 사르데냐 왕국의 영토가 되었다.
Bresse (브레스) 지역
프랑스 동쪽 론 알프스 인근에 위치한 브레스 지역은 해발 180m~240m 의 완만한 평원지대이다.
이 지역의 이름은 Gallo-Roman 이름 Bricius(Bric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에 Bresse는 Bâgé의 영주에 속했으며 1272 년에 Savoy House로 넘어갔습니다. 15세기 전반이 되어서야 부르그를 수도로 하는 지방이 그렇게 설립되었습니다. 1601 년에 리옹 조약에 의해 프랑스에 양도되었으며, 그 후 (Bugey / Bugê 지방과 함께) 처음에는 별도의 정부를, 나중에는 부르고뉴 정부의 일부를 구성했습니다.
처음에 Bâgé는 지방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위치는 수도가 된 부르캉브레스의 출현을 촉진했습니다. 이 지방은 자신의 영토를 늘리고 싶어했던 프랑스 왕이 탐냈습니다. Bresse의 평평한 성격은 방어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침내 사보이 (Savouè)의 군주들은 공국의 알파인 지역으로 이전하고 피에몬테의 Château-Dauphin과 교환하여 Bresse와 Bugey를 포기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Bresse (브레스) 지역 사보이 (Savouè)의 군주들의 역사가 토리노와 베르첼리와 관련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주축세력 사르데냐왕국의 전신 역사
▶ 사보이아 백국 (1003~1416)
▶ 사보이아 공국 (1416~1720)
▶ 사르데냐 왕국 (1720~1861)
▷ 나폴레옹 지배한 이탈리아 (1792~1815)
▷ 나폴레옹에게 피에몬테 상실하여 사르데냐섬으로 왕실 옮김(1799)
▷ 나폴레옹 폐위 이후 잃었던 영토 회복하고 사르데냐_피에몬테왕국으로 개칭(1815)
▷ 나폴레옹 폐위 후 통일까지 이탈리아 (빈체제) (1815~1861)
▶ 국민들의 민주헌법 요구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1802~1821)는 동생에게 양위
▶ 카를로 펠리체(1821~1831)에게 양위함 사법 계층의 개혁을 수행하고
▶ 카를로 알베르토(1831~1849) 1848년 혁명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새 헌법을 제정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49 ~ 1861) 사르데냐왕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1861 ~ 1878) 이탈리아 왕국 초대왕
토리노 Torino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포 강 연안에 있는 도시다.
1640, 1706년(스페인 왕위계승전쟁중)에 프랑스군에게 포위당했으나, 1706년 사보이의 외젠이 프랑스군을 격퇴했다. 나폴레옹 전쟁중 다시 프랑스에게 점령당했으며 1720년 사르데냐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19세기에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의 정치적·이론적 중심지가 되었다.
1861~65년 통일 이탈리아의 첫번째 수도였다.
마다마(Madama) 궁전은 1848~60년에는 사르데냐 상원의사당으로, 1861~64년에는 이탈리아 상원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고대예술박물관이 되었다.
베르첼리Vercelli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 베르첼리 주의 주도. 노바라 남서쪽이며, 세시아 강변에 있다.
베르첼리Vercelli는
1638~59년에는 스페인이 점령했고 1704~06년과 나폴레옹 전쟁 동안에는 프랑스가 점령했다.
브레스의 두 사람은 프랑스가 짓밟은 토리노와 베르첼리를 위하여 헌법을 제정하리라.(백시선 1권 6편 3~4行)
Bresse (브레스) 지역에 기반을 둔 사보이 (Savouè)의 군주들의 역사가 이어져 오게 된다.
두 사람은 바로 두 왕이다. 두 사람은 결국 헌법제정 요구를 수용하고 헌법을 제정하게 된다.
▶ 카를로 펠리체(1821~1831)에게 양위함 사법 계층의 개혁을 수행하고
▶ 카를로 알베르토(1831~1849) 1848년 혁명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새 헌법을 제정
토리노 Torino와 베르첼리Vercelli 지역은 사르데냐 왕국 Kingdom of Sardinia 이다.
그런데 2개 도시는 프랑스에 짓밟혀진 지역이다.
토리노 Torino 지역은 나폴레옹 전쟁중 다시 프랑스에게 점령당했으며
베르첼리Vercelli 지역도 1704~06년과 나폴레옹 전쟁 동안에는 프랑스가 점령했다.
사르데냐 왕국 Kingdom of Sardinia
이탈리아 북서부의 피에몬테 지역과 사르데냐가 중심지역이었다.
1718년 강대국들간에 체결한 런던 조약에 따라 사보이 공작이자 피에몬테 군주였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는 시칠리아를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그대신 스페인 영토였던 사르데냐를 양도받았다. 2년 후인 1720년 8월 24일 그는 정식으로 사르데냐를 인수했다.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 아들인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시절 1792년 나폴레옹에게 빼앗깁니다,
비토리오 아메데오 3세 아들인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시절에는 1799년 나폴레옹에게 피에몬테 상실하여 사르데냐섬으로 왕실 옮기기까지 하며,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동생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 시절에는 1815년 나폴레옹이 폐위된 이후 잃었던 영토 회복하고 사르데냐-피에몬테왕국으로 개칭을 합니다,
1861년까지 그와 그의 계승자들은 권력과 부의 기반 및 거처는 피에몬테에 있었지만, 사르데냐의 왕으로 군림했다.
1848년 3월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는 '알베르토 법령'이라는 피에몬테-사르데냐의 새 헌법을 반포했는데, 이 법은 1861년 3월 17일 초대 이탈리아 의회가 선포한 새 이탈리아 왕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알베르토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통일된 이탈리아의 초대 왕이 되었다.
▶ 카를로 펠리체(1821~1831)에게 양위함 사법 계층의 개혁을 수행하고
▶ 카를로 알베르토(1831~1849) 1848년 혁명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새 헌법을 제정
두 왕의 공로로 헌법이 개정되기에 이른다.
Nostradamus는 사행시 한 편이 천년의 역사를 살펴보게 하는 인문학 공부다.
사후 펼쳐지는 복잡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정확히 살펴보고 이탈리아 왕국의 성립과 헌법의 기반이
프랑스의 Bresse (브레스)에서 기원함을 예언하고 있다. 단순히 쉽게 볼 공부가 아니다.
이는 인문학과 미래학을 철저하게 살펴봐야 공부할 수 있는 비밀의 시(詩)이며 예언의 시(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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