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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_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향방]터커 칼슨의 푸틴 인터뷰(푸틴의 역사관)

by 청풍명월7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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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일 푸틴을 만난 미국의 언론인 터커 칼슨


미국 언론인인 터커칼슨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그 중에서 푸틴의 역사관은 앞으로 다가올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인식이기에 참고해 봐야 한다.


보그단 흐멜니츠키(1595년경 ~ 1657년 8월 6일)는 우크라이나의 카자크 지도자이다. 1648년부터 1657년까지 카자크 수장국의 수장을 역임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생성의 역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보그단 흐멜니츠키*의 편지 사본도 제시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카자크들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오스만 제국, 크림 칸국의 위협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동방 정교회 신자였던 흐멜니츠키는 같은 정교회를 신봉하고 있던 루스 차르국의 지지를 요청했다. 흐멜니츠키는 1654년 1월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통해 우크라이나 카자크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의 차르로 있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흐멜니츠키는 러시아의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의 지원을 받으면서 우크라이나를 수복하였지만 이는 곧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키예프노브고로드라는 두 중심지에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루스의 세례는 러시아 역사상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중에 키예프를 포함한 남부 러시아 땅의 일부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가의 통치를 받게 된 역사도 설명했습니다. 

노브고로드

노브고로드는 러시아 연방 북서부에 있는 노브고로트 주의 주도. 일멘 호에서 볼호프 강이 흘러나오는 바로 위쪽에 강을 끼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연대기에 처음 기록된 것은 859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크게 파괴되었으나 그뒤 역사적인 건물들이 많이 복구되었다. 이 가운데는 볼호프 강 좌안에 있는 성채도 있는데, 성채 안에 건립된 상트소피야 대성당은 초기 러시아 건축에서 가장 훌륭한 표본의 하나로 꼽힌다. 중요한 관광도시이자 화학비료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노브로로드 위치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기네들이 러시아 제국 외곽에 살기 때문에 변두리라는 의미의 우크라이나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은 모스크바에 자신들이 받아들여기를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보그단 흐멜니츠키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와 인구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서한을 폴란드에 보냈고 모스크바에는 러시아 제국 짜르체제에 복속되기를 선포했다고 푸틴 대통령은 설명했습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약화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분리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후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소비에트공화국을 인공적으로 만들면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땅을 편입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또 흑해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는 스탈린 덕분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을 얻었다고도 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 역사적 영토를 빼앗긴 나라들이 반환에 대해 논의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이문제를 두고 논의한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1980년대 트란스카르파티아를 여행할 때 헝가리계 소수민족들이 모국어와 문화전반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보고 놀랐었다고 말했습니다. 


[신문기사]
헝가리 극우정당 "우크라, 전쟁서 패하면 서부영토 소유권 주장"
이데일리 2024.01.29 13:49 댓글0


헝가리의 극우정당인 ‘우리조국운동’(OHP)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국가 자격을 상실한다면 약 15만명의 헝가리인들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우리조국운동의 지도자인 라즐로 토로츠카이는 전날 밤 독일과 네덜란드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민주주의를 위한 포럼’(FVD) 지도자들와 개최한 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당 웹사이트에 올린 회의 영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우리의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즉각적인 휴전, 평화,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며 “(반면) 만약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국가 지위 상실로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트란스카르파티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뜻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란스카르파티아는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으로 이 곳에 거주하는 헝가리인들의 자치권을 촉구하겠다는 것이다.
헝가리는 약 15만명의 자국민인들이 트란스카르파티아에서 모국어를 사용할 권리를 제한하는 문제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충돌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오르반 총리는 지난해 트란스카르파티아 내 헝가리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제출될 때까지 국제 사회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도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헝가리를 제외한 EU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의 소유권 관련 설명지도


우크라이나의 현자의 예언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고자 한다. 

트랜스카르파티아 등을 포함한 서부 지방은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판도에 따라 지배권이 자주 바뀐 곳이다. 카르파티아 평원(판노니아 평원)의 동쪽 경계인 카르파티아산맥과 인접한, 트랜스카르파티아(지금의 자카르파티아 Zakarpattya 주) 지역은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가 지배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구소련 연방의 우크라이나로 강제 편입된 곳이다. 과거 13세기 갈리치아-볼히니아(Galicia-Volhynia) 공국이 위치했던 갈리치아(지금의 르보프 Lviv 주)와 볼히니아(지금의 볼린Volyn 주와 리브네Rivne 주) 지역은 폴란드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의 지배를 거쳐 1939년 이후 우크라이나에 편입된 곳으로, 가톨릭 국가들의 영향으로 인해 동방 정교회를 신봉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가톨릭이 우세 종교로 자리 잡았다. 중심 도시는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의 중심지였던 르보프(Lviv)인데, 이곳은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도시이다. ‘너도밤나무의 땅’을 뜻하는 부코비나는 20세기 초까지 부코비나 공국이 지배한 영역으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로 분할되었는데, 체르노프치Chernivtsi 주가 우크라이나령에 속하는 부코비나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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